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이 곧 예술’…경험을 디자인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박민혁 작가 인터뷰
‘체험이 곧 예술’…경험을 디자인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2.07.13 09:43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다보면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에 놀랄 때가 많아요.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거나 뜻밖의 감동 포인트를 찾기도 하죠. 같은 작품을 통해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관객들에게 경험을 선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민혁(29) 작가는 ‘인터랙션(Interaction)’에 특화된 아티스트다. 예술과 기술을 엮고, 사람과 컴퓨터를 잇는다. 디지털아트를 전공한 이후 정보시스템 석사학위까지 획득한 이력은 그가 추구하는 관객 참여형 예술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뜨거운 미학과 냉철한 공학의 콜라보로 재창조된 세상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작가가 창조하는 가상세계 속 대자연에서 관객들은 현생의 삭막함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때가 바로 작가의 선물이 ‘언박싱’되는 순간이다.

 

박민혁(사진) 작가
박민혁(사진) 작가

| 표현에 대한 고민…예술적 정체성이 되다 
학창시절의 박민혁 작가는 다소 평범한 ‘문과생’이었다. 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열정만은 남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다양한 외부 기관에서 리포터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재단하고 전달했다. 

“학교보단 교외 활동에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홍보 영상을 촬영·편집하거나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기자 활동 같은 것들이었죠. 그때부터 이미 뭔가를 만들어 보여주는 활동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웃음)”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점차 표현의 영역으로 확대됐다. 영상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겠다며 ‘디지털 아트’ 전공을 선택한 것이 예술과의 첫 대면이다. 적극적인 관심에 전문적인 학습까지 더해지자 표현의 층위도 점점 넓어졌다. 비디오 프로그램이나 게임엔진 같이 다양한 툴은 박 작가의 상상력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 됐다. 

기술적인 진보와 동시에 철학적인 진화까지 이뤄졌다. 동양철학과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을 접목시킨 것으로 유명한 조상 작가를 지도교수로 만난 것이 절대적이었다. 박 작가는 “교수님께서 자연과 환경, 그리고 철학에 워낙 관심이 많으셨다”면서 “자연스레 저의 예술적 고찰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박 작가의 작품 속에 '무위자연'이나 '호접지몽' 같은 동양철학의 키워드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박민혁 작가의 예술관은 자연과 환경, 철학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빚어졌다.
박민혁 작가의 예술관은 자연과 환경, 철학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빚어졌다.

박민혁 작가의 예술은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가 예술적 키워드로 삼는 자연과 환경, 기술과 사람은 별개의 것이라기 보단 하나로 연결된 개념이다. ‘무위자연’이 주제라면, 적합한 기술을 통해 관객이 무위자연의 환경을 직접 경험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식이다. 그의 예술을 ‘인터랙티브 아트’라고 분류하는 이유다. 이런 주제의식이 확고해졌을 때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한 갈증이 바로 기술적인 한계였다. 디지털 아트를 전공한 예술가 지망생이 돌연 정보시스템 석사 과정에 도전했던 배경이다. 

“학부 과정에서 작품을 만들면서 처음에 구상했던 표현들이 기술적인 한계에 가로막히는 상황을 많이 겪었어요. 이 부분을 더 파고들고 싶었죠. 대학원에서 정보시스템과 사용자경험을 공부하면서 예술에 공학적인 측면을 융합하려 했어요. 덕분에 인터랙션을 통한 예술적 경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죠.”

 

| 기술과 예술, 자연과 사람을 잇는 가교 
예술과 공학을 결합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에는 각종 피지컬 컴퓨팅 기술과 센서 장치들이 대거 동원된다. ‘키넥트 센서’(kinect sensor‧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신체 및 동작을 인식하는 기기)를 활용, 관객이 만드는 몸짓이나 행동이 작품의 스토리를 변화시키는 식의 작업이 대부분이다. 작가의 개성은 데뷔작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예술대학 시절 창작실습을 통해 만들어진 데뷔작 ‘나,비; 날아오르다’는 관객이 특정 공간에 들어왔을 때, 키넥스 센서가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이를 빔 프로젝션을 통해 표현해주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대학시절 심취해있던 동양철학 특히 ‘호접지몽’에서 받은 영감을 재해석한 작업이기도 하다. 

