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천국이다’…인간관계의 미학 쫓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송형훈 작가 인터뷰
‘타인은 천국이다’…인간관계의 미학 쫓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2.05.25 10:32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겪고 나니 많은 게 바뀌더라고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다든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든지 하는 고민들이 싹 사라졌어요. 그저 내일 사라지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만 강해졌죠. 그 흔적이 저에겐 예술이고 창작입니다.”

송형훈(29) 작가는 절망에서 희망을 찾은 예술가다. 20대의 문턱에서 찾아온 ‘공황장애’가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이내 고립을 벗어나 소통과 표현의 기쁨으로 치달았다. 홀로 고뇌하면서 깊고 풍성해진 생각이 이야기가 됐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깊고 어두운 동굴에서 그를 끄집어 낸 건 다름 아닌 인간관계의 힘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손길들이 작가 스스로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고, 아픔과 상처까지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타인과 공감하는 게 가장 큰 행복이자 보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송형훈(작가) 사진
송형훈(작가) 사진

| 고난 속에서 찾은 동력…방점은 ‘인간관계’
송형훈 작가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독려하는 리더십도 제법 있었다. 전형적인 ‘인싸’였던 그의 삶이 돌변한 건 2013년 겨울 무렵. 머릿속에 침습한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 증세…‘공황장애(Panic disorder)’라고 불리는 병증이었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집채만한 호랑이가 쫒아오는 기분이 들었어요.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후 숨도 가빠지고 손발도 저리고… 결국 외부 활동을 전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죠.”

이렇다 할 징후나 뚜렷한 이유도 없었던 불안과 두려움은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가끔 증상이 너무 심해져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믿는 곳이 집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부터 인간관계까지 모든 일상이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다. 가끔 용기를 내어 친구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갑자기 눈물을 쏟거나 화를 내는 등 불안정한 상태만 드러냈다. 송 작가는 “친구를 만나는 도중 증상이 악화돼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밝고 쾌활했던 성격은 점점 어둡고 우울한 성격으로 바뀌어 갔다. 

겨우 스무 살의 나이로 철저하게 고립된 송형훈 작가에겐 숨 쉴 곳이 필요했다. 가장 처음 찾은 것은 ‘일기’였다. “일기 쓰는 행위가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권유에 곧장 펜을 들었다. 마침 글쓰기는 친숙한 취미였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즐겼고,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도 있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써 내려갔던 일기에는 차츰 ‘일상 이상의 것’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외부활동을 안 하는 만큼,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온종일 생각만 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할 말도 쓸 말도 많아지더라고요. 뉴스에서 본 사건에 대해서도 쓰고, 재밌게 봤던 영화에 대해서도 쓰고… 점점 글 쓰는 게 익숙해지고 또 즐거워지더라고요.”

 

글쓰기를 통해 고립의 시간을 견뎌냈던 송형훈 작가
글쓰기를 통해 고립의 시간을 견뎌냈던 송형훈 작가

발병으로부터 2년 반, 두문불출의 시간은 송 작가에게 두 가지의 큰 깨달음을 전했다. 가장 큰 깨우침은 글쓰기의 즐거움과 의미다. 자신의 작은 소망들을 꾹꾹 눌러 쓰며 느꼈던 즐거움은 ‘언젠가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송 작가는 “혼자 힘든 시기를 겪다보니,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그곳에서만큼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지더라”고 회상했다. 

또 하나의 소득은 ‘타인의 재발견’이다.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의 삶에서 인간관계가 차지하는 무게감과 가치를 절감했다. 현재의 송형훈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도, 자신을 지탱해준 마음들에 대한 일종의 헌사와 다름없다. 

