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스타트업씬을 읽는 열쇠, ‘M&A’
2021년 스타트업씬을 읽는 열쇠, ‘M&A’
2021.08.24 18:24 by 이창희

인수·합병(M&A·Mergers and Acquisitions)은 기업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과거에는 덩치가 큰 기업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을 ‘꿀꺽’하는 형태가 많아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비즈니스 분야의 기술이나 인력을 보완하거나 자금을 마련하는 등 다분히 전략적인 판단 속에 이뤄지는 거래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대기업-스타트업의 M&A는 상호보완이라는 대전제 속에 이뤄진다.
대기업-스타트업의 M&A는 상호보완이라는 대전제 속에 이뤄진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했나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서로가 가진 강점과 약점이 대체로 엇갈린다. 대기업은 거대 자본과 시장 지배력을 보유했지만 특유의 경직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반면 스타트업은 기술력과 함께 유연함을 바탕으로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을 보유했지만 자본력과 시장 영향력 면에서 취약하다. 그래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M&A는 서로의 강점을 취하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이를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M&A다.

롯데쇼핑은 올해 초 회원 수 2300만명을 보유한 ‘중고나라’를 1150억원에 인수했다. 이는 롯데가 연간 20조 원 규모인 중고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으로, 중고나라를 일본의 ‘메루카리’처럼 안전거래 시스템과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중고나라는 국내 최대의 중고거래 플랫폼이지만 당근마켓·번개장터·헬로마켓 등 각기 다양한 기능을 갖춘 후발 플랫폼들의 거센 도전이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인수로 대기업 자금력과 인프라를 등에 업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통신 대기업 KT의 자산관리 솔루션 핀테크 스타트업 ‘뱅크샐러드’ 투자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KT는 250억원으로 뱅크샐러드의 시리즈D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를 통해 KT는 마이데이터 사업 면허와 핀테크 개발 역량 확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금융 정보를 하나의 앱에 모아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업계에서는 케이뱅크·BC카드·올레TV까지 보유한 KT가 뱅크샐러드가 가진 이 같은 역량을 통해 시너지를 도모하고 나아가 디지털 통합 플랫폼 출범까지 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현모 KT 대표이사. KT는 뱅크샐러드 인수를 통해 디지털 통합 플랫폼을 도모할 계획이다.(사진: KT)
구현모 KT 대표이사. KT는 뱅크샐러드 투자를 통해 디지털 통합 플랫폼을 도모할 계획으로 보인다.(사진: KT)

반대로 뱅크샐러드는 자금 수혈이 시급했다. 방대한 금융 데이터를 보유하고 마이데이터 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했지만 최근 2년 동안 450억원 이상의 적자가 쌓였다. 치솟던 기업 가치도 교착 상태에 빠진 시점이었다. 다행히 이번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마이데이터 사업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스타트업 간 상호보완적 ‘윈윈’ 사례는 앞으로 계속 가속화될 전망이다. 활로 모색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대기업, 그리고 M&A를 통한 엑시트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스타트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다. 이런 모습이 M&A의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이런 모습이 M&A의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

|네이버 vs 카카오, IT공룡들의 ‘M&A 전쟁’
상대적으로 유연한 문화를 가진 IT 분야 대기업들은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과 시장 지배력 확장에 더욱 적극적이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쟁은 가히 전쟁이라 이를 만한 수준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미래 먹거리 마련에 집중하면서 충돌 지점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는 본사를 중심으로 꼼꼼하고 신중하게 M&A를 시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빠른 속도보다는 완성도 높은 시너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네이버의 기업형 액셀러레이터 ‘D2SF(start up factory)’를 총괄하는 양상환 센터장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와 스타트업이 함께 일을 도모하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이 걸린다. 단기적 성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네이버와 스타트업이 교차하는 지점을 생각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도모해야 한다.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DNA와 스타트업 DNA가 다르기 때문이다.”(양상환 센터장)

 

네이버의 M&A는 속도보단 완성도다.(사진: SUNG YOON JO/ Shutterstock)
네이버의 M&A는 속도보단 완성도다.(사진: SUNG YOON JO/ Shutterstock)

그래서 네이버의 선택을 받은 스타트업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잠재성보다도 기술 역량을 충분히 갖춘 경우가 많다. ‘퓨리오사AI’는 학습된 모델로부터 결과를 추론하는 데 최적화된 인공지능 칩을 설계하는데, 네이버는 로보틱스·자율주행·동영상·클라우드 분야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을 활용해 AI 품질 고도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크라우드웍스’는 네이버와 3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네이버클로바·파파고를 활용한 다국어 작업 등 함께한 프로젝트만 350개에 달할 정도다.

이밖에도 풀필먼트 물류 시스템으로 네이버 쇼핑과의 시너지를 낸 ‘위킵’, 네이버와 도소매상 온라인 판로 개척에 뛰어든 ‘브랜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신선식품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투입된 ‘정육각’ 등도 널리 알려진 사례다.

이에 맞서는 카카오는 계열사별로 자율권을 갖고 상당히 공격적으로 M&A에 임하는 모습이다.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6개월간 47곳을 대상으로 M&A를 진행해 국내 매출 500대 기업 중 인수합병 건수에서 단연 1위다. 누적 투자액은 2조5900억원에 달한다.

