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곳곳의 어둠을 ‘빛의 예술’로 담아내요.”
‘아트 인 메타버스’展 채정완 작가 인터뷰
“우리 사회 곳곳의 어둠을 ‘빛의 예술’로 담아내요.”
2022.03.17 14:20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제 작업은 제가 가진 불만거리를 시각화하는 일이에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 사회적 정의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은 모두 대상이 될 수 있죠. 절망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진짜 속내는 희망입니다. 그래도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작업이니까요.”

채정완(32) 작가의 무심한 듯 시크한 말투엔 그의 작품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만에 대한 단상’을 주제로 작업하는 채 작가는 우리 시대가 간직한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계속 들추고 상기시킬 때 비로소 상처가 아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엄근진’한 접근법은 거부한다. 한 때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작가의 풍자와 해학은 불편한 진실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공감과 위로의 기회를 넓힌다. 작가의 페르소나인 ‘민머리 양복 캐릭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관객을 위해 놓아 둔 징검다리다. 그는 오늘도 자신과 세상의 불만을 화폭에 옮겨 담는다. 작품 소재가 끊이지 않는 ‘웃픈’ 현실이 그의 작품 속 분위기와 묘하게 닮았다. 

 

채정완(사진) 작가
채정완(사진) 작가

| 만화가 꿈꾸던 청년, ‘만화 같지 않은 현실’에 각성 
채정완 작가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 보는 게 취미였고 그리는 건 특기였다. 중‧고교를 거치며 꿈은 더욱 구체화됐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는 일념에 대학도 애니메이션 학과로 진학했다. 재능과 흥미가 있던 영역에 전문적인 교육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졸업 전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사나 영상 프로덕션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단편영화 촬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순탄하던 커리어패스에 급제동이 걸린 건, 군 복무 시절 겪었던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예나지금이나 군대는 부조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사회의 일반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작은 사회’라는 이중성이 고질적인 병폐를 양산하는 탓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딱딱하게 굳어져 쉽게 와해되기도 힘들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DP’에서 그려낸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면 쉽게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채정완 작가의 군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대라는 조직의 비상식적인 모습에 힘겨워했고, 참고 인내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절망했다. 이를 조금이나마 덜어냈던 대상이 바로 그림이었다. 군 시절 창고관리 임무를 맡고 있던 채 작가는 어느 날부턴가 창고에 버려진 판자때기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나 불합리성 같은 것들이 표현의 주제였다. 그렇게라도 풀어내면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됐다. 그런데 후련함을 느낀 건 비단 채정완 작가뿐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같이 군 복무를 하던 동기들이 제 그림을 봤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재미있기도 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다면서, ‘다른 것도 그려달라’고 신청 릴레이까지 하더라고요. 정말 별것 아닌 작업이지만, 공감을 통한 위로의 힘이 정말 크다는 걸 절감했죠.”

 

외면과 행복 Ignoring and happiness, acrylic on canvas, 116.8X80.3, 2020
외면과 행복 Ignoring and happiness, acrylic on canvas, 116.8X80.3, 2020

군 시절의 경험은 채정완 작가의 ‘심미안’을 여는 계기가 됐다.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군 시절 느꼈던 부조리들이 사회 곳곳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런 불만들을 표현하여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내야겠다는 사명감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자신이 하고 있던 애니메이션 작업의 한계도 절감했다. 채 작가는 “군대만 전역하면 애니메이션 감독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려 했는데, 어느새 그런 목표의식이 무뎌진 것을 느꼈다”면서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투자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내 자유의지가 투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정치불신부터 가짜뉴스까지…그의 불만은 멈추지 않는다
2016년 졸업과 동시에 회화 작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채정완 작가는 동시대가 가진 고민을 들여다보며,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 무대였던 ‘시대유감’(2016‧BBOX)부터 가장 최근 진행됐던 ‘우리展’(2022‧갤러리다온)까지 5번의 개인전을 통해 한결같이 표현해 온 건, 그 시기에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불만’이다. 최근 발표한 작품 몇 점만 살펴봐도, 그의 예술관은 명징하게 드러난다. 

