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성취 차곡차곡 쌓은 6년…“꿈도 사명감도 훌쩍 커졌어요”
한예진 센슈얼모먼트 CMO 인터뷰
도전과 성취 차곡차곡 쌓은 6년…“꿈도 사명감도 훌쩍 커졌어요”
2022.05.10 00:12 by 최태욱

스타트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스타트업의 발원지로 꼽히는 실리콘밸리의 기본정신도 ‘문제 해결’이다. 시장의 난맥상을 풀어내면 단숨에 주목받는 기업이 된다.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면 ‘아마존’이 되고,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면 ‘페이스북’이 되는 식이다. 스타트업을 구분 짓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속도’다. 스타트업이 세운 가설에 대한 시장 반응이 빠르면 빠를수록 기업의 가치는 급부상한다. 빠른 성장은 스타트업에 대한 가장 확실한 검증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보면, 한예진(27) 센슈얼모먼트(‘플링’ 서비스 운영사) CMO(최고마케팅책임자)는 전형적인 스타트업형 인재다. “결국 모든 건 문제와 해결”이라는 심플한 자세로 도전을 즐기고, 미지를 탐닉하며 경험과 역량을 쌓는다. 사회생활 7년차, 20대에 C레벨에 오를 정도로 가파른 성장속도는 그녀의 내일을 더 기대케 한다. CMO로서 출근한지 이제 한 달 째,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들을 마주할 테지만 그녀는 “부담스럽기 보단 재미있다”고 말한다. 오답노트를 마스터한 학생은 새 문제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저 설렘과 기대만이 가득할 뿐이다. 

 

한예진(사진) 센슈얼모먼트 CMO
한예진(사진) 센슈얼모먼트 CMO

| ‘오지라퍼’ 언니가 깨달은 문제해결의 즐거움
한예진 CMO의 학창시절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일찌감치 정보가 갖는 힘을 실감했고, 지식의 순환과 공유가 만들어내는 가치에 매료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블로그‧페이스북 운영은 꿈을 향한 실험무대였다. 한 CMO는 “나만 아는 걸 공유했더니 누군가 도움을 받더라”면서 “그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일종의 의무감마저 생겼다”고 회상했다. 콘텐츠의 주제가 매년 바뀔 정도로 자유분방했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누군가 꼭 필요로 하던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웹 소설이 인기였던 시절엔 소설 블로그를 열고, 중학교 시험기간엔 시험공부 1분 요약집을 만들어 공유하는 식이다. 고교시절엔 재학하던 외국어 고등학교의 입시 정보를 다루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며, 후배들의 입시 컨설턴트를 자처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오지라퍼’였죠.(웃음) 누군가 필요하겠다 싶으면 내 일은 제쳐두고 달라붙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았어요. ‘누군가 막혀있는 문제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되는 일’에 희열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학창시절엔 그게 정보의 전달로 나타났던 셈이고요.”

 

한예진 CMO가 고교시절 운영하던 입시 Q&A 블로그. 당시 해당 블로그는 학교의 공식 채널로 통했고, 한 CMO 역시 교내에서 ‘예그리나’(블로그명) 선배로 불리는 등 유명세를 치렀다.
한예진 CMO가 고교시절 운영하던 입시 Q&A 블로그. 당시 해당 블로그는 학교의 공식 채널로 통했고, 한 CMO 역시 교내에서 ‘예그리나’(블로그명) 선배로 불리는 등 유명세를 치렀다.

콘텐츠 공유에 대한 흥미와 재능은 채널을 옮겨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됐다. SNS의 단골 소재인 맛집 리뷰부터 명언 페이지까지 실험에 실험이 거듭됐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플랫폼이라는 땅이 가진 파괴력이다. 한예진 CMO의 시선도 어느새 미디어 플랫폼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성향답게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첫 발걸음은 인턴십이었다. 광고나 미디어업계를 중심으로 기업들을 톺아보고 채용 관련 정보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눈에 꽂힌 회사가 바로 인플루언서 비즈니스 그룹 ‘레페리’였다. 지금의 한예진 CMO가 쌓은 모든 성취의 무대. 한 CMO에게는 일종의 사관학교였던 곳이다. 

