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파피루스 읽기(下)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파업 파피루스 읽기(下)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2015.12.29 18:00 by 곽민수

 ‘고대 이집트’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4대 문명 중 하나 또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비롯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상대방을 잡아먹었다는 무시무시한 스핑크스가 생각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문명을 남긴 고대 이집트에서도 우리네 현대인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혹시 상상해보셨는지요. 우리 시대 사람들처럼 웃고, 울었던 평범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 최첨단 기술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작지만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시위

파피루스에는 농성의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던 것 같지만, 현재는 이 대목이 일부 파손되어 완전한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파악할 수 있는 파피루스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음 날,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라메세움(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으로 향해, 또 다시 농성을 벌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신전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입니다. 입을 옷도 없습니다. 기름도 없습니다. 생선도 없습니다. 야채도 없습니다. 우리의 좋은 주인이신 파라오에게 이 문제들을 전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보내주십시오. 또한 총리에게 우리의 대표를 보내어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시위 끝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인물을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는 테베의 동안(東岸)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살던 데이르 엘-메디나 마을은 왕들의 무덤과 장례신전이 있는 테베 서안(西岸)이었지만, 도시의 모든 관공서들은 동안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위 관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모터보트로 5분정도면 건널 수 있는 거리이니, 배만 구할 수 있다면 몇 시간 안에 다녀오는 것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룩소르(테베)의 동안(사진 : 곽민수)

 임무를 맡은 이는 메자이 조장 멘투모스(Mentumose)였습니다. 그는 동안으로 건너가 테베의 시장을 면담하고 돌아왔습니다. 면담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면단 후 5일이 지나 노동자들은 급여 일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시위는 계속 됩니다. 급여 일부를 받은 바로 다음 날 (29년, 페레트의 2번째 달, 13번째 날), 멘투모스는 리더쉽을 발휘해 시위대를 다시 이끕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말합니다.  

“올라가서 도구들을 가지고 집 문을 잠근 뒤 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오. 내가 즉시 메네-마아트-라(Mene-maat-ra)의 신전으로 당신들을 인도하여 당신들을 그곳에서 머물도록 하겠소.”  

이번 시위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합류했습니다. 100명에 이른 시위대가 발길을 옮긴 곳은 이전에는 가지 않았던 세티 1세의 신전입니다. 멘투모스는 전날 면담할 때 받은 약속이 실제로도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더 강력한 방법으로 시위를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세티 1세 신전(사진 : 곽민수)

 급여가 지급되다

시위가 있은 지 4일 후의 기록에는 데이르 엘-메디나의 노동자들이 지급 받았던 급여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29년, 페레트의 2번째 달, 17번째 날. 두번째 달의 급여로 주어진 것들.

(우友조) 작업조장: 7과 1/2포대 서기관: 3과 1/3포대 8명: 각각 5와 1/2포대 총44포대

(좌左조) 작업조장: 7과 1/2포대 서기관: 3과 1/3포대 8명: 각각 5와 1/2포대 총44포대  

신왕국 시대 이집트의 도량형을 기준으로 1포대는 80리터 정도이니 가장 하위직급의 노동자의 급여도 아주 적은 양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위는 급여가 지급됨으로써 일단락된 것 같습니다. 파피루스는 연일 지속되던 시위에 대한 기록을 여기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시위는 곧 다시 시작됩니다. 한 달 후인 페레트의 3번째 달에는 한 노동자가 "당장 급여가 지급되지 않으면 파라오의 무덤을 도굴하겠다"는 다소 불경스럽고 협박성 어조로 관리들에게 급여 지급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어서 페레트의 4번째 달, 28번째 날의 날짜로 총리의 전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이 문제로 당신들에게 직접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당

신들은 당신들의 몫을 빼앗아가지 말라 말하였지만, 나는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기 위해 총리가 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어야할 것을 가져가는 자가 아니다. 재원이 확보되는 대로 창고가 비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의 몫을 지급하겠다."  

총리가 직접 약속한 까닭인지 즉시 급여의 절반이 지급되었습니다. 급여 지급을 직접 담당했던 무덤 서기관 호리(Hori)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몫도 나눠주겠다”다며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회적 약자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다

셰무의 1번째 달, 2번째 날에는 노동자들에게 급여가 지급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약 10일 후인 13번째 날에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메렌프타(Merenptah)의 신전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노동자들은 테베의 시장에게 정원사 메네페르(Menefer)를 보내어 자신들의 입장을 전합니다.

시장은 “파라오가 당신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전까지 일단 50포대의 에머(emmer)밀을 제공하겠다.”고 말하며 노동자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합니다. 토리노 파업 파피루스는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급여가 연체된 뒤 시위가 일어나고, 시위의 결과로 급여 일부가 지급됐던 그동안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노동자들의 급여 지금은 자주 연체되었고 그때마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시위를 벌이며 급여를 받아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를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나 ‘인권’처럼 지금은 보편적인 가치들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도, 파업과 시위는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하고도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파업 파피루스 읽기'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며, 곽민수 필자의 새로운 연재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데이르 엘-메디나의 노동자들 (레크미레의 무덤벽화) (사진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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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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