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생성‧변주되는 디지털 사건이 저의 예술이죠.”
‘아트 인 메타버스’展 이현태 작가 인터뷰
“끊임없이 생성‧변주되는 디지털 사건이 저의 예술이죠.”
2022.05.21 01:24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웹상에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있잖아요. 영상도 넘쳐나고 소리도 다양해요. 이런 것들이 모두 저의 재료가 됩니다. 웹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흩어져있던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엮고, 흥미로운 디지털 사건을 발생시키죠. 일종의 디지털 주조랄까요?(웃음)” 

이현태(41) 작가는 실험정신이 강한 아티스트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해 설치미술과 디지털 아트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커리어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실험했던 결과다. 갈래는 다양하지만 원류는 하나다. 일상적인 것을 엮었을 때 비로소 창발되는 가치에 가장 흥미를 느낀다. 현재 그가 꽂혀있는 디지털 데이터들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레고 조각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끊임없이 변주해온 그의 예술 세계가 최근 또 한 번 꿈틀거리고 있다. 혼자만의 세계를 빠져나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새로운 미션이다. 

 

이현태(사진) 작가
이현태(사진) 작가

|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키워드…‘즉흥’과 ‘변주’
이현태 작가가 예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재수생 시절 무렵. 천상 예술가일 것 같은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다. 큰 뜻이나 원대한 포부로 시작된 관심도 아니었다. 부러움 반, 호기심 반 정도의 즉흥적인 끌림이었다. 

“동네의 친한 형이 예고를 나와 미대를 다녔는데, 늘 그 형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놀러 가면 작품 같은 게 쫙 걸려있고…뭔가 근사해보였죠. 재수를 결심했을 때 형한테 ‘나도 그림이나 그려볼까’했던 게 시발점이 됐어요. 그냥 그렇게 얼렁뚱땅 미대입시를 하게 된 거죠”

갑작스런 변심이지만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만들어 내는 것에서 기쁨과 재미를 느끼는 ‘창작자’의 면모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현태 작가는 “레고나 피규어 조립같이 내 손으로 가치를 재창출하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면서 “내재됐던 기질이 진로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그런 식으로 발현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공부와 현업을 병행하며 20대를 소진하자 자연스레 삶의 무대가 바뀌었다. 호주와 네덜란드 등 외국에서 예술 관련 공부를 하며 고민과 실험을 이어갔다. 이현태 작가가 표현하려는 작품세계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마켓의 설치작업. 일상을 엮는 이 작가의 예술관이 잘 드러난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마켓의 설치작업. 일상을 엮는 이 작가의 예술관이 잘 드러난다.

2010년 ‘Art in Public Space’(호주), 2014년 ‘Artistic Research’(네덜란드) 등 두 개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따는 동안 이현태 작가가 집중했던 분야는 설치 퍼포먼스 작품이었다. 

“뚜렷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던 건 아녜요. 그냥 어떤 재료에 매료되면, 거기서부터 끝말잇기를 하는 식이었죠. 뭘 더해보기도 하고 바꿔보기도 하면서요. 이런 실험이 시시각각 이뤄졌고, 즉각적인 반응도 얻으려다보니 일상의 소재를 즐겨 썼던 것 같아요. 마치 과학자들이 초파리로 실험하는 것처럼요.”

호주에서 주로 쓰였던 설치 작품의 재료는 종이박스나 시멘트 벽돌 같은 것들이었다. 이 작가가 공사장과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쉽게 접했던 재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왕립예술학교(KABK)에서 공부하던 무렵부터는 재료들의 ‘물성’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작업실을 구하지 못해 두문불출하며 작업하던 시절, ‘웹 안의 소리와 영상도 설치 퍼포먼스의 좋은 재료’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는 모니터 속에 전시장을 이식하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웹에서 찾은 스트리밍 동영상 데이터를 무한한 디지털 사건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 정체성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사장의 벽돌로 구현한 ‘First Site Gallery’(호주 멜버른)의 설치작품.
공사장의 벽돌로 구현한 ‘First Site Gallery’(호주 멜버른)의 설치작품.

| 다른 재료, 같은 방식…설치 퍼포먼스의 진화
현재 이현태 작가의 작업을 쉽게 표현하면, ‘스트리밍 동영상의 데이터들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활동’이다. 웹을 돌아다니며 동영상을 고르고, 그 속의 데이터가 ‘임베딩’(Embedding‧자연어를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숫자형태인 vector로 바꾼 결과 혹은 과정)되는 과정을 조작하여 소리와 영상을 추출한다. 이것들을 웹사이트에 하나하나 모아서 제시하는 데, 그 과정에서 ‘버퍼링’ 등의 오류로 인한 기계적 간극을 유도하여 즉흥적인 사건을 발생시키는 식이다. 

