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한다 고로 주장한다” 미닝아웃 소비 활짝
포스트 가성비 시대의 新소비 패턴 ‘미닝아웃’을 잡아라
“나는 소비한다 고로 주장한다” 미닝아웃 소비 활짝
2021.01.18 17:14 by 최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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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8년 간 유학생활을 했던 김정인(가명‧33) 씨는 유학 시절 일본의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제품을 꾸준히 애용했다. 가격에 비해 옷감의 질이나 기능성이 뛰어나고, 유행도 잘 타지 않으며, 무엇보다 미국 제품에 비해 동양인 체형에 잘 맞았기 때문. 김 씨는 “겨울에는 해당 브랜드의 발열내의 제품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충성도가 높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귀국 후 김 씨의 태도는 돌변했다. 우익단체 후원, 욱일기 논란, 위안부 조롱, 일본발 무역 규제 등 지속적인 논란이 이어지며 유니클로 불매운동에 적극적인 참여자로 나서게 된 것. 김 씨는 “가성비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중소기업들의 좋은 제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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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애호가인 이연준(가명‧36) 씨는 늘 운동 장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지난 10년 간 사들인 러닝화만 70켤레에 이를 정도. 기능성, 착용감, 가격, 디자인 등 따져볼 것이 많지만 유독 따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 바로 브랜드다. 이 씨는 몇 년 전부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제품만을 구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해당 브랜드가 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작년에 코로나 예방을 위한 나이키의 #playinside 챌린지나 ‘you can’t stop us’ 캠페인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면서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면 나 또한 사회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기능과 편의를 사는 시대는 가라, 이젠 가치와 신념을 사는 시대
기능과 편의를 사는 시대는 가라, 이젠 가치와 신념을 사는 시대

| ‘가격 대비 성능’에서 ‘가격 대신 신념’의 시대로…
바야흐로 표현이 대세인 시대다. 지난 2017년부터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미투’나 ‘빚투’ 같은 움직임 역시 본질은 “더 이상 가리거나 숨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겠다”는 의지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경향은 소비문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위에서 언급한 김정인 씨와 이연준 씨처럼 논란이 있는 기업의 제품을 피하고, 착한 기업의 제품을 사들이는 행위에는 “나는 공익적인 사람”이라는 개인의 주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금의 이러한 소비 행태를 정의하는 용어가 바로 미닝아웃(MeaningOut)이다. 의미를 뜻하는 ‘Meaning’과 드러내기를 뜻하는 ‘Coming Out’의 합성어로, 소비 활동을 통해 개인의 취향이나 신념을 소구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구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소비 습관을 널리 알리고 이를 사회문제로 환기시킴으로서 완성되는 소비 운동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나 제품의 소비는 대표적인 미닝아웃 소비 형태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나 제품의 소비는 대표적인 미닝아웃 소비 형태다.

사실 소위 ‘착한 소비’라 일컫는 행태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 주체가 대거 등장하며 나름 의미있는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조금 다르다. 과거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가 불을 지폈다면, 최근에는 그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넘어간 모양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가 있다. 

‘취존’이 디폴트가 된 세대, 얼마나 잘 사는 지보다 얼마나 ‘나답게’ 사는 지가 더 큰 관심,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수성, 채널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소통력…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집필한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에서 표현하는 MZ세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세대의 성향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는 미닝아웃 소비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 이경희 한국창업연구소 소장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 특징이 십분 발휘된 것이 바로 가치 소비”라며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세대인 것도 소비의 인식이나 각성 수준을 높인 배경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자유기업원이 전국 대학생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에 대한 대학생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6명 이상은 “상품 가격이 다소 비싸도 환경이나 사회적 가치에 충실한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MZ세대를 필두로 달라진 소비 경향은 시나브로 시장에 녹아들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미 채비를 마친 상태. 플라스틱 대체품으로 포장을 바꾸는 화장품 업계, 윤리적으로 채취한 동물 털이나 인공 충전재를 사용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는 패션업계, 채식이나 대체육 제품 개발에 나선 식품 업계의 소식은 이제 더 이상 신선한 뉴스가 아니다. 

소비자 니즈에 가장 민감해야 할 스타트업 역시 이런 변화를 좌시할리 없다. 스타트업 투자 분야의 한 관계자는 “최근 창업 경진대회 심사에 나가면 절반 이상이 ‘가치 소비’와 관련된 아이템을 들고 나온다”면서 “친환경, 농촌활성화, 동물복지, 소수자 인권, 공정무역, 기부·나눔연계 비즈니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가치 소비의 대명사 탐스슈즈,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제3세계 어린이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것이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다.(사진:The Art of Pics/Shutterstock.com)
가치 소비의 대명사 탐스슈즈,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제3세계 어린이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것이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다.(사진:The Art of Pics/Shutterstock.com)

| 살수록 살만해지는 세상을 위해… 미닝아웃 겨냥한 스타트업 열전
그렇다면 현재 스타트업 필드에서 ‘미닝아웃’ 소비욕을 자극할만한 기업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 

