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과 테크의 만남…뷰티‧패션 시장의 혁신 이끈다
이상민 한국디자인진흥원 팀장 인터뷰
스타일과 테크의 만남…뷰티‧패션 시장의 혁신 이끈다
2021.09.28 12:18 by 최태욱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거래액은 161조원에 이른다. 5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 이미 국내 소매시장의 35%에 달하는 거래가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통시장은 연일 뜨겁다. 신세계‧현대백화점‧롯데 같은 전통강자부터 네이버‧카카오‧쿠팡 같은 신흥 제국들이 한데 뒤섞여 잠재고객 확보를 위해 한바탕 고지전을 펼친다. 

이러한 전란에 아랑곳 않고 성큼성큼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이커머스 분야가 있다. 바로 뷰티‧패션 플랫폼이다. 패션 업계 전반의 침체나 이커머스 분야의 과당경쟁 틈바구니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과 충성도 높은 팬덤에 힘입어 승승장구 중이다. 가뜩이나 소비자 관여도가 높은 분야에 혁신기술과 콘텐츠 마케팅까지 적절히 버무리며 배타적 경제구역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구역의 ‘찐’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스타트업이다. 

멋짐에 똑똑함까지 더하려는 스타트업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같은 1세대 패션 플랫폼이 보여준 폭발력은 자연스레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해당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육성‧지원하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스타일테크‧유망기업 성장지원 프로그램’(이하 스타일테크)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벌써 3년째, 총 54개의 재기발랄한 스타트업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AI,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메타버스 등 현존하는 혁신기술이 총동원되어 스타일에 날개를 단다. 이들이 디자인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3년 간 스타일테크를 진두지휘하며 뷰티‧패션 분야 스타트업들과 함께 호흡했던 이상민 한국디자인진흥원(디자인테크팀) 팀장을 직접 만나봤다.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테크팀의 이상민(왼쪽) 팀장과 허수진 연구원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테크팀의 이상민(왼쪽) 팀장과 허수진 주임연구원

| 스타일과 테크, 대기업과 스타트업… 융합이 힘이다

“공예를 전공한 미술학도지만 유독 혁신 제품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새로 출시되는 스마트 기기나 처음 보는 서비스는 직접 사용해봐야 직성이 풀렸죠. 소위 ‘얼리 어댑터’랄까요?(웃음)”

어느 날 불쑥 이상민 팀장에게 맡겨진 스타트업 지원 업무는 일종의 ‘취향 저격’같은 것이었다. 지난 2015년, 초기 단계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업무가 그 시작이었다. 3년 정도 경험이 쌓이자, 불쑥 스타트업 생태계 안의 사각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팀장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IT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면서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의 논의를 통해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거나 조금 더 소프트한 영역의 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회상했다. 

때마침 국내외 스타일 산업 분야에선 새바람이 불고 있었다. 미국에선 패션 구독 서비스 플랫폼인 ‘스티치픽스’나 개인 맞춤형 케어용품 사이트 ‘펑션오브뷰티’ 같은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국내에서도 AI기반 피부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룰루랩’이나 섬유 소재 DB 플랫폼 ‘패브랙타임’ 등이 크게 주목받고 있었다. 중기부의 지원과 중첩되지 않고, 디자인과의 융합을 통해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는 분야. 그러면서도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시장.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시선이 패션‧뷰티에 꽂힌 이유다. 

“우리나라 유니콘의 26%는 스타일 테크 분야의 기업이란 통계가 있어요. 지원사업을 기획하면서 보니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소비자 분석을 통해 개인화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들이 무섭게 성장하는 게 보였거든요. 이런 경향이 뷰티‧패션 쪽의 한류 콘텐츠와 합쳐지면 글로벌 무대에서 이름을 드높이는 기업도 나올 수 있겠다 싶었죠.”

 

2019 스타일테크 토크콘서트 현장
2019 스타일테크 토크콘서트 현장

지난 2019년, 출범한 스타일테크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보다 실질적이며 현실에 적용 가능한 지원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얻어진 방향성이다. 이상민 팀장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중소기업 지원과 인재 육성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조직이기 때문에, 창업기업이 독자적인 성장을 이뤄나가기 어렵다는 현실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이에 같은 분야의 큰 기업들을 참여시켜, 이들과 협업하고 소통하게 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터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출범 첫해부터 아모레퍼시픽이나 이랜드, 두산이노베이션 같은 대기업들을 프로그램에 합류시켰던 이유다. 

