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다른 예술로 소통할래요”…어느 늦깎이 아티스트의 바람
‘아트 인 메타버스’展 박명희 작가 인터뷰
“色다른 예술로 소통할래요”…어느 늦깎이 아티스트의 바람
2022.07.19 17:32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대기업 소속의 디자이너에겐 표현의 범위가 다소 한정적이에요.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가 많으니까요. 부득이 크리에이티브도 다소 무거워지는 것 같고요. 조금 더 가볍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바로 그 지점이 제 예술의 시작점입니다.”

박명희(40‧ArticFox) 작가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디자이너다. 제품 디자인부터 CMF(Color Material Finishing) 디자인까지 아우르며 성공한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만큼 오래 축적된 갈증도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표현, 그리고 소통으로부터의 속박이다. 본격적인 NFT아트 시대를 맞아 뒤늦게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한 작가가 ‘자유’를 유독 강조하는 이유다. 개인의 취향으로 자유롭게 포착하는 주제와 자유자재로 요동치는 컬러의 변화 등은 그래서 더 특별한 ‘시그니처’다. 

 

박명희(사진) 작가(활동명: ArticFox)
박명희(사진) 작가(활동명: ArticFox)

|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어느 모범생 소녀의 등교거부
박명희 작가는 ‘금손’을 가지고 태어났다.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닌 적이 없었지만, 그림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상상하고 표현하기를 즐겼을 만큼 적성에도 딱 맞았다. 하지만 미술가를 꿈꿔본 적은 없었다. 학업성적 역시 ‘싹수’가 보일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진로 상담 무렵 반전이 일어났다. 박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담아두었던 선택지가 돌연 튀어나왔던 것. 바로 ‘미대’였다. 

“말 그대로 남은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미술 이외엔 그 무엇도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 같은 게 있었어요. 지금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미대입시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 여기에 부모의 걱정과 반대 또한 넘어서야 했다. 하지만 박명희 작가의 의지가 훨씬 크고 확고했다. “허락할 때까지 학교를 안 가겠다”는 말을 남기곤 방문을 걸어 잠갔을 정도. 작가가 미래를 쟁취하는 데까지는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박명희 작가는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반항을 했던 경험”이라며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일종의 ‘확신’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박명희 작가의 확신은 곧장 결과로 나타났다. 짧고 굵게 준비한 미대입시는 제대로 통했고, 대학에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전공 지식들을 빠르게 흡수했다. 산더미 같은 과제와 실습의 압박을 무릅쓰고 모든 학점을 전공수업으로만 꽉꽉 채울 만큼 열정적이었다. 작가가 “그저 모든 게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시대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Cocktail ver.1’_CMF 디자이너인 박명희 작가의 작업은 ‘color transformation’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Cocktail ver.1’_CMF 디자이너인 박명희 작가의 작업은 ‘color transformation’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

| 가볍게, 즐겁게, 그리고 자유롭게…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기업 소속의 디자이너로 활동한 박명희 작가는 지난 15년 간 3곳의 회사를 거치며 경험과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경험‧역량과 함께 쌓인 것은 표현에 대한 갈증이었다. 박명희 작가는 “디자이너하면 꽤나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여겨지지만, 자유로운 표현에는 한계가 있는 작업일 수도 있다”면서 “나의 생각이나 철학 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보니 시나브로 그런 욕구가 쌓여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예술’은 점점 캐주얼해졌고, 문턱도 낮아졌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이를 꾸준히 표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 이러한 분위기는 박명희 작가의 호기심과 용기를 자극했고, 이내 실행으로 옮겨졌다. 지난해 대학원에 입학해 NFT아트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수련의 일환으로 작품 활동에도 직접 나섰다. 

