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건가”…정치를 바꿀 스타트업이 온다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건가”…정치를 바꿀 스타트업이 온다
2021.04.20 02:12 by 이창희

말 보다는 힘이 앞서고, 이해 대신 이기주의가 득세하며, 갈등을 해소하기보단 부추기는 쪽으로 작동하는 존재. ‘정치’라는 키워드가 가진 변하지 않는 표상이다. 과거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주로 담당했던 그 싸움과 갈등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온라인 공간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중이다. 이제 정치는 갈등 혹은 혐오의 대명사가 됐다. 진정으로 정치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이 거대하고 촘촘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작지만 야심찬 창업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렵고 딱딱한 정치를 쉽게 접근하고 소비하고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드는 재기 넘치는 발상들이 하나하나 구현되고 있다. 모두가 완벽하고 성공적인 기업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문제 해결을 미션으로 하는 스타트업의 정신만큼은 온전히 갖췄다. 단순히 ‘메기 효과’만이 아니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모두의 정치 참여, 그리고 지속 가능한 정치의 건강한 일상화다.

 

정치 변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치 변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엇에 주목했나
작금의 정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넓고 방대하며 동시에 복잡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 안팎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개혁’ 혹은 ‘혁신’이라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많고,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 분야에서 발원한 스타트업들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늘날 정치 공론의 장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언론 기사의 댓글부터 소셜 미디어 게시물,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은 수없이 많다. 여기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담론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양극화된 진영 논리와 지나치게 과열된 공방이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구도 속에 진실이 밀려난 자리에는 상대를 탓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날선 주장만 남는다. 이렇게 상식적이지 못한 공간에서 가짜 뉴스가 양 진영에 실탄을 공급하고, 지친 이들은 혐오를 간직한 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현재 언론과 커뮤니티는 확증편향이 꽤나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의견을 애써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상대의 논리와 근거는 외면한 채 자신의 주장과 이야기만 하는 셈이죠.”(이의석 캣벨 대표)

 

서로에 대한 이해의 노력과 배려 없이 오염된 정치 공론장.
서로에 대한 이해의 노력과 배려 없이 오염된 정치 공론장.

양극단으로 인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이 가진 허들이라는 진단도 있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통합이라는 개념을 우선시하다보니 각 개인의 다양성, 즉 중간지대의 수많은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성장에 중점을 둔 개발도상국 모델로만 발전해오다 보니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진국의 방식으로 갈등을 푸는 데 서투르다”며 “이제는 국민이 국가·민족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개인들의 발전을 위한 플랫폼이 돼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에 관심 갖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이예송 ‘나우리(Now-re)’ 공동대표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정치와 정치인을 ‘더럽다’고 학습하기가 너무 쉬운 환경”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흥미를 갖도록 하는 ‘일상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치의 본질인 ‘입법’ 기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300명의 국회의원은 각각이 개별 입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법을 만들고 조정하며 폐기하는 기능과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은 대체로 입법보다 정치적 행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입법 과정 또한 투명하지 못하거나 이를 일반 국민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돼 있어요. 데이터 자체가 파편화돼 있고 접근성이 나쁘기 때문에 누가 무슨 법을 만드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이 좀 더 쉽게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정지은 코딧 대표)

 

법안 하나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현재 의안정보시스템.(사진: 대한민국 국회)
법안 하나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현재 의안정보시스템.(사진: 대한민국 국회)

|정치를 바꾸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
이 같은 다양한 문제의식 속에 새로이 등장한 기술들이 이를 해결할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정치 스타트업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배경이다.

‘모든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라는 미션 아래 정치 SNS 플랫폼을 운영하는 옥소폴리틱스(대표 유호현)가 대표적이다. 솔직하고 편하게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플랫폼을 표방한다.

단순하게 보수-진보, 여(與)-야(野)로 구분하는 대신 다양한 사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비교적 정확하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도출해낸다. 이는 y축과 x축이 교차하는 어딘가에 위치하고, 친숙함을 위해 호랑이·하마·코끼리·공룡·사자 같은 동물로 구분한다. 물론 같은 동물로 분류됐다 할지라도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 가지 이슈를 찬성과 반대, 그러니까 OX로 데이터를 모으면 두 개 밖에 나오지 않죠. 그런데 두 문제를 가지고 입장을 모으면 2의 2제곱으로 4가지가 나와요. 세 문제면 8가지, 열 문제를 물어보면 1024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굉장한 양의 데이터죠. 이게 바로 우리가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메커니즘입니다.”(유호현 대표)

이를 바탕으로 옥소폴리틱스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다양한 사안을 놓고 실시간으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다. 동물 분류를 통해 어느 정도 포지션이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오가는 의견은 일반적인 커뮤니티나 댓글창에서의 그것과 비해 훨씬 건강하고 깨끗하며 발전적일 수밖에 없다.