지난해 ‘식품 벤처·창업 모의 크라우드펀딩 대회’ 우승, ‘넥스트 라이징 스타트업 IR피칭’ 대회 최우수상,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주관 농식품육성기업 선정 등 혁혁한 성과를 올리며 투자 유치까지 성공한 에스와이솔루션은 ‘고기 아닌 고기’를 내세워 환경을 생각하는 미닝아웃족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박서영 에스와이솔루션 대표는 “소·돼지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육류소비가 늘면 늘수록 환경파괴는 심해진다”고 했다. 이들이 콩으로 만든 식물성 고기의 연구·개발에 나선 이유도 그래서다. 올해로 설립 4년차, 에스와이솔루션은 가치 소비의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순항 중이다. 최근 맘 카페에서 식물성고기 시식평가단 1000명을 모집했는데 10분도 안 돼 마감됐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박 대표는 “MZ세대가 미닝아웃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면서 “추후 수익의 일부를 동물복지 분야에 후원하고, 취약계층처럼 건강을 위협받는 곳에 우리 제품을 지원하는 형태의 나눔도 기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와이솔루션의 ‘농부가 씨를 뿌린 고기: 미트 체인지’ 제품
에스와이솔루션의 ‘농부가 씨를 뿌린 고기: 미트 체인지’ 제품(사진: 에스와이솔루션)

자원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리사이클링·업사이클링 분야도 스타트업들이 애용하는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커피찌꺼기로 고양이 모래를 만들어 생산하는 알프래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환경기업이다. 하루에 15억 잔이 소비되며 매년 1150만 톤 씩 쌓여 환경을 오염시키는 커피찌꺼기를, 집사에겐 소모품이나 다름없는 고양이 모래로 재탄생시킨다. 팔면 팔수록 환경 유해 물질을 없애는 효과가 있는 셈. 권순우 알프래드 대표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공유하고 추천하며 입소문을 내는 걸 보면서 미닝아웃 소비에 대한 인식과 니즈가 크게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친환경 소재로 의류를 만드는 RE2COGNITION 역시 MZ세대가 주도하는 미닝아웃 소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박종진 RE2COGNITION 대표는 “미닝아웃 소비의 미덕은 이 같은 트렌드에 무관심했던 소비자들의 관심까지 끌어들이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디자인과 기능성 등 의류제품의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에 더해, 재생플라스틱 활용 등 혁신적이며 도전적인 실험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매출의 일부를 후원으로 연결시키는 형태도 가치 소비를 북돋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펫푸드 전문 기업 리치즈박스는 고객이 신제품을 구입하면 동일한 제품을 유기견 보호소에 전달하는 유기견 후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박진영 리치즈박스 대표는 “제품 구독 서비스를 2년  넘게 하고 있지만 구독 해지율은 5%미만, 장기(1년) 구독자 비율은 80%이상”이라며 “댓글창이 넘칠 정도로 보내주는 의견과 호응을 보면서 적극적인 MZ세대들의 특징을 실감하고 있다”고 평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비크코퍼레이션은 수익의 일부를 취약계층에 기부하는 형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김단비 비크코퍼레이션 대표는 “최근 미닝아웃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업계 중 하나가 바로 패션 쪽일 것”이라며 “이러한 경향은 결코 한시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가치를 꾸준히 지켜 나가기 위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와디즈 펀딩에서 1649%의 펀딩을 달성했던 알프래드의 친환경 제품(사진: 알프래드)
와디즈 펀딩에서 1649%의 펀딩을 달성했던 알프래드의 친환경 제품(사진: 알프래드)

| 그럼에도 ‘전가의 보도’는 아닌… 가치 소비가 가진 과제들 
미닝아웃 소비 열풍을 접하는 스타트업들은 “최근 고객들의 소비 기준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판매량이나 매출 같은 수치부터 고객들로부터 직접 받는 피드백까지 체감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소비자들이 먼저 나서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는 경향 덕분에 홍보비 절감의 효과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미닝아웃’ 네 글자가 기업 성장의 프리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닝아웃 소비도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자 입장에선 가치에만 매몰돼 제품의 본질을 망각하는 안이함과 무분별한 차용과 모방 등 진정성 없는 접근이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적인 약점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은 가치 소비의 높은 문턱이자, 미닝아웃족의 주된 불만 중 하나다. 품질이나 기능은 기성제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데 좋은 일에 동참하기 위해 웃돈을 얹는다는 인상을 받는 순간, 미닝아웃 소비의 개념은 퇴색될 수 있다. 가치 소비가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아이러니 또한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텀블러나 에코백이 무분별하게 제작되고 버려지면 그 역시 결국 환경에 부담을 주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은 “미닝아웃 소비가 확대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제품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식품은 맛있어야 하고, 의류는 멋있어야하는 게 먼저란 얘기다. 가치만 앞세워 품질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다름없다. 이경희 한국창업연구소 소장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미닝아웃을 마케팅에만 활용하려는 전략은 굉장한 패착”이라며 “진정성의 토대 위에서 비즈니스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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