어느 영화감독의 예술 도전기…“디지털 아트는 무한히 열린 세계”
‘아트 인 메타버스’展 알렉세이 마르티뉴크 작가 인터뷰
어느 영화감독의 예술 도전기…“디지털 아트는 무한히 열린 세계”
2022.08.12 16:17 by 최태욱

[Artist with ARTSCLOUD]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국제 미디어 아트페어 ‘아트 인 메타버스’展에 참여했던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어요. 그런데 이런 기질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랐죠. 지금은 정확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잠재력의 경계를 탐험하고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 바로 ‘디지털 아트’의 공간이죠.” 

알렉세이 마르티뉴크(Aleksei Martinyuk·31, 이하 알렉세이) 작가는 꽤 먼 길을 돌아 예술의 세상에 당도했다. 경제학과 응용정보학을 전공하고 관련 업계에서 일했던 6년의 시간은 진짜 ‘자아’를 찾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다. 연결고리는 ‘영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작가는 취미 삼았던 영상 촬영·편집에 흠뻑 매료돼 영화 제작자로의 전업을 도모했고, 사운드디자인, 3D, CG, VR 등의 세계마저 섭렵하며 만듦새를 높여갔다. ‘영화감독’ 타이틀을 거머쥔 지 2년 후, 그가 새로이 만난 세상은 보다 짜릿하고 환상적이다.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의 프리즘을 통해 다다른 ‘디지털 아트’의 무대에서 작가는 상상력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창의력의 경계를 확장한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국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참가했던 알렉세이 작가에게,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자세와 각오를 직접 들어봤다.

 

알렉세이 마르티뉴크(사진) 작가
알렉세이 마르티뉴크(사진)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순수 예술에 발을 들였다고 들었다. 
“그렇다. 내가 성취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별히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영역도 촬영, 편집, 사운드, CG 등 영상제작 분야다. 하지만 앞으로 성취해 나갈 것으로 보자면, 멀티미디어 예술가 지망생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영화 이후, 디지털 아트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의 프리즘을 통해 점점 내가 가진 창의성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학부 전공이 경제학 쪽인 것도 특이하다. 영상과 예술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 창작자의 기질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비디오테이프가 엄청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어린 시절 내내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화면에 표현된 상상의 세계와 그 안에서 창조된 존재들에게 흠뻑 매료됐고, 이는 내 상상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10대 후반부터는 직접 촬영·편집하여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당시에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좁은 범위 안에서 무난한 학위를 골랐고, 졸업 후 6년 동안 해당 업계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8년쯤 되어서야 전환점이 마련됐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진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때부터 영화 제작의 꿈을 추구했다. 그리곤 불과 몇 년 전부터는 예술 창작을 전업 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현재 디지털 아트 석사 학위 과정 중이기도 하다.” 

 

알렉세이 작가의 첫 단편 영화 ‘VENDING ME’.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주로 촬영했다.
알렉세이 작가의 첫 단편 영화 ‘VENDING ME’.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주로 촬영했다.

-영화가 상상과 표현의 기반인 것 같다. 주로 어떤 작업을 했나?
“영화를 포함, 내 작품 전반의 공통점은 우리 주위의 작은 것들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친숙한 것들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작품을 묻는다면, 아마도 ‘The next stop is KODOKU’.(다음 정류장은 코도쿠입니다.)일 것이다. 일본에 있는 어느 외국인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인데, 강요된 외로움 속에서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대상의 이야기인 동시에 내 자신이 품고 있는 질문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했다. 결국 나의 작업은 특정한 이슈에 대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을 예술적 관점에서 번역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알렉세이 작가가 편집·촬영·기술·디자인 감독으로 참여했던 ‘The next stop is KODOKU’.
알렉세이 작가가 편집·촬영·기술·디자인 감독으로 참여했던 ‘The next stop is KODOKU’.

-다른 아티스트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예술적 특징을 꼽는다면. 
“영화에서 출발하다보니, 모든 작품에 서사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모든 형태의 비디오 작업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아트 영역에 도전하는 과정에선 ‘콜라주(collage·모음)’ 방식을 적극적으로 적용시켰다. 이는 내가 가진 영상 관련 기술과 예술적 스타일을 혼합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해 작업했던 설치 작품 ‘FF00000000FF’가 좋은 예다. 이는 기술적 예술에 대한 시도로, 동영상의 원리를 이용한 장치인 페나키스코프, 스트로보스코프, 조트로프 등을 현대식으로 혼합한 작업이었다. ‘CONTTRUST’라는 제목의 비디오아트 역시 나의 작업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해당 작품은 항공촬영과 사진측량, 비주얼 특수효과, 음향처리 기술을 결합하여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보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탐구한 작업이었다.” 

-영화와 순수 예술은 같은 듯 다르다.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을 텐데.
“멀티미디어 아트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부분은 전혀 문제될 게 없었지만, 지금까지는 이를 모두 영화 매체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로 갇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적용시킬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그 속에서 활약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고, 새로운 도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도 주효했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끝을 예단할 순 없지만, 1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고 자평한다.” 

 

알렉세이 작가의 설치 작품 ‘FF00000000FF’
알렉세이 작가의 설치 작품 ‘FF00000000FF’

-아츠클라우드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현대미술, 뉴미디어아트, 디지털아트 등은 내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또 하나, ‘한국’이란 단어 역시 그렇다. 회사를 나와 영화 제작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2018년부터 2년 간 중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엔 돈을 모아서 영화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한국을 처음 만났다. 부산, 울산, 대구, 대전, 서울, 인천 같은 대도시를 차례로 경험하는 2주간의 여정이었다. 당시 한국의 미술은 내게 큰 영감을 줬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 그 영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화 매체를 넘어선 디지털 아트 작업의 첫 도전 무대로 적격이라 생각했다.”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선보였던 출품작을 소개해달라.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지털 세계가 연결되는 창구다. 내 경우에는 ‘인스타그램’이 그렇다. 출품작 ‘DIGITAL TRAIL’은 개인이 채널에 업로드하는 사진과 영상 등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삶의 디지털 흔적이 된다는 걸 제시하는 작업이다. 누구나 자신의 디지털 흔적을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로 기획됐다. 원래 이 작품은 대학원에서 참여하고 있는 ‘Generative Art’ 워크숍에서 진행했던 최종 프로젝트였다. 기술적으론 ‘Touch designer’를 활용했는데, 처음 적용해본 소프트웨어라서 작업 과정에 애로사항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구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흥미롭고 유익한 과정이었다. 프로젝트 원안은 큰 화면과 컴퓨터, 마우스 등을 통한 설치 작품의 형태였는데,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선 여건 상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알렉세이 작가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출품작_ DIGITAL TRAIL
알렉세이 작가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출품작_ DIGITAL TRAIL

-미디어 아티스트로서는 이제 첫 발을 뗀 셈인데, 향후 계획과 포부를 듣고 싶다. 
“현재 나의 작업을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영화, 미디어 아트, 그리고 게임 프로젝트다. 이를 모두 관통하는 키워드는 영상과 기술이다. 영상에 대한 애착으로 여기까지 왔고, 기술의 습득으로 길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도 AR, XR, VR 등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룹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했다. 메타버스와 NFT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고, 명확한 가치 판단을 내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향후 내 작품 중 일부는 분명 메타버스·NFT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작가로서 세상에 의미 있고,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소통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해받고 싶지는 않으니까.(웃음)”

 

/사진: 알렉세이 마르티뉴크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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