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진화의 역사, 당신이 몰랐던 ‘C레벨의 세계’
기업 진화의 역사, 당신이 몰랐던 ‘C레벨의 세계’
2021.09.14 14:29 by 이창희

각종 신기술의 등장 속에 오늘날 기업의 형태는 한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더 효율적인 조직을 구축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뒤따른다. 순발력을 도모하기 위해 부서를 팀제로 재편하는가 하면 수평적 문화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형태가 아무리 다양해져도, 누군가 조직을 이끌고 의사결정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복수의 전문 경영진 개념인 ‘C레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 스타트업 시대(Grand start-up era)’를 맞아 다양한 역할의 C레벨 직제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직제는 효율성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트렌드는 C레벨이다.
기업의 직제는 효율성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트렌드는 C레벨이다.

|C레벨의 등장, 혁신과 생존을 위한 산물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획일화된 조직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의 소유주 1명이 대부분의 권력을 틀어쥐고 나머지 모든 직원들을 노동자로 부렸다.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계급의 차이가 있을 뿐 각각의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만기친람’ 체제는 곧 한계를 드러냈다. 기업들은 성장하면서 덩치가 커지고 인력이 늘어났다. 생산·판매하는 제품·서비스가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따라잡아야 할 소비자의 수요와 트렌드도 시시각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유능하고 부지런하다 해도 홀로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결국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를 중심으로 기업 조직 체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다국적 기업들을 필두로 전문 경영인을 일컫는 CEO 개념이 등장했고, 곧이어 CEO의 권한이 전문성에 따라 분권화되면서 각 업무 부문을 세분화하여 책임지는 경영자 직제들이 생겨났다. 빠른 의사결정 과정을 구축하고 업무 속도와 효율성을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결과로 회장-부회장-사장, 전무-상무, 부장-차장-과장-대리-주임 등으로 분류되는 전통적인 직급 체계는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이는 최고경영자인 CEO를 비롯해 CFO(최고재무책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CMO(최고마케팅책임자) 등 C레벨 경영진과 실무급 매니저들로 대체되고 있다.

C레벨 조직은 전통적인 기업 조직에 비해 보고 및 지휘 체계가 간결해 역동성과 신속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여기에 각 부서 간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산업 흐름에 대응하고 적응하면서 혁신과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오늘날 기업으로서는 최적의 선택이다.

 

C레벨 조직은 오늘날 혁신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적의 편제다.
C레벨 조직은 오늘날 혁신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적의 편제다.

|무지개 빛 C레벨의 시대
C레벨 시스템의 최대 강점은 그 직제가 가진 무한한 탄력성이라고 할 수 있다. ‘C(chief)’와 ‘O(officer)’ 사이에 어떤 것을 넣어도 새로운 직함이 탄생한다. 현재 어느 정도 보편화된 CFO·CTO·CMO 외에도 기업의 형태와 주력 제품·서비스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제품·서비스를 널리 알리고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 이슈가 있는 기업이라면 CCO(Commutication)를,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싶다면 CSO(Scientific)를, 구매 담당이 필요하다면 CPO(Purchasing)를 각각 신설하면 된다.

같은 이치로 CIO(최고정보책임자), CRO(최고위기관리책임자), CHO(최고인사책임자), CLO(최고교육책임자), CKO(최고지식경영책임자) 등도 가능하다. 물론 그만큼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부여됨과 함께 책임도 뒤따르게 된다.

외부에서 볼 때도 C레벨의 형태를 통해 그 기업의 특징 혹은 방향성을 읽어낼 수 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17년 서비스 사용 편의 개선과 품질 개선을 목적으로 CPO(최고제품책임자) 직급을 새로 만들고 SK플래닛 출신의 김용훈 이사를 영입했다. 대형 게임사인 ‘엔씨소프트’가 CCO(최고창의력책임자)를 신설한 것도 게임 개발 영역에서 창의력을 불어넣기 위한 결정이다.

또한 기업에 따라 최고재무책임자인 CFO나 최고기술책임자인 CTO 등을 부사장급으로 대우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 유치 혹은 인수·합병(M&A)이 필요하거나 개발이 핵심 역량인 기업에서 해당 책임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내부 조직 강화 차원에서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따로 두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회사 운영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임직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함으로써 말 그대로 중심을 잡고 ‘운영’을 맡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삼성물산 출신의 김지영 상무가 스타트업 ‘라엘’의 COO로 이직하면서 이슈가 된 바 있다. 최근에는 CEO가 이를 겸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다.

 

C레벨은 경영의 한 축으로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는다.
C레벨은 경영의 한 축으로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는다.

|스페셜리스트는 그렇게 제너럴리스트가 된다
이 같은 C레벨의 폭넓은 분화는 스타트업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소규모 인원으로 창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초기 구성원 하나하나가 C레벨의 역할을 맡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형태와 주력 제품·서비스, 규모 및 시기에 맞게끔 C레벨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의 특징이다.

스타트업의 C레벨은 일반 기업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C레벨 내에서도 직급을 구분하는 울타리가 상대적으로 낮다. 일반 기업의 CFO가 회계·세무 전문가 출신으로 자금의 전체적인 흐름을 관장한다면, 스타트업의 CFO는 투자 유치와 M&A 과정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CTO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CTO는 실무자와 달리 더 높이 더 멀리서 기술 트렌드를 조망하고 그 배경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는 시야가 요구된다. 기술과 관련한 법적 이슈나 정책적 규제 등에 대응하고 사내 다른 직군과의 협업 방식과 속도를 조율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개발팀 구축 단계에서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영입하는 채용 전문가의 능력도 갖춰야 한다.

CMO는 마케팅을 담당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회사 영업의 모든 것을 담당한다는 뜻도 된다.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고 판로를 개척하며 수익을 발생시키기까지, 어느 하나 무관한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CMO들의 회의와 미팅은 빈도와 시간 면에서 C레벨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C레벨 내에서 직군을 넘나들며 업무를 맡는 일도 일상적이다. CMO는 더 좋은 제품·서비스로 마케팅을 하기 위해, CFO는 더 많은 투자 유치를 위해 CTO의 영역에서 협업할 수 있다. 반대로 CTO는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금 마련을 CFO에 요청하고 독려할 수 있으며, CMO로부터 시장 트렌드를 공유 받아 이를 개발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 각자가 맡은 일 외에도 내부의 흐름을 파악하고 필요시 각종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적은 인원으로 업무를 나눠 맡아야 하는 스타트업의 규모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작은 만큼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 특성을 살려 그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서다. 스타트업의 C레벨 인사들이 명함은 ‘스페셜리스트’이면서도 역량은 ‘제너럴리스트’의 색채를 띠는 배경이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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