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프롭테크 잇는 의식주 마지막 퍼즐…‘스타일테크’
푸드테크·프롭테크 잇는 의식주 마지막 퍼즐…‘스타일테크’
2021.09.28 11:51 by 이창희

인간 생존의 3요소인 의·식·주. 이들 중 관련 산업의 기술 융합 및 혁신 속도가 눈에 띄는 분야는 ‘식’과 ‘주’다. 각각 푸드테크와 프롭테크라는 이름을 달고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의’ 차례다. 국내 패션과 뷰티 시장 규모는 연간 60조원에 육박하지만, 특유의 경직성 탓에 그간 성장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분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장 일상적인 분야에 갖가지 기술이 접목되면서 끝 모를 시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이른바 ‘스타일테크(style-tech)’의 등장이다.

 

오늘날 패션·뷰티 분야는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오늘날 패션·뷰티 분야는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짧은 역사, 그러나 빠른 성과
스타일테크는 패션·뷰티 분야에서 AI(인공지능)·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의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신사업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한 ‘스티치 픽스(Stitch fix)’다. 패션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이 기업은 고객이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면 AI 알고리즘을 통해 잘 어울리는 의류와 액세서리를 추천해주고 판매·배송까지 담당한다. 이들이 축적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높은 추천 성공률과 재구매율의 원천이다.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전면에 대두되고도 한참이 지난 2019년이 그 시작점이다. 당시 이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 패션·뷰티 스타트업은 수적으로 풍부했지만, 뚜렷한 기술이 결합된 서비스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때다.

이때 물꼬를 튼 곳이 한국디자인진흥원이다. 창립 49주년을 맞은 2019년 초 전격적으로 출범한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다. 테크 융합을 통해 패션·뷰티 분야 기업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산업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목적이었다.

디자인진흥원은 사업비와 공유오피스 공간을 지원하고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산·아모레퍼시픽·이랜드·F&F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타트업들과 손발을 맞췄다. 이 결과 첫해 23개 기업에 이어 지난해 17개 기업이 선정돼 비즈니스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 올해도 14개 기업이 해당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다.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 규모는 총 116억원 수준이다.

 

2019년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 프로그램 선정증 수여식.(사진: 한국디자인진흥원)
2019년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 프로그램 선정증 수여식.(사진: 한국디자인진흥원)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 프로그램은 스타일테크 분야의 현 주소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셀러허브’는 이커머스 통합관리 플랫폼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이달 17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미지 인식 기반 상품속성 자동 태깅을 비롯해 각종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옴니어스’ 역시 해당 프로그램을 거쳤다. 옴니어스는 최근 본격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혁신적인 서비스로 무장한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이 시장에 침투하면서, 패션 업계의 디지털 혁신도 가속화되고 있다. 많은 소규모 셀러들이 셀러허브를 통해 상품등록부터 수정·주문수집·통합정산까지 손쉽게 해결하고 있다. 에이블리·지그재그·브랜디·GSSHOP·롯데온·현대백화점·이랜드 등이 옴니어스의 AI 솔루션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예다.

 

|당신도 몰랐을 패션·뷰티와 기술의 만남
패션·뷰티 분야는 그간 기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였다. 개인의 취향이 너무나 다양한 데다 오프라인을 중심의 소비가 여전히 주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갖가지 편의성으로 무장한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업계 전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는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이 있다.

대표적인 핵심 기술은 AI와 빅데이터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특정 의류를 검색하면 AI가 해당 의류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제품까지 추천해준다. 여기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다른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교차 추천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로 인해 추천 기능은 더욱 정교해진다. ‘디자이노블’ 역시 사용자가 특정 색상·무늬 등을 검색하면 AI가 불과 몇 초 만에 디자인을 마친 뒤 샘플 제품을 쏟아내고, 간단한 보완 작업을 거쳐 의류로 탄생한다. 이는 AI가 온라인상에 공개된 수백만 벌의 의상을 수집해 사용자 선호도가 높은 배색과 디자인을 찾아낸 결과다.

 

에이블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패션 제품을 빠르게 추천해주는 서비스다.(사진: 에이블리)
에이블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패션 제품을 빠르게 추천해주는 서비스다.(사진: 에이블리)

신발 분야의 패스트패션 스타트업 ‘크리스틴컴퍼니’는 온라인 트렌드 분석에 AI 기술을 도입해 상품 기획부터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1년에서 1개월로 크게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120여 가지에 이르는 제조 공정 역시 AI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제조 원가를 절반 이상 절감했다.