올해 선보인 ‘관람객(Audience)’은 ‘관종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맹목적이고 무분별해진 SNS인증문화를 비판한 작품이다. 채정완 작가는 “작가들은 갤러리나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풍경에 익숙한데, 최근에는 SNS가 하나의 갤러리이고 이용자 모두가 작품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면서 “서로가 서로를 관람하는 듯한 풍조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표현해 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관람객_acrylic on canvas_97.0X145.5_2022
관람객_acrylic on canvas_97X145.5_2022

동시대의 사회적 현상이나 흐름에 예민하다보니, 시의성 있는 주제도 곧잘 다뤄진다. 지난 달 발표한 ‘공중부양’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본격적인 대선 철을 맞아 정치인들에게 가진 불만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치인들의 언행을 보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권한과 능력은 국민들의 지지로부터 나오는 것이잖아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손에 쥔 것이 아니죠. 마치 자기 능력으로 공중부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밑에서 떠받쳐주고 있는 이 작품의 모습처럼 말이죠.”

 

공중부양_acrylic on canvas_53.0X40.9_2022
공중부양_acrylic on canvas_53.0X40.9_2022

지난 2월 21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채정완 작가가 포착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채 작가가 따끔하게 비판하는 사회 현상은 바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다. 이번 전시 출품작인 ‘투머치’는 너무 방대해지다 보니, 구설과 잡음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디지털 정보에 대한 이야기다. 정보 홍수시대를 살지만 정작 쓸 만한 정보는 찾기 힘들어지는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채정완 작가는 “예전에는 정보 비대칭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정보 사칭이 더 큰 문제”라며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알짜배기를 선별하는 데에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불만을 이미지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투머치_acrylic on canvas_112.1X162.2_2020
투머치_acrylic on canvas_112.1X162.2_2020

해당 작품은 지난 2020년에 그렸던 회화를 디지털 영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작품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의 레이어 층을 전부 따로 만들어서 각각의 움직임을 부여했다. 채정완 작가는 “불만에 대한 단상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선 지금까지의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도 “메시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에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측면에선 다소 새로운 시도를 덧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 시대유감이 원천, 시대 읽을 줄 아는 작가로 기억되고파…
채정완 작가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변화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동시대가 가진 불만들을 흥미롭게 제시하며 공유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개인의 불만이 사회적 담론으로 승화되길 기대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만 다루다보니 너무 어둡고 비판적이라는 지적을 듣기도 하고, 첨예한 이슈를 건드리는 통에 이해관계가 다른 쪽의 원성을 사는 일도 있지만, 그 또한 작품 감상의 한 갈래로 생각하고 덤덤히 받아들인다. 대신 불편한 얘기를 보다 쉽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는 표현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번 <아트 인 메타버스>전시를 기획‧운영하는 <아츠클라우드>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고민의 지점이 같았기 때문이다. 

“활동 초기에는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했어요. 이후 표현의 직관성과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 애니메이션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죠. 최근 NFT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 몫 했고요. 디지털 작품은 도대체 어디에서 관객과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알게 된 곳이 바로 ‘아츠클라우드’였어요. 디지털 아티스트로서 첫 선을 보일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마련된 셈이죠.”

 

회화에서 디지털‧미디어 아트로 표현 방식을 넓혀가고 있는 채정완 작가.
회화에서 디지털‧미디어 아트로 표현 방식을 넓혀가고 있는 채정완 작가.

상상 속의 세상을 꿈꾸던 애니메이션 감독 지망생은 이제 날 것 같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우뚝 섰다. 그가 더 부지런히, 그리고 더 예민하게 세상을 들여다볼수록 그의 작품은 보다 풍부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채 작가가 매스컴, SNS, 신간 도서 등에서 눈을 떼지 않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을 도모하는 이유도 시대를 바로 보고, 문제를 바로 알기 위해서다. “시대를 읽을 줄 알았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채정완 작가는 현재 반전(反戰)과 관련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그 전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위해서다.  

 

/사진: 채정완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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