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몸담았던 대기업, 내일은 사업 파트너죠.”
지문영 ㈜엠와이씨 대표 인터뷰
“어제 몸담았던 대기업, 내일은 사업 파트너죠.”
2021.07.28 22:19 by 최태욱

어느 분야든 1만 시간 정도 정성을 쏟으면 전문가가 된다고 했다. 여기에 타고난 재능과 호기심, 실행력 같은 요소들이 더해지면 전문가를 넘어 명장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지문영 ㈜엠와이씨 대표는 반도체 장비 분야의 명장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SK하이닉스에서 20년 이상 현장 엔지니어로 활약했고,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 학술대회 개발사례 발표(2018), SK하이닉스 기술명장 인증(2019), SK하이닉스 해커톤 대회 이노베이션 수상(2019) 등을 거치며 현장 경험과 연구·개발능력을 아우르는 명장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그간의 성과는 발상의 전환과 도전 정신이 빚은 결과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고스란히 계승·집약한 것이 지난해 7월 설립한 스타트업 ‘엠와이씨(MYC)’다. ‘MY Company’를 축약한 사명에는 SK하이닉스의 사내벤처 신분을 벗어나 ‘일가’를 이루겠다는 신념이 듬뿍 담겨있다. 

 

지문영(사진) ㈜엠와이씨 대표
지문영(사진) ㈜엠와이씨 대표

| ‘발상의 전환’이 시동 걸고 ‘추진력’으로 속도 낸다

“요즘엔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네요.(웃음)”

지문영 대표에게 올 여름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지난 달 SK하이닉스와 자체 개발한 반도체 장비 평가 장치의 납품 계약을 성사시키며 설립 이래 가장 분주한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 지 대표는 “1차 납품인 이천 공장에 이어 하반기에 청주 공장에 2차 물량 납품이 확보된만큼, 해당 계약 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전사적인 노력을 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해당 계약 건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자신이 20년 간 근무했던 회사와 당당히 파트너 관계로 마주했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지난 2000년 SK하이닉스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던 지문영 대표는 지난해 2월 모회사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하이개라지(Hi-Garage)’ 2기에 선정됐고, 그 해 여름 법인설립까지 마치며 본격적인 ‘홀로서기’ 행보를 이어왔다. 

“늘 사업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입사할 때부터 ‘언젠가 때가 되면 직접 제조업을 이끌며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현실적으론 쉽지 않았지만, 좋은 제도와 지원이 새로 생기면서 새로운 꿈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거죠.”

그의 말대로, 지문영 대표는 대기업의 안정감보다 새로운 도전이 주는 짜릿함에 더 매료되는 사람이었다. 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유연함과 ‘끝까지 간다’식의 추진력은 그의 최대 강점이다. 이번에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계약을 성사시킨 반도체 장비 시스템 ‘A-CPM(Auto Charg Plate Monitoring)’ 개발 과정에서도 지 대표의 강점은 십분 발휘됐다.

 

엠와이씨(MYC)의 사무실 전경, 문에 붙은 ‘my company’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엠와이씨(MYC)의 사무실 전경, 문에 붙은 ‘my company’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엠와이씨의 대표 아이템이자, 효자 제품인 ‘A-CPM’은 정전기 제거 장치인 이오나이져(Ionizer)의 이상 유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측정·평가하는 장치다. 통상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정전기가 발생하면 순간적으로 1만~1만5000볼트(V)의 전압이 흐르며 반도체 칩을 망가뜨린다.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는 자칫하면 3년 전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처럼 큰 재난의 원흉이 되기도 한다. 이에 반도체 공정에선 정전기 제거 장치인 이오나이저의 사용이 필수다. 이 장치의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과정에 사물인터넷을 접목, 자동 모니터링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엠와이씨 기술의 핵심이다.

“(이오나이저 이상 유무를) 사람이 일일이 정해진 기간에 의무적으로 측정·관리하면 엔지니어들이 비생산적인 일에 투입되고, 30분 정도 장비 가동도 중단해야 해요. 그 자체로 업무 손실인거죠. 또한 사람간의 측정 편차로 인해 정확한 관리가 힘든 상황입니다. 제때 체크를 못해서 장비가 고장 나면 더 큰 손해고요. ‘조금 더 스마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측정 장비의 자동화 장치를 생각했던 것이죠.”

