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과 싸운 지 25년…새내기 창업가의 기대되는 선전포고
근 감소증 정복을 향해 달려가는 스타트업 ‘애트넘’
난치병과 싸운 지 25년…새내기 창업가의 기대되는 선전포고
2021.07.13 12:41 by 이창희

[스타트업은 R&D다]는 충북 청주시 기술선도 스타트업 R&D 지원사업에 선정된 유망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우리에게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거리를 좁혀준 인기 드라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부터 특정 질병을 정복하기 위한 연구까지, 의료인들은 매일 같이 전투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특히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온 난치병의 경우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

여기 전공의 시절부터 재활의학과 교수까지 25년을 넘게 한 분야에 몰입해온 의사가 있다. 척수손상으로 인한 근 감소증이라는, 다소 생소하지만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질병에 맞서 연구와 진료에 젊음을 바친 현정근 애트넘 대표가 바로 그다. 지금까지 쌓아온 공력을 바탕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해 창업가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정근(사진) 애트넘 대표
현정근(사진) 애트넘 대표.

|슈퍼맨의 추락에 충격 받은 1년차 전공의
1995년은 현 대표에게 특별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해다. 그가 의대 6년과 인턴을 마치고 재활의학과 전공의 1년차 명찰을 막 달았던 때다.

평소 탐독하던 잡지 ‘타임(TIME)’지에 어느 날 미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소식이 실렸다. 우리에게 ‘슈퍼맨’으로 널리 알려진 그 배우. 승마 도중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를 선고 받고 목 아래를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평소 운동광에다 승마 경험도 많고 안전장구까지 철저히 갖췄음에도 발생했던 사고. 결국 그는 경추 2번을 크게 다치면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평소 좋아하던 ‘히어로’의 사고를 접한 현 대표의 충격은 컸다. 특히 재활의학과 전공의 신분이던 그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 사건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스스로 끌지도 못하는 휠체어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힘들고 고통스런 여생을 보내야 하는 척수손상 환자들에게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척수손상을 입은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모습.(사진: Featureflash Photo Agency)
척수손상을 입은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모습.(사진: Featureflash Photo Agency)

실제로 척수에 손상을 입는 환자들은 각종 교통사고부터 낙상사고, 자살 등 그 원인이 다양하다. 연령·성별도 제각각이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좀처럼 완치가 되지 않는다. 치료 방법이 사실상 재활뿐인데, 엄밀히 말해 재활치료는 신경이 재생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남아있는 신경 기능을 되살리는 수준에 그친다. 한계가 뚜렷한 치료일 수밖에 없다는 것. 정신은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환자들은 쉽게 비관하며 희망과 멀어지기 일쑤였고, 이들을 진료하는 현 대표에게도 괴로움이 쌓여갔다.

 

|척수손상과 맞서기 위해 쌓은 25년의 공력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내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엔 이 환자들의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선배들이 아직 이루지 못했던 일에 덤비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열정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후 약 10년이 흘렀을 때 현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단국대병원에 발령받아 근무를 막 시작한 시기였다. 의사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 것.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한국연구재단의 문을 두드렸고, 처음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돌입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의학을 공부했지만 다시 초심자의 자세로 돌아가 진지하게 임했고, 작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면서 매년 정부 지원과제를 받아 연구를 이어갔다.

“돌아보면 결과가 좋은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부분에 대해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5년을 중단 없이 계속할 수 있었죠.”

연구가 거듭되면서 현 대표는 더욱 욕심을 냈다. 해외로 나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2008년 척수손상 전문센터가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드렉셀 대학교로 연수를 떠났던 이유다. 이곳에서 그는 기초연구부터 다시 시작했고 각종 동물 실험과 실습, 논문 집필까지 수행하며 밤낮 없는 시간을 보냈다.

 

미국 연수 시절 현 대표의 모습.
미국 연수 시절 현 대표의 모습.

당초 2년을 계획하고 떠난 연수였지만 1년을 꼬박 채운 시점에 또 다른 기회를 마주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WCU)’에 덜컥 선정이 된 것. 연구역량이 탁월한 해외학자를 한국 내 대학에 유치해 중요한 분야의 연구를 촉진하고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사업이었다.

부랴부랴 귀국한 현 대표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다른 교수들과 교내 연구소를 만들고 다시금 연구를 이어갔다. 그렇게 연구는 그에게 직업이자 일상이 됐고, 척수손상 환자들을 위한 그만의 솔루션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구는 힘들지만 늘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도 원동력이 돼 줬고요. 하지만 이제 연구는 할 만큼 했고, 실질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제품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거죠.”

 

애트넘의 제품 연구개발.
애트넘의 제품 연구개발.

|의사든 사업가든…미션은 ‘환자를 위해’
오랜 연구를 통해 그가 찾은 문제 해결의 지점은 바로 ‘근 감소증’이라는 난치병이었다. 근 감소증은 척수손상 환자들이 나이가 들며 더 힘들어지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일반인들도 드물지 않게 겪는 질환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인식됐으나 최근 들어 분명한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하는 질병 코드에도 등록됐다. 세계적인 고령화 시대를 맞아 근 감소증은 예방하고 치료해야 하는 병이 됐다.

그렇게 현 대표는 2018년부터 근 감소증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자신이 쌓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약물을 개발하고 그중 5개는 특허도 출원했다. 현재는 내부 평가와 실험에 돌입한 상태. 이를 마치는 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최근 각광받는 디지털 치료제도 함께 개발 중이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환자들에게 가이드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재활치료를 돕는 것. 이는 암 진단과 치료 목적으로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에서 영감을 받았다.

 

뇌파를 통해 의수를 개발하는 모습.
뇌파를 통해 의수를 개발하는 모습.

길고 지난한 사투를 이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연구 성과를 환자들에게 적용하기까지 또 다른 복잡한 관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계 부처와 기관으로부터 갖가지 승인과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후엔 기약 없는 임상시험도 거쳐야 했다. 이 모든 기간 동안 버티기 위해서는 외부 자금, 즉 투자도 따라줘야 했다. 올해 3월 정식 법인인 ‘애트넘’을 설립한 이유도 그래서다. 이젠 연구자가 아닌 사업자의 자격으로, 학계의 성과만이 아닌 시장에 필요한 제품을 향해 나아간다.

“3년 후에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게 목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될 다른 분야의 다양한 연구 결과도 적극 참고할 계획이에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우린 그걸 맞게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우리의 포커스가 기술이었다면, 단언컨대 지금부턴 환자입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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