하지만 규모나 방향성이 전혀 다른 두 조직의 협업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양 쪽의 아교 역할을 자처하며 나섰던 이 팀장조차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어렵사리 주선한 만남의 자리가 소득 없이 끝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우리 아이디어를 뺏길 것 같다”며 대기업과의 협업을 거부하는 스타트업도 있었다. 이 팀장은 “처음엔 어떤 자세를 가지고 협의에 나서야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모든 게 모호했다”라며 “말 그대로 마음만 앞섰던 시기”라고 귀띔했다. 

첫해의 시행착오는 이듬해의 자양분이 됐다. 시혜성 지원이 아니라 상호협력을 추구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치를 이식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프로그램 중간에 참여했던 대기업의 합류 시점을 맨 앞쪽으로 확 끌어당긴 것이다. 지원할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단계부터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대기업의 니즈 또한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대기업 사이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었다. 경쟁하듯 전담부서가 신설되면서,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협업하는 업무의 당위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스타일테크의 대기업-스타트업 협업의 고리도 점점 단단해져 갔다. 지금까지 스타일테크 내에서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이 협업한 사례는 총 9 건에 이른다. 

“대기업의 유통망을 스타트업의 검증무대로 활용한 사례도 있고, 공동 프로모션 캠페인을 진행한 사례도 있어요. 눈에 보이는 협업 성과가 없다고 해도, 대기업을 통해 스타트업이 배우는 게 많죠. 대기업 담당자와의 오랜 논의를 통해 자사의 사업모델이 시장성이 없다는 걸 확인한 스타트업이 사업모델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경우도 있었어요.(웃음)”

 

올해 스타일테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허수진 연구원(왼쪽)과 이상민 팀장
올해 스타일테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허수진 주임연구원(왼쪽)과 이상민 팀장

| 가시적 성과 뚜렷…“머지않아 유니콘?!”
올해로 3년째인 스타일테크는 해를 거듭할수록 패션‧뷰티 분야의 활력을 불어넣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존재감을 다져가고 있다. 올해는 무려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54개의 혁신기업이 이곳을 거치며, 산학연에서 엄선된 39명의 멘토에게 219세션의 멘토링을 소화했다. 

선발된 스타트업들은 패션‧뷰티 분야에 혁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시켰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1기에 선발됐던 ‘거북선컴퍼니’는 수기로 거래를 해오던 동대문 시장 도소매 업체들을 위해 B2B 핀테크 플랫폼을 개발해 동대문 정산 시스템의 혁신을 이뤄냈고, 3기에 참여하고 있는 ‘타키온비앤티’는 AR/VR을 통해 가상 메이크업을 서비스하는 뷰티버스 플랫폼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코스닥 상장까지 추진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패션 AI기업 ‘옴니어스’ 역시 스타일테크를 거친 팀이다. 패션 이커머스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솔루션으로 시장에 침투한 옴니어스는 GS홈쇼핑, 현대백화점, 롯데온 같은 대기업들과 두루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올해는 현재 가장 핫한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손꼽히는 ‘브랜디’도 참여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상민 팀장은 “패션‧뷰티와 첨단 기술이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도입되어 새로운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단순히 판매‧유통 단계의 개인화 서비스를 넘어 기획, 디자인, 제작, 물류, CS 영역의 여러 벨류체인에서 무수히 많은 변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 스타일테크 3기 오리엔테이션 현장
2021 스타일테크 3기 오리엔테이션 현장

이상민 팀장이 꼽는 최고의 성과는 스타일테크 프로그램을 통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출범 첫 해 양 조직 간의 온도와 시각의 차이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만큼, 이러한 변화가 주는 보람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초기부터 힘을 더해준 아모레퍼시픽나 이랜드를 비롯해 F&F나 클리오 같은 업계의 선도 기업들은 이제 스타일테크라는 무대를 자사 혁신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프로그램의 근간이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점에서 이는 지원사업의 내실을 두텁게 하는 희소식이다. 

“초반에는 대기업들이 약간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어요. 하지만 좋은 스타트업들이 참여하고, 시장에서의 활약도 이어지면서 대기업들의 자세가 점차 진지해져가는 걸 느끼죠. 꼭 참여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오는 대기업도 있을 정도에요.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이 안에서 건강한 협업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스타일테크를 통해 배출되는 유니콘도 곧 만나볼 수 있겠죠?(웃음)”

 

/사진: 한국디자인진흥원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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