 

| 심장이 뛰었다…그래서 맨발에 땀나도록 뛰었다
레페리는 뷰티와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인플루언서 밸류체인을 만들어나가는 인플루언서 비즈니스 그룹이다. 현재는 국내 최고의 뷰티 인플루언서 기업으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한예진 CMO가 인턴십을 구하던 2016년 당시만 해도 출범 4년차의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유튜브에 대한 수요나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대한 인식 역시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던 시절, 한 CMO는 이곳에서 어떤 미래를 기대한 것일까? 

“처음엔 너무 생소해서 끌렸어요. 저조차 유튜브를 안볼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회사의 어제와 오늘을 자세히 들여다봤죠. 그러다 아주 초창기에 올린 채용공고를 봤는데 굉장히 신선했어요.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턱없이 적다. 하지만 미안하지는 않다. 더 큰 걸 얻어가게 할 자신이 있으니까’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접한 순간 괜스레 심장이 뛰더라고요.”  

한예진 CMO 눈에 보인 것은 이 회사의 목표의식과 자신감이었다. 당시 회사의 성장세도 그런 자신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대기업 광고대행사나 빅테크 기업을 생각했던 구상은 송두리째 날아갔고, 오롯이 레페리를 통해 이루려는 꿈만을 구체화했다. 한 CMO의 도전무대가 스타트업씬으로 확정된 순간이다. 

레페리에서의 6년은 매순간 치열했다. 마케팅, 매니지먼트, 커머스, 브랜드 론칭, 신사업 TFT, CEO경영실, 투자 IR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다양한 부서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늘 치열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후퇴는 없었다. 늘 앞으로만 내달렸고, 여지없이 성과를 냈다. 

어떤 영역의 업무를 마주하든 한예진 CMO의 접근법은 동일하다. 문제를 포착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단순한 작동원리가 중심이 된다.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만 충실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통찰력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레페리에서 가장 고전했다던 투자 업무에서도 이런 원리는 똑같이 적용됐다. 투자자들과 심도있는 대화가 안 된다는 걸 파악하곤 경제 전문지들을 구독해가며 경제 전반을 공부했고, 직접 주식 시장에 참여해 투자와 주식의 흐름을 익히기도 했다. 한 CMO는 “투자업무 초반에는 못 알아듣는 말이 너무 많아서 최대한 자연스레 반응하는 제스쳐까지 연습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야근이 일상인 투자심사역들의 생활패턴을 고려해, 새벽 2~3시에도 편하게 응대해주는 패턴을 만든 것 역시 그녀만의 솔루션 중 하나였다. 결국 레페리는 지난 2019년에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한예진 CMO 앞에 기록된 또 하나의 문제해결 사례다. 

 

한예진 CMO는 “결국 모든 건 문제와 해결의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한예진 CMO는 “결국 모든 건 문제와 해결의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 이젠 새로운 무대…‘내일’이 빛날 곳에서 ‘내 일’을 찾았어요
한예진 CMO는 레페리의 전 사업부를 경험한 유일한 직원이다. 그럼에도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앱서비스 분야다. 미지에 대한 동경은 서서히 동력으로 바뀌어갔다. 이직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 CMO가 마케팅을 전담하게 된 클라이언트가 앱서비스였다는 사실은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플링’이라는 앱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센슈얼모먼트'였다. 그런데 콘텐츠가 범상치 않았다. 여성향 섹슈얼 오디오 콘텐츠, 쉽게 말해 성인 콘텐츠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저도 꽤나 ‘유교걸’이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편견들을 극복하고,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죠.” 