해당 작품에선 작가의 작업 형식은 물론, 펼쳐내고자 하는 예술관까지 엿볼 수 있다. 박 작가는 ‘나,비; 날아오르다’라는 작품에 대해 “각박한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대자연을 통해 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동시에, 디지털세상과 자연이 사실은 서로 모호한 경계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라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예술·기술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연·환경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그의 예술적 소명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비; 날아오르다’(2017)_인터랙티브 인스톨레이션 버전
‘나,비; 날아오르다’(2017)_인터랙티브 인스톨레이션 버전

기술을 통해 마련된 가상의 자연에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의 활동은 최근 부각되고 있는 ‘메타버스’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 아츠클라우드에서 진행한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 공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박민혁 작가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국내외 작가들이 함께 모여 전시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면서 “작년까지는 대학원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작가 매니지먼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아츠클라우드의 미션도 더없이 반가웠다”고 회상했다. 

지난 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 박민혁 작가가 관객들에게 선사한 경험은 ‘영향력’에 대한 것이다. 출품작 ‘In,fluence’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메시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야생(野生)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변 환경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변화해 온 것이죠. 거기에는 물론 사람도 포함되고요. 자신의 행위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신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박민혁 작가는 ‘In,fluence’에 대해 “지금까지의 기술과 철학이 총망라된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박민혁 작가는 ‘In,fluence’에 대해 “지금까지의 기술과 철학이 총망라된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해당 작품의 체험은 관객들이 물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부스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관객이 위치하면 키넥트 센서가 사람을 인지, 캄캄했던 화면이 자연스레 밝아지며 이미지가 매핑되기 시작한다. 인간과 자연을 잇는 작가의 바람은 여러 가지 장치들로 표현된다. 관객의 소리를 모으는 입력기로 소라껍데기가 활용되는 식이다. 소라껍데기에 커다란 데시벨의 소리가 들어가면 스크린에선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치기 시작한다. 박 작가는 “작품의 체험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이 마치 야생의 어딘가에 서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In,fluence’ 제작에는 영상편집을 위한 ‘애프터이펙트’를 비롯해, 키넥트 센서를 제어하는 VVVV, 사운드 프로그래밍 툴 MAX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고루 활용됐다. 자연과 인간의 매개가 되려는 작가의 예술적 철학도 고스란히 담겼다. 박민혁 작가가 해당 작품에 대해 “지금까지의 기술과 철학들이 총망라된 결정체”라고 밝히는 이유다. 

 

| 미디어 아티스트보단 경험 디자이너로!
그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좋고, 이를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게 좋았던 청년이 변곡점마다 선택했던 길은 언제나 예술로 향했다. 예술학사에서 공학석사로 이어진 특이한 이력도 표현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과정일 뿐이다. 연구와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수많은 전시회에 참가해 관객과 호흡하는 방식도 다졌다. 바이오아트국제공모전본상수상(2017), 국제청소년평화휴머니즘영상공모제환경·생명부문대상수상(2017), 서울예술대학교‘예술의빛’창의상수상(2018), 한국창작문화예술대전디지털아트분야은상수상(2018) 등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은 성취다. 

 

예술학사로 시작해 공학석사로 학업을 마친 박민혁 작가
예술학사로 시작해 공학석사로 학업을 마친 박민혁 작가

자연과 환경, 사람과 예술, 사용자경험과 스마트기술로 이어지는 관심의 대상들이 한데 어우러져 바라본 곳에는 ‘경험하는 예술’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험을 선물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달음에 답할 수 있는 이유다. 

“저의 작업은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롭고 감동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인지 미디어 아티스트보단 경험 디자이너로 불리고 싶네요.(웃음) 앞으로는 사회적 이슈에 더 집중해볼 생각입니다. 예술을 통해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제가 선사하는 예술적 경험의 의미가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요?”

 

/사진: 박민혁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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