문제는 장치의 크기였다. 장비 안에 탑재돼야 하는 만큼, 기존 수동 장치 5분의 1 크기의 축소된 사이즈가 필요했는데 해당 기술이 전무했던 것. 여러 외부 협력사에 자문을 구해봤지만 난색을 표하기 일쑤였다. 난관에서 빛난 건 지 대표 특유의 추진력이었다. 방대한 자료를 뒤지고,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인근 대학 교수는 물론 전공 대학생들과 스터디모임까지 가졌을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어렵사리 데모 제품을 만들었지만 원하는 사이즈가 나오지 않거나, 아예 기능을 못해 낭패를 겪은 적도 부지기수다. 지 대표는 “시제품을 만들고 전원을 꽂았더니 컴퓨터 5대가 동시에 망가져 버린 적도 있었다”며 웃어 보였다. 무려 3년여에 걸친 대장정. 발상의 전환으로 시작해 추진력과 끈기로 완성된 제품은 결국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의 높은 문턱을 통과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엠와이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IoT기반 A-CPM
엠와이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IoT기반 A-CPM

 

|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넘나드는 지능형 팩토리 구축 선도 기업으로
SK하이닉스의 협력사가 됐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6월 대기업 사내벤처팀으로 시작한 엠와이씨가 1년 만에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으로서의 내실을 갖췄다는 얘기와 다름없기 때문. 실제로 엠와이씨는 지난해 7월 법인설립, 올해 1월 벤처기업 인증 등 기술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순조롭게 다져가고 있다. 

스타트업의 핵심 과제인 ‘팀 빌딩’도 착착 진행 중이다. 현재 이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팀원은 모두 5명. 대표자를 포함해 3명의 경력자와 2명의 신입 등이 어우러져 경험과 패기의 시너지를 기대한다. 초보 창업자로서의 ‘마인드셋’도 이뤄지는 중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업무 작동 방식이 판이한 만큼, 대기업 임직원의 태를 벗어내는 과정이 한창이다. 

“그전까진 내게 맡겨진 것만 잘 처리하면 됐죠. 그런데 막상 창업을 해보니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더라고요. 주력제품 개발부터 회계, 인사, 총무 같이 일반적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대표적이죠.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한 직원들의 트레이닝도 제가 직접 챙겨야하고요. 업무 범위가 넓어질수록 손이 많이 부족하단 걸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웃음)”

 

경험과 패기가 조화로이 어우러진 엠와이씨의 구성원들
경험과 패기의 조화를 자랑하는 엠와이씨의 구성원들

엠와이씨는 내년 2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 회사의 마중물을 부어준 SK하이닉스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하이개라지'는 선발 후 2년간 사내벤처 활동을 보장해 주는데, 복귀와 스핀오프의 선택지를 두고 결단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스핀오프는 평생을 몸 담았던 SK하이닉스를 떠나 진정한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조급할 만도 하지만 지문영 대표는 오히려 담대하다. 그는 “법인 설립이 이뤄진 순간부터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일단 반도체 분야에서 검증을 받은 후 점차 일반 제조산업 분야로 무대를 넓혀 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실제로 엠와이씨는 현재 보유한 반도체 장비 자동화 역량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면서, 추후 유통·제조, 교통·항공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청사진을 그려 놓고 있다. 이중 신교통 항공 및 레저용 운송시스템의 경우 이미 개발에 착수해 납품처를 타진하고 있는 상태다.  

“개발이든 특허든 혁신이든, 제가 즐거움을 느끼고 매진했던 건 결국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호기심과 추진력 같은 개인적인 성향도 큰 힘이 됐고요. 앞으로도 4차 산업시대를 선도하는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제조해 나갈 계획입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라는 케케묵은 과제도 우리 손으로 해결할 날이 오겠죠?”

 

/사진: ㈜엠와이씨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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