의심이 의욕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경분석 과정에서 여성향 성인 콘텐츠의 어마어마한 시장 잠재력을 파악했고, 오디오 플랫폼 시장의 성장세도 절감했다. 무엇보다 해당 서비스를 향한 회사의 강한 의지와 세심한 노고가 읽혔다. 마치 넷플릭스나 멜론 앱을 보는 듯한 세련된 UI로 심리적 접근성을 낮췄고, 양질의 콘텐츠 선별로 사용자의 니즈를 극대화시켰다. 한 CMO는 “여성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확신했다”면서 “내 마케팅 역량을 총동원하여 세상에서 빛을 보게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영화나 음악 어플을 연상시키는 플링의 디자인 콘셉트
영화나 음악 어플을 연상시키는 플링의 디자인 콘셉트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 플링의 마케팅은 투 트랙으로 진행됐다. 투자자나 관계자를 위한 브랜딩 전략과 잠재고객을 향한 퍼포먼스 전략이다. 먼저 브랜딩을 위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와 IT인프라의 메카로 꼽히는 강남‧판교 전역에서 옥외광고를 펼쳤다. 제약이 많은 온라인 광고의 틀 안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음지에 있는 성인 콘텐츠를 양지로 끌어 올리겠다는 상징성이 담긴 시도였다. 퍼포먼스를 위해선 자신의 전문 분야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적극 활용했다. 이 역시 인식 개선에 주안점을 뒀다. 동성친구들끼리 편하게 콘텐츠를 접하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커플이 함께 들으며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소구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3개월 만에 앱 다운로드 수 12만 건을 돌파했다. 마케팅 활동 이전보다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알리면 잘 될 것”이라던 직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 여성향 성인 콘텐츠라는 기치를 내건 만큼, 유저의 80%가 여성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한예진 CMO는 “지금까지 원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적 혁신’이라고 볼만하다”고 했다. 현재 플링의 오디오 콘텐츠는 1300여개, 특히 플랫폼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는 오리지날 콘텐츠 제작을 위해 10명의 전문 작가와 120명의 성우가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강남‧판교 일대에서 진행된 플링의 옥외광고 캠페인 풍경

외부 클라이언트의 일을 마치 제 사업인양 사활을 걸고 덤비는 한예진 CMO의 모습은 클라이언트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회사의 내일을 진두지휘할 열정적인 인재가 필요한 플링과 앱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일구고 싶던 한 CMO, 양쪽의 니즈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올해 4월, 플링의 마케팅을 전담하는 최고 책임자로 그녀가 전격 영입된 배경이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기업 제안도 있었고, 빅네임 플랫폼과 논의할 기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내일보다, 플링의 내일이 가진 여백이 훨씬 더 커보였어요. 플링이 절 선택한 이유도 회사의 내일을 위해서였고요.” 

 

| 드디어 정신 차렸네요. ‘기업가정신’ 말이죠.
출근 한 달 째, 한예진 CMO의 하루 일과는 이미 빼곡하다. 적응기간을 최소화하는 특유의 스타일답게, 공식 출근 전부터 회사와 세세히 소통하며 실전 준비를 마쳤다. 현재 가장 큰 이슈는 투자유치다. 레페리에서 체득했던 경험을 십분 활용해, 회사의 IR자료를 정비하고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성인 오디오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회사를 넘어, IT플랫폼으로 확장될 플링의 미래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한 CMO는 “비(非) 성인 카테고리 분야의 오디오 콘텐츠 론칭부터 축적된 보이스 데이터의 가공을 통한 AI 솔루션 영역까지 차근차근 그림을 그려놓았다”면서 “일탈을 일상으로 바꾸려는 고민과 노력을 통해 ‘넥스트 야놀자’의 길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신없이 내달린 6년. 겉으로 보기엔 많은 게 변한 것처럼 여겨진다. 콘텐츠와 마케팅을 다뤘던 ‘스페셜리스트’의 길은 어느새 회사 전반의 방향키를 잡고, 조직 내 소통과 조율을 책임지는 ‘제네럴리스트’의 길로 바뀌었다. 뼛속부터 문과생이었던 그녀가 숫자와 지표라는 경영의 언어를 새로이 숙달한 것도 큰 변화다. 보수적이다 못해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던 ‘유교걸’이 성인 콘텐츠를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는 점 역시 커다란 반전이다. 하지만 한예진 CMO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고, 그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큰 사명과 미션이 주어진다고 해도, 마음가짐만은 중학생 시절 중간고사 공부 1분 요약집을 만들어 올릴 때 그대로다. 

 

제네럴리스트의 길로 들어선 한예진 CMO
제네럴리스트의 길로 들어선 한예진 CMO

한예진 CMO는 자신이 선택한 두 곳의 회사 레페리와 플링에서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엿봤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오롯이 한 CMO가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으로 계승됐다. 이러한 가치가 완전히 여물어질 무렵이면, 그녀 앞에 또 다른 선택지가 놓일지도 모른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커질수록 꿈도 사명감도 동시에 커지는 것 같아요. 향후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은 중차대한 문제가 보이고 그걸 해결해 낼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면, 저만의 창업을 할 수도 있겠죠. 플링의 성장이 그 바로미터가 될 거예요. 앞으로 플링의 활약상을 지켜봐주세요!”

 

/사진: 한예진 CMO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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