언뜻 대단히 복잡해 뵈지만 원리는 생각보다 간명하다. 이현태 작가는 “유튜브 같은 영상 채널을 보면서 ‘땡’하고 종치는 소리, ‘쾅’하고 문 닫는 소리, ‘삐끄덕’거리는 소리, ‘와장창’ 깨지는 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를 경험해봤을 것”이라며 “이를 한데 모아 즉흥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리밍 동영상과 웹 언어를 이용한 온라인 기반의 실시간 스트리밍 실험
스트리밍 동영상과 웹 언어를 이용한 온라인 기반의 실시간 스트리밍 실험

지난해 발매한 앨범 ‘자전과 전자’는 가장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스트리밍 동영상과 웹 언어를 이용한 온라인 기반의 실시간 스트리밍 실험을 각색‧편집하여 제작된 것으로, 지난 5년 간 이현태 작가가 몰두했던 예술 실험의 정수라고 할만하다. 이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예술을 유통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코딩 작업한 것들을 5분씩 끊어서 음원으로 만들어봤다”면서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는데 대중들의 반응이 괜찮아서 오히려 놀랐었다”고 회상했다. 

 

‘자전과 전자’ 앨범사진(2011‧왼쪽), 자전자 ROTATOR, 2021
‘자전과 전자’ 앨범사진(2011‧왼쪽), 자전자 ROTATOR, 2021

공사장을 뒤지며 작업 재료를 찾던 설치미술 작가는 이제 웹사이트를 뒤진다. 드라마틱한 변화로 보이지만 정작 작가는 “재료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그가 꿈꾸는 작품세계는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것들을 엮어 가장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아무도 경험한 적 없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 그것이 바로 이현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다. 

 

| 예술 실험 막바지…이제 대중 곁으로
이현태 작가의 작업에는 주제의식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즉흥과 변주에 포커스를 맞추는 특유의 접근법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한 의미가 인지되는 걸 애써 피하는 측면마저 있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갔어요. 생각이 떠올라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게 하려고 애를 썼죠. 그러다보니 모든 결과물이 나침반 없이 우연히 얻어졌어요. 형식에 빠져서 탐구만 하다 보니 ‘의미’가 소홀해진 것이죠.”

일상의 재료로 만들어나가는 비일상은 난해함으로 다가왔다. 소위 ‘나만 재밌는 놀이’가 된 것이다. 이 작가는 “시선이 삐딱하다느니, 작품이 너무 기괴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자세를 고쳐 잡고 있다. 다양한 전시활동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면서, 실험만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는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최고의 우군이자 스승이었던 어머님의 유언이었다. 이 작가는 “얼마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이제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와 세상과 소통하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해주셨다”면서 “이를 계기로 수행성을 지향하던 작업이 목적성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17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Artist of the week>는 관객과의 동행을 작심한 이현태 작가를 만나 볼 수 있는 무대다. 이현태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함께 하게 된 ‘아츠클라우드’가 디지털 작품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응용해내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그런 동기부여 덕분에 개인전 제안을 받은 후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현태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미디어 설치 퍼포먼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생각이다. 디지털 데이터를 한데 모아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작업 원리는 유지하되, 콘테이너 박스라는 전시 공간의 오밀조밀한 특성을 십분 살려 최대한 가볍고 유쾌한 변주로 관객들과 만날 계획. 이 작가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징글(Jingle) 같은 느낌의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가 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사건의 ‘발생’에만 맞춰져 있던 이 작가의 시선은 조금씩 발생의 ‘의미’로 옮겨지고 있다.
사건의 ‘발생’에만 맞춰져 있던 이 작가의 시선은 조금씩 발생의 ‘의미’로 옮겨지고 있다.

실험실을 벗어난 이현태 작가의 메시지가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이 작가의 손에 의해 구축된 웹사이트의 세계는 여전히 그만의 장난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가 이 장난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재미를 세상에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험에 매몰됐던 예술가의 시선은 어느새 대중에게로 향하고 있다. 

“제 얘기가 지금은 옹알이 수준일 수 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입을 열어 보려고요. 관객들과의 접점들이 늘어날수록 저의 예술은 더 풍성해질 겁니다. 물건이든 데이터든, 혹은 사람이든… 제가 추구하는 설치 퍼포먼스의 재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요!”

 

/사진: 이현태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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