 

옥소폴리틱스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세분화해준다.(사진: 옥소폴리틱스)
옥소폴리틱스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세분화해준다.(사진: 옥소폴리틱스)

‘캣벨(대표 이의석)’은 국회 입법 전반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정기·임시국회 시즌에는 하루 평균 30~40여 건의 법안이 발의되는데, 이 법안들의 입법화 여부에 따라 많은 이해관계자가 발생한다. 법 하나로 어떤 행위나 제도가 하루아침에 합법이 불법이 되고, 그 반대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은 법안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를 일일이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법안이 대체 어떤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입법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을 개인이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캣벨은 가입자가 원하는 키워드를 저장해두면 해당 키워드 조건에 부합하는 법안의 현재 상황을 이메일로 제공한다. 여기에는 데이터 처리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활용되는데, 이곳 저곳에 파편화돼 있는 언론 보도와 여론의 동향까지 한눈에 확인이 가능하다.

B2B·B2G 방식의 맞춤형 정책 정보 스타트업 ‘코딧(대표 정지은)’ 역시 비슷하면서도 정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서비스다. 각종 정책과 규제 여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업과 기관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내부 자동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책 관련 1000여개 사이트의 정보를 크롤링해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여기에는 각종 법안부터 전문가들의 전망, 이를 다루는 국회의원의 사소한 발언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포함되죠.”(정지은 대표)

캣벨과 코딧의 서비스는 그 자체로 정책 결정과 입법 과정의 문제를 감시하는 역할이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의 히스토리가 빠짐없이 기록되기 때문에 잘못된 법이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는 일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수행하는 이들이나 결정권자들에게 경각심을 부여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법안을 한눈에 체크할 수 있는 캣벨의 검색 시스템.(사진: 캣벨)
법안을 한눈에 체크할 수 있는 캣벨의 검색 시스템.(사진: 캣벨)

|지속 가능을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 스타트업의 역사는 의외로 짧지 않다. 일찍이 2010년 선거를 앞둔 유권자를 위해 정당·후보의 정보를 제공한 ‘투표함닷컴’, 차세대 정치 리더를 발굴하고 교육과 토론의 장을 마련한 ‘와글’ 등이 1세대 정치 스타트업이다. 입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투정(To.정치)’이나 게임을 통해 정치를 이해하도록 만든 ‘칠리펀트’,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로 주목받은 ‘폴리시브릿지’ 등도 2010년대 중후반에 등장했다.

현재까지 사업을 지속 중인 이들도 있지만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접은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이윤 창출이 쉽지 않은 정치 분야의 특수성 때문에서다. 상당수가 사용자 수를 기반으로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플랫폼 서비스인데 선거가 없는 소위 ‘비시즌’의 보릿고개를 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직종을 전환한 이현승 폴리시브릿지 대표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고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2016년 런칭 당시 참고했던 해외 정치 스타트업들도 지금 남아있는 곳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치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정치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다행히도 탄탄한 기술을 바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정치 스타트업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코딧은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매쉬업엔젤스(대표 이택경)’로부터, 옥소폴리틱스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대표 류중희)’로부터 지난해 각각 투자를 유치했다. 이들은 기술창업지원인 팁스(TIPS)도 나란히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정치 스타트업들이 정치적 가치 못지않게 경제적 가치 창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도 유의미한 성과다. 최근 ‘기술은 어떻게 정치를 바꾸는가’를 주제로 나우리가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는 옥소폴리틱스·캣벨·폴리시브릿지·빠띠·코딧·화난사람들 등 다수의 정치 스타트업들이 수익 모델에 대한 깊은 고민을 공유했다. 이들이 수익 모델을 고민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지향하는 가치를 중단 없이 구현하기 위함이다.

“최근의 정치 스타트업들이 생각보다 암울한 상황은 아닙니다. 투자 받는 팀들과 투자가 예정된 팀들이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정치든 스타트업이든 정치 스타트업이든 이치와 목적은 모두 동일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김지수 나우리 공동대표)

여기에 정치권 안팎의 기대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와글 사무국장 출신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정치 스타트업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왜곡된 부분이 많은 정치 영역에서 이들이 건강한 공론장을 얼마나 어떻게 만드느냐가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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