“사실 ‘인생 혼자 사는 것’이란 생각이 조금 더 강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혼자 있어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기에 힘든 존재란 걸 말이죠. 어찌 보면 제가 작업을 하는 이유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웃음)”

 

|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주인공은 나의 페르소나”
송형훈 작가는 2016년 1인 출판사 ‘감성로켓’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3년 여 간 세상 속에서 사라져버린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초기 표현 방식은 역시 글이었다. 오랫동안 작가의 상상 속에 머물던 세계를 펼쳐내려 애썼고, 주인공을 페르소나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찰나’(2017)는 송형훈 작가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소설로, 그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인간관계의 의미를 되새긴다. 송 작가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공평한 감정교환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창작부터 출판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았던 작업이라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송형훈 작가의 첫 장편소설 ‘찰나’(2017년)
송형훈 작가의 첫 장편소설 ‘찰나’_2017

데뷔작 이후, 세 편의 장편소설과 여덟 편의 단편소설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이어오던 송 작가는 2020년 새로운 변화에 나섰다. 이야기에 영상을 덧대는 방식으로 표현의 확장을 꾀한 것. 송 작가는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나가면서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는 때가 종종 있었다”면서 “글과 영상의 시너지를 통해 보다 풍부한 감상을 가능케 할 생각으로 여러 영상 툴을 따로 공부하며 표현의 진화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문학과 영상을 엮는 송형훈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계기다. 

이러한 노력은 관련 업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봄, 제주콘텐츠코리아랩 ‘Media Canvas on CKL Jeju’ 단체전 공모에 영상작품 ‘COMA’가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송 작가가 표현하는 문학과 영상의 ‘콜라보’는 점점 완성도를 더해가고 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단편소설 ‘고립, 연결의 시작’으로 제주문학관 개관 기념 전국 공모에서 입상(산문 부문)하기도 했다.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제주콘텐츠코리아랩 주관 ‘Media Canvas on CKL Jeju’ 공모에 선정된 ‘COMA’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제주콘텐츠코리아랩 주관 ‘Media Canvas on CKL Jeju’ 공모에 선정된 ‘COMA’

|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의 세계’ 그려가고파
다행스럽게도 송형훈 작가의 청춘을 앗아갔던 공황장애는 많이 호전된 상태다.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지만, 예전 같은 ‘돌발변수’는 많이 줄었다. 작품 활동을 전개하면서, 틈틈이 공기관의 행정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보다 평온해진 마음 상태의 방증이다. 

자연스레 송형훈 작가는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인간관계 속에서 동력을 얻은 예술가에게 대중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는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송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을 만들어 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가장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4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Artist of the week>는 송 작가가 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송형훈 작가는 “아츠클라우드가 디지털 아트 트렌드를 선도하는 국내외 작가들과 협업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전 제안이 매우 영광스러웠고 소소한 책임감마저 느꼈다”면서 “이번 협업을 통해 기업과 아티스트가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순환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인전에서 송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릴리가 두고 간 영원’이라는 제목의 영상소설이다. 작가가 지난 2019년에 썼던 초단편 소설을 ‘보는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으로, 글부터 영상, 음악까지 손수 제작하면서 작가의 세계관을 농축시켰다. 영상 프로그램의 효과나 기술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인 것도 하나의 특징. 송 작가는 “연출부터 배경음악까지, 영상을 시청하는 관객들이 어느새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면서 “작품을 통해 타인의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우리네 존재의 불안정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릴리가 두고 간 영원_영상_단채널비디오, 컬러, 음악_4K, 14분 10초_2021
릴리가 두고 간 영원_영상_단채널비디오, 컬러, 음악_4K, 14분 10초_2021

송 작가의 예술적 여정은 그리 길지 않다. 글을 탈출구 삼아 고난을 벗어난 게 고작 5년, 영상을 통해 표현의 확장을 시도한 것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 속에 응어리처럼 쌓인 열정의 깊이만큼은 무한하다. 작가로서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 자신만의 정체성을 톡톡히 다져가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앞으로도 평면과 입체의 결합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 결국 이 계획을 완성시켜주는 건 그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타인들이다. 

“제가 그린 세계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요. 향후 이야기를 만들고 표현하는 과정을 더 다듬고 연구하며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타인과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요!”

 

/사진: 송형훈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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