실제로 계열사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M&A 소식이 들려온다. 카카오키즈는 영어 에듀테크 스타트업 ‘야나두’ 인수를 시작으로 교육 콘텐츠 확보에 300억원을 투자하고 AI 기반의 ‘소셜 러닝 커머스’를 계획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게임 개발사 ‘엑스엘게임즈’를 시작으로 ‘라이온하트’, ‘세컨드다이브’, ‘오션드라이브’, ‘넵튠’, ‘웨이투빗’ 등의 지분을 확보했고 이는 최신작 ‘오딘’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카카오스타일은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과 합병을 통해 글로벌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으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리모트 몬스터’를 인수해 신규 기업용 플랫폼 ‘카카오워크’를 출시했다.

 

광폭 M&A가 두드러지는 카카오.(사진: letspicsit/ Shutterstock)
광폭 M&A가 두드러지는 카카오.(사진: letspicsit/ Shutterstock)

이와 관련해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카카오가 스타트업으로 출발해서 성장한 기업이고 카카오벤처스 같은 CVC를 운영하다보니 스타트업 생태계에 보다 적극적인 것 같다”며 “엑시트가 많이 이뤄지면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자본이 회수되고 창업자·인력이 재창업에 나서거나 투자자로 변신하는 등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맞대결 전선에서도 M&A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험업계 진출을 목적으로 네이버파이낸셜이 지난해 NF보험서비스를 내놓자 카카오페이는 크라우드 보험 서비스 스타트업 인바이유를 인수한 후 KP보험서비스 출시로 맞불을 놨다. 양측은 최근 법인보험대리점 에이플러스에셋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둘러싸고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두 회사의 간판인 콘텐츠 분야에서는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약 6700억원에 북미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용자 9400만명을 보유한 왓패드와 7200만명의 이용자가 있는 네이버웹툰을 통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다. 카카오 역시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와 웹툰 플랫폼 ‘타파스’를 연이어 품으며 반격에 나섰다.

 

|21세기에도 유효한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스타트업이 세계 경제의 주요한 축으로 올라서고 한국에서도 확실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M&A는 갈수록 활성화되는 모양새다.

국내 대기업들이 한국이 아닌 해외 스타트업에 주목한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다. 자사의 신사업과 중장기 계획에 맞춰 세계 각지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 스타트업 M&A에 소극적이었던 대기업들이 해외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대표주자는 삼성전자다. 과거엔 기술 보완이나 현지 생산거점 마련 등의 이유로 M&A를 진행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업에 접목하기 위해 유망한 스타트업을 적극 물색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99년 삼성벤처투자 설립이다. 2010년에는 CVC전문 리서치 기업인 영국의 글로벌 코퍼레이트 벤처링으로부터 하이테크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VC 중 8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삼성이 인수한 주요 기업은 미국 AI 의료로봇 스타트업 ‘필로헬스’, 미국 디스플레이 업체 ‘나노포토니카’, 이스라엘 반도체 스타트업 ‘윌롯’, 동남아 인사관리(HR) 스타트업 ‘스윙비’ 등이다. 이는 삼성의 주력이자 미래 산업이 원격의료, 모바일 디스플레이, 반도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과 공유차량 산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동남아 최대 차량 호출 ‘그랩’, 인도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 ‘올라’에 3500억원을 투자했다. 자율주행 기술 관련 로봇 스타트업 ‘보스턴다이나믹스’, 유럽 최대 전기차 급속충전 기술을 보유한 ‘아이오니티’. 영국 스마트 전기자동차 제조 스타트업 ‘어라이벌’에는 M&A를 염두에 둔 투자를 진행했다. 전반적으로 지분 투자에서 시작해 M&A로 옮겨가는 방식의 전략으로,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을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M&A 외에도 차량 공유에 쓰일 자동차를 중동과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러시아 스타트업 혁신센터와 손잡고 차량 공유 스타트업을 직접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해외 스타트업 M&A에 적극적인 대기업들.(사진: 삼성벤처투자·현대자동차·LG테크놀로지벤처스)
해외 스타트업 M&A에 적극적인 대기업들.(사진: 삼성벤처투자·현대자동차·LG테크놀로지벤처스)

LG그룹은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까지 계열사 5곳이 출자한 4억2500만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 중이다.
 
이들이 주목하는 분야는 VR·AR, 모빌리티. AI 등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모바일 광고 스타트업 ‘몰로코’, 이스라엘 AI 헬스케어 스타트업 ‘제브라메디컬비전’, 데이터 머신러닝 기술을 보유한 ‘데이터플리츠’, 제조업 특화 AI 솔루션 스타트업 ‘미카나락스’, 딥러닝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딥인스팅트’ 등이 주요 포트폴리오다. 이들 스타트업과 LG 계열사들의 개별적인 기술 협력과 시너지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외 자본의 국내 스타트업 M&A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패션 쇼핑몰 ‘스타일난다’가 2018년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 로레알에 매각된 것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숙박·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여기어때’가 영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CVC캐피탈로부터 추정 매각가 4000억원에 M&A 도장을 찍었다.

같은 해 AI 스타트업 ‘수아랩’은 미국 딥러닝 개발기업 코그넥스와 2300억원 M&A를 통해 엑시트했고,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4조7500억원이라는 국내 스타트업 사상 최대 규모의 매각가를 기록하며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올해 미국 매치그룹으로부터 1조9330억원을 받고 인수된 영상 메신저 서비스 ‘하이퍼 커넥트’다.

물론 국내 대기업의 해외기업 M&A에 비해 그 반대 사례는 아직 규모나 횟수 면에서 턱없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 발전하고 성장함에 따라 그 간격은 점차 좁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국내든 해외든 M&A를 통한 스타트업의 엑시트 자체가 늘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유효상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교수는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엑시트는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례 축적을 통해 생태계의 선진화에도 기여한다”면서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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