“세상이 NFT로 떠들썩했잖아요. 저도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접해보다가 아예 학위까지 도전하게 된 거예요. 거의 동시에 작업도 시작했고요. 어쩌면 15년 간 숨겨왔던 예술가의 피가 이제야 끓어오르는 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Cityblock(2021)_획일적인 도시의 건물들을 재미있는 상상으로 표현한 작품. 이 작품 역시 다양한 색상변환을 활용하는 작가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Cityblock(2021)_획일적인 도시의 건물들을 재미있는 상상으로 표현한 작품. 이 작품 역시 다양한 색상변환을 활용하는 작가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박명희 작가의 작품세계는 다분히 개인적이다. 가볍고 자유로운 표현이 예술적 동력이니만큼 자신의 생각이나 상상, 자신을 둘러싼 환경들에 초점을 맞춘다. 박 작가는 “그때그때 소통하고 싶은 주제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식”이라고 귀띔했다. 기법적으로는 ‘색상변환(color transformation)’ 효과의 활용이 가장 큰 특징이다. ‘색’을 주로 다뤄왔던 베테랑 디자이너답게 색상의 역동적인 변화를 통해 공감과 자극,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해 한 단체의 NFT아트 공모전을 통해 선보인 데뷔작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 시리즈는 작가의 예술적 특성이 농축된 작업물이다. 습지에 서식하는 ‘어리연’과 북반부에서만 자란다는 ‘유칼리툽스 디글럽타’(무지개나무) 등 멸종 위기의 놓인 식물을 3D그래픽으로 형상화하여 선보였다. 싱그러운 녹색의 어리연과 신비로운 무지개빛깔의 유칼립투스 디글럽타의 색상이 다채롭게 변해가는 표현이 작품의 개성과 역동성을 더한다. 친환경적인 메시지로 공익적인 의도마저 읽히는 작품이지만, 시작은 역시 개인적인 관심이다. 박명희 작가는 “CMF디자이너로서 소재, 특히 친환경 소재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그쪽으로 생각을 넓혀가다 보니, 환경오염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 시리즈_Green Monster(왼쪽)과 Rainbow Tree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 시리즈_Green Monster(왼쪽)과 Rainbow Tree

| 거창함보단 소소함으로…꾸준히 소통하는 작가 될래요
자유롭고 편안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속내는 지난 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잘 드러났다. 해당 전시의 출품작 ‘Aiden’은 박명희 작가 아들의 영어이름에서 따온 제목. 작품의 영감 역시 아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박 작가는 “아이가 만화경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했던 순간을 밝고 행복하게 표현했다”면서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한 작업이어서 공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며 웃어 보였다. 

‘Aiden’은 순수한 동심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차용했다. 3D모델링을 통해 모양을 구성한 후 만화경의 표현 양식을 적용하여 색상을 다채롭게 변환시켰다. 박 작가는 “내가 아이를 보며 이런 느낌의 이미지를 떠올렸듯이 관객들도 작품을 보며 가장 밝고 행복한 순간의 기억들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Aiden_아들의 밝고 행복한 순간을 만화경의 효과를 빌어 표현한 작품이다.
Aiden_아들의 밝고 행복한 순간을 만화경의 효과를 빌어 표현한 작품이다.

부모에게 반항까지 불사했을 만큼 미술을 사랑했던 작가는 졸업과 동시에 상상과 표현의 자유의지를 봉인했다. 하지만 뒤늦게 다시 만난 예술을 통해 서서히 학창시절 자신을 매료시켰던 표현의 기쁨을 찾아가고 있다. “작업을 시작한 이후 일상적인 것들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에는 일렁거리는 열정이 배어있다. 거창한 계획이나 원대한 포부까지는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그림 한 장, 영상 한 편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처음 NFT를 접할 땐, ‘작품이 얼마에 팔렸네’ 같은 소문에 관심이 갔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꾸준히 제 얘기를 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강해요. 이를 위해서 더욱 더 부지런한 디자이너 겸 작가가 되어야겠죠?(웃음)”

 

/사진: 박명희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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