패션검색 플랫폼 ‘온더룩’에서는 특정 의류를 검색하면 해당 의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최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제품과 착장 정보가 제공되고, 곧바로 구매까지 가능하다. 이대범 온더룩 대표는 “요즘은 부동산도 맛집도 모든 게 3초면 스마트폰으로 조회가 되는데 의식주 산업에서 패션만 이런 디지털화(化)가 더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며 “패션 데이터가 퀄리티 높은 상태로 계속 쌓이면 더욱 높은 차원의 스타일테크가 구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워드에 맞는 제품 정보와 착장 이미지를 제공하고 구매까지 가능한 온더룩.(사진: 온더룩)
키워드에 맞는 제품 정보와 착장 이미지를 제공하고 구매까지 가능한 온더룩.(사진: 온더룩)

2020년대 들어 크게 각광받고 있는 AR·VR 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올해 스타일테크 유망기업 지원 프로그램 3기 기업으로 선정된 ‘타키온비앤티’는 뷰티 라이프 어플리케이션 ‘티커(Ticker)’ 출시 한 달 만에 3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티커는 실제 뷰티 제품의 체험이 가능한 AR 카메라부터 다자간 영상통화, 소셜 기능까지 탑재해 자연스러운 가상 메이크업을 경험할 수 있다. AR로 테스트한 제품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이커머스 기능도 곧 추가될 예정이다.

헤어뷰티 스타트업 ‘버츄어라이브’의 ‘헤어핏’은 AR 기술을 이용해 헤어스타일과 색상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가상체험 어플리케이션이다. AR살롱을 통해 헤어디자이너와 고객의 시간을 절약하고 코로나19로 비대면을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미용실을 방문하는 부담도 줄여준다. 이들은 최근 국내 회원 수 200만명을 돌파했으며 올 하반기 50여 곳의 미용실을 통한 시범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알리아스’가 만든 AR 기반 메이크업 어플리케이션 ‘쀼띠’ 역시 비슷한 기술이 접목됐다. 카메라에 사용자의 얼굴을 비추면 뷰티 크리에이터의 화장 시연이 증강현실을 통해 자신의 얼굴에 똑같이 구현되는 방식이다. 사용자들은 뷰티 크리에이터의 화장기술을 손쉽게 배우고 시장에 출시되는 신제품이나 해외 유명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 방문 없이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전면과 측면 사진 2장으로 신체정보를 파악해 의류를 추천해주는 ‘마이핏’을 개발한 ‘에이아이바’는 최근 VR 중심의 가상 쇼룸 플랫폼 ‘비어(VEER)’를 준비 중이다. 3D 모델링 방식을 통해 사용자들은 VR 쇼룸에서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자신과 똑같은 신체 사이즈의 아바타에 갖가지 브랜드 제품들을 착용시켜 볼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김보민 에이아이바 대표는 “실제 의류 생산 이전에 디자인한 옷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어 불필요한 제조를 피할 수 있고 마케팅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아이바의 가상 쇼룸 ‘비어’.(사진: 에이아이바)
에이아이바의 가상 쇼룸 ‘비어’.(사진: 에이아이바)

|MZ세대 수요를 잡아라
온라인을 기반으로 기술 융합이 강점인 스타일테크 스타트업들의 핵심 타깃은 ‘MZ세대’다. 이들은 태생적·환경적으로 이전 세대와 비교해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다. 과거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의류와 화장품을 경험하고 소비하는 대신 온라인상에서 최대한 정보를 얻고 구매까지 실행하는 소비를 선호한다.

이에 발맞춰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의 플랫폼들은 오프라인보다 다양한 제품들을 상세하고 유용한 정보와 함께 더 빠르고 편리하게 MZ세대에 공급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많은 스타트업들이 검색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보완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패션·뷰티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이유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개성이 뚜렷하며 온라인에 강한 MZ세대는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의 공략지점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개성이 뚜렷하며 온라인에 강한 MZ세대는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의 공략지점이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특징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인스타그램·유튜브 속 셀러브리티들의 패션을 매일 4000개 이상 업데이트하는 에이블리와 아바타가 존재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에이아이바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쇼핑부터 소비까지의 과정을 중요하시는 MZ세대만의 특성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패션 스타트업 ‘모이버’는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리워드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자들은 패션 스타일 유형화 콘텐츠를 즐겁게 소비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 스스로 다양한 패션 콘텐츠를 탐색하고 참여하는 ‘놀이터’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일면 뚜렷하면서도 빠르게 요동치는 MZ세대의 소비 패턴을 고려하면 스타일테크 스타트업들의 전략도 신속하고 기민하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술의 융합과 활용 역시 선한 영향력 또는 친환경 같은 키워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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