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관련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제기한 중징계 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금융회사 CEO를 대상으로 한 제재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손 회장 측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손 회장이 금감원의 중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 1심 판결에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월 우리은행장을 겸했던 손 회장을 상대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기반해 DLF 불완전판매가 우리은행 경영진의 내부통제 부실에서 기인했다는 판단에 따라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내렸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분류된다. 이 중 문책경고 이상은 중징계에 해당하며, 연임이 제한되고 금융기관에 3~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는 내부 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근거로 이 같은 제재를 내렸다. 금감원은 처분 사유로 △상품선정위원회 생략 여부 △리스크 관리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및 결과 미비 △투자자 권유 사유 정비 미비 △점검체계 기준 미비 등 5가지를 들었다.
이에 손 회장은 금감원의 제재에 불복해 지난해 3월 중징계에 대한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 취소 청구 소소을 제기했다. 손 회장은 금감원의 내부통제 미비를 근거로 임원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충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맞섰다.
법원은 양측의 공방에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니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금감원의 제재 사유 5개 가운데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의무 위반’만 인정되고, 다른 4개 사유는 모두 인정되지 않아 금감원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수가 없어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금감원으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제재를 받은 다른 금융사 CEO들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DLF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 중징계를 받아 금감원을 상대로 중징계 처분 취소소송을 진행 중이다. 함 부회장 역시 손 회장과 마찬가지로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으로 제재를 받았다. 손 회장이 1심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함 부회장 역시 재판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밖에도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중·경징계를 받은 CEO들의 최종 제재 결론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가 예고된 CEO는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이상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이상 문책경고) 등이다.
징계 관련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은성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손 회장의 1심 판결을 지켜본 후 확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 만큼, 이번 재판 결과를 반영해 금융사 CEO에 대한 제재안을 최종 확정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