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여신에서 창업가로…그녀의 ‘루틴’이 새로워졌다
차유람 루틴 주식회사 대표 인터뷰
당구여신에서 창업가로…그녀의 ‘루틴’이 새로워졌다
2021.10.26 12:33 by 이창희

은퇴한 운동선수의 인생 2막은 선택지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종목 경험을 살려 지도자의 길을 가거나, 인지도를 활용해 방송가에 진출하거나, 그도 아니면 얼굴을 내걸고 요식업에 뛰어드는 정도다. 의미 없는 일들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미션과 비전을 갖고 창업가의 길을 선택한 이는 흔치 않다. 조용히 사라지는 수많은 동료 선수들, 그리고 스포츠에 열의를 가진 일반 대중까지 양쪽 모두를 위한 플랫폼을 꿈꾸는 이가 있다. ‘당구 여신’에서 스타트업 CEO로 돌아온 차유람(34) 루틴주식회사 대표를 만나보자.

 

차유람 루틴주식회사 대표.
차유람 루틴주식회사 대표.

|시대 흐름에 따라 올라탄 유튜브, 그곳에서 움튼 창업의 꿈
차유람이라는 이름은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2000년대 후반,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당구 종목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한 여성 선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빼어난 외모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부족한 실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아니다. 2013년 인천 실내무도아시안게임 포켓볼 2관왕을 비롯해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는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2015년 전격 결혼, 그리고 그해 출산까지 하게 되면서 대중들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어 2년 뒤 둘째를 낳았고, 그 사이 방송에는 가끔씩 얼굴을 비췄지만 사실상 선수로서는 은퇴 수순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선수 시절 차유람 대표의 모습.
선수 시절 차유람 대표의 모습.

그렇게 4년이 흐른 2019년, 그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육아도 즐거웠지만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은 지울 수 없었다. 10대 때부터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가 30대 초반이라는 한창의 나이에 집에만 머물러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도 마음도 ‘찌뿌둥’하다고 해야 할까요. 집중할 곳이 필요했고, 뭔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선수로 돌아가는 것 빼고요.”

때마침 많은 종목의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열고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접했다. 선수 시절의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에서 얻은 갖가지 노하우를 전수하는 콘텐츠는 큰 인기를 끌었고 자신이 보기에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당구선수 출신인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튜브와 아프리카에 채널을 열고 당구 콘텐츠를 쉼 없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레벨에 맞는 당구 훈련법과 각종 스킬 같은 학습용 콘텐츠부터 선수 간 대결, 비하인드 스토리, 심지어 먹방 같은 흥미 위주의 콘텐츠까지 다양했다.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구라는 스포츠가 그간 마니아 중심의 종목에서 대중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들 정도였다.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낡은 당구장 한 곳을 인수해 실시간 라이브 채널과 오프라인 이벤트를 개최할 계획도 세웠다. 온‧오프라인의 시너지를 발판으로 더욱 퀄리티 높고 참여율 높은 당구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차유람 대표.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차유람 대표.

|은퇴선수와 대중 모두를 위한 플랫폼
하지만 장밋빛 구상도 잠시, 많은 이들이 그랬듯 해가 바뀌면서 찾아온 코로나19에 그도 발목이 잡혔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힘들여 마련한 공간은 무용지물이 됐고, 다시 반쪽짜리 온라인 콘텐츠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칼을 뽑았으면 휘둘러봐야 하는 성격인데...이대로 유튜브만 붙들고 있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깊은 고민이 시작됐죠.”

방향을 바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차 대표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운동선수의 은퇴 후 인생 2막의 설계가 쉽지 않다는 점, 특히 여성 선수들의 경력단절 문제였다. 본인처럼 유명세를 얻고 인지도가 높은 사람도 운동을 그만두면 앞길이 막막한데,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들의 경우는 더욱 캄캄할 터였다.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여러 사회적 안전망과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교육과 사회생활을 사실상 포기한 채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터라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안정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2019년도 은퇴운동선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은퇴선수 41.9%가 실업 상태로, 취업자 중 55.7%는 비정규직이고 46.8%는 월수입이 2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콘텐츠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임에도 정작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효과적이면서도 제대로 배우고 즐기기 어렵다는 문제였다. 특히 이는 당구 같은 상대적 비인기 종목들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됐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학업도 교우관계도 희생해가면서 청춘을 다 바쳐 운동에만 매진합니다. 그런데 은퇴하거나 경력이 끊기면서 자신이 쌓은 노하우나 전문성을 활용할 길이 없어지죠. 운동을 배우거나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콘텐츠만큼 효과적인 게 있을까요? 양쪽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죠.”

 

차유람 대표의 구상은 은퇴선수와 일반 대중이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차유람 대표의 구상은 은퇴선수와 일반 대중이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차 대표의 ‘루틴 주식회사’는 그 같은 고민 위에서 만들어졌다. 핵심은 출시가 임박한 스포츠 라이브커머스 어플리케이션 ‘루틴라이브’다. 운동선수 출신 크리에이터들의 레슨과 코칭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관련 상품을 라이브커머스로 판매한다. 당구를 시작으로 골프·러닝·사이클·테니스 같은 종목부터 캠핑·홈트레이닝처럼 트렌드를 타고 있는 분야까지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맞춰 기능도 3가지로 나눴다. 코칭이 중심이 되는 ‘레슨 라이브’, 유명 선수들이 특정 종목에서 대결을 진행하는 ‘매치 라이브’, 운동이 아닌 패션에 특화된 ‘스타일 라이브’가 그것이다.

“어떤 라이브커머스 앱에 들어가 보니 ‘이건 꼭 사셔야 해요’ 같은 강요가 상당히 부담스럽더라고요. 우리 플랫폼은 사용자가 제품을 구입하든 아니든 머무는 시간 동안 즐겁고 기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스포츠 관심이 덜한 분들에게도 재미를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어요.”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 선수(左)와 차유람 대표의 스포츠 네트워킹 콘텐츠도 개발중이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 선수(左)와 차유람 대표의 스포츠 네트워킹 콘텐츠도 개발중이다.

|집요함이라는 ‘원툴’에서 공감과 이해를 장착한 멀티플레이어로
차 대표는 창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쉽게 이뤄진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유튜브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는 미처 몰랐었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를 겪고 나니 창업가의 무거운 짐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에게는 사업 초기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에만 매달려온 터라 보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쉽지 않았다. 그가 ‘내가 휴대폰 케이스 한 개라도 팔 수 있는 사람인가’라고 자문했던 이유다.

“운동선수는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 노력할수록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반대로 사업은 사람과 어울리고 트렌드를 읽어낼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잖아요. 어릴 적부터 혼자 해외를 다니면서 나만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자존심이 강해졌는데, 창업자로서는 그게 자산이 아니라 공감능력 부족이란 단점이 되더라고요.”

차 대표는 창업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독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원래는 그도 최근까지는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는 MZ세대 중 하나였지만, 품질 높은 정보와 진리는 다름 아닌 책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최근에는 5월에 출간된 ‘네이버 vs 카카오’를 통해 두 기업이 주도하는 IT 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고 자신의 사업을 투영하기도 했다.

 

인터뷰 중인 차유람 대표.
인터뷰 중인 차유람 대표.

다행인 것은 사업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조력이 되는 많은 이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먼저 겪은 경험과 노하우에 응원과 독려까지, 그가 사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차 대표가 ‘문제 해결과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 정신에 빠르게 스며들고 깊게 공감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해오면서 제가 가진 무기는 몰입감과 집요함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이 업계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사업도 그렇게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만 일관했겠죠. 사실 창업가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무겁고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이제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거든요.(웃음).”

 

/사진: 루틴주식회사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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