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꿈꾸는 ‘국가대표 기타’의 신선한 몸부림
박준석 크래프터 기타 대표
세계 1위 꿈꾸는 ‘국가대표 기타’의 신선한 몸부림
2020.04.29 17:31 by 이창희

대를 이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기타 같이 대중적이면서도 고유의 기술력을 요하는 악기를 제작하는 작업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장인 정신’ 하나만으로는 의미 이상의 것을 도모하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런 현실 속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 브랜드 크래프터가 ‘3.0 시대’를 열었다. 그간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들에 맞서 대한민국 기타의 자존심을 지켜온 긍지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통해 세계 톱 레벨로 올라서기 위한 항해가 시작됐다. 그 중심에서 키를 쥔 ‘선장’ 박준석 대표를 더퍼스트미디어가 만났다.

 

박준석 크래프터 기타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박준석 크래프터 기타 대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창업 3세대의 야심찬 도전
크래프터 기타의 역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의 조부인 박현권 회장이 ‘성음악기’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지하 단칸방에서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타 생산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튼튼하고 소리가 좋은’ 기타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적인 가격에 내구성 있는 기타는 점차 각광받기 시작했고,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하는 기타 브랜드로 성장했다.

80년대 후반 부친 박인재 대표가 회사를 이끌면서 성음악기는 현재의 ‘크래프터’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끊임없는 품질 개선 노력을 통해 크래프터 기타의 가치는 서서히 올라갔고, 이는 현재 연간 10만대에 가까운 기타 생산과 해외 40개국 수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크래프터의 이름을 단 기타는 지금까지 1000가지가 넘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처음부터 일류 사운드를 내겠다는 욕심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계속 노력하면 품질은 자연히 좋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열심히 기타를 만드셨죠. 그 장인정신이 저희가 지속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박준석 대표)

 

크래프터 기타의 제작 과정.(사진: 크래프터 기타)
크래프터 기타의 제작 과정.(사진: 크래프터 기타)

창업 3세대인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크래프터 기타를 이끌고 있다. 어릴 적부터 기타를 갖고 놀며 자란 그는 조부와 부친이 만든 기타의 발전상을 오롯이 경험했다. 어떤 노력을 통해 얼마만큼의 진보가 이뤄지는지를 체득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의 차례다. 2대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서야 하는 건 그의 몫이 됐다. 반세기 전 작은 돛단배는 2대에 걸쳐 커다란 함선이 됐고, 그는 이제 200명 넘는 직원들을 이끌어야 할 선장의 임무를 맡았다.

박 대표가 바라보는 국내 기타 시장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타에 입문하려는 이들은 늘 존재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조금씩 줄고 있는 상황이다. TV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한 수혜도 있었지만 사실상 반짝 효과에 불과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기타 생산의 후발주자인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추격이 매섭다. 저가형 기타의 이미지를 벗고 서서히 품질을 끌어올려 어느새 꽤 괜찮은 기타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이들의 도전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결국 저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합니다. 지금보다 덩치를 더 키우는 대신 기존의 품질향상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력 제품군 위주로 재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 거죠. 혁신의 일상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은 저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박준석 대표)

 

성수 공간와디즈에 전시된 크래프터 마인드 프리미엄.(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성수 공간와디즈에 전시된 크래프터 마인드 프리미엄.(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사흘 만에 2000%…승부수는 통했다
그렇게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많은 시도들에 나서고 있다. 기타의 내부 구조를 이리 저리 바꿔보고, 겉면의 도장(塗裝) 방식이나 소재도 다양하게 실험 중이다. 기타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음향과 디자인에 계속 변화를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인데,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제품 출시 방식과 유통망의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마케팅과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최근 와디즈를 통해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이 대표적이다.

크래프터 기타는 지난 27일 1000만원을 목표액으로 4종의 신제품 어쿠스틱 기타를 선보였다. 아프리칸 마호가니(African Mahogany)라는 목재를 사용해 따스하고 포근한 음색이 특징이다.

펀딩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크래프터 기타를 취급하는 전국의 기타 총판들은 기존의 유통망을 벗어난 시도를 반기지 않았다. 자신들을 통해 기타가 출시되는 것이 아닌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생소한 방식은 거부감이 컸다. 여기에 빨라야 7월에나 받아볼 수 있는 고가의 기타를 얻기 위해 3개월 전에 비용을 치를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제품 출시 과정에 들어가는 엄청난 광고비 등 마케팅 비용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에 나서보고 싶었습니다. 펀딩에 크게 성공하게 되면 ‘윈윈’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총판들을 설득했죠. 무엇보다 제 선배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반대 없이 힘을 실어주신 것도 큰 동력이 됐습니다.”(박준석 대표)

 

마호가니는 기타 시장에서 아직 ‘비주류’다.(사진: 크래프터 기타)
마호가니는 기타 시장에서 아직 ‘비주류’다.(사진: 크래프터 기타)

펀딩 주력 제품인 ‘마인드 프리미엄’은 앞서 설명한 마호가니 기타로, 냉정히 말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타입의 제품은 아니다. 소리가 따뜻한 대신 울림이나 여운은 다소 부족해 꽤나 취향을 타는, 그의 표현대로 ‘비주류’ 기타였다.

그럼에도 이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박 대표의 의지였다. 비록 비주류지만 분명 이런 스타일의 기타를 선호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세컨드 기타’ 정도의 입지는 충분할 것이라고 봤다. 시장에 나오는 기타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시장과 소비자 모두에게 좋을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이번 펀딩에 나온 기타들은 얼리버드 기준 42만원과 63만2000원으로 선뜻 지갑을 열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입문자에게는 턱없이 높은 가격인 동시에 중급 이상의 플레이어들도 고민의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펀딩 개시 3일 만인 29일 2000%를 넘어서며 400명 이상으로부터 누적 금액 2억원을 돌파했다.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펀딩 기타에 들어가는 시그니처 라벨링.(사진: 크래프터 기타)
펀딩 기타에 들어가는 시그니처 라벨링.(사진: 크래프터 기타)

┃오해와 진실을 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다
펀딩은 성공을 거뒀지만 박 대표는 크게 들뜨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통 방식 이외에도 새롭게 시도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50년 가까이 흘러오는 동안 크래프터 기타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도 넘어서야 할 ‘허들’이다.

크래프터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기타 생산 기업이지만, 일부 소비자들에게는 튼튼하게 만드는 데만 치중해 음향이 떨어진다거나 ‘연예인 마케팅’에 열을 올려 타 브랜드에 비해 가성비가 좋지 못하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숨은 내막을 알고 나면 이해가 어렵지 않은 부분이다. 크래프터 기타가 가장 많이 수출되는 국가는 브라질·러시아·태국으로, 온도와 습도 면에서 목재의 컨디션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두 달 넘게 영하 20도의 시베리아를 지나고, 배를 타고 태평양을 한 달 넘게 건너며,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는 곳에서 성능을 유지하려면 내구성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은 소리가 크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변형 없이 안정적인 기타를 원했다. 물론 현재는 제품군이 훨씬 다양해져 이 같은 지적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저희는 연예인을 상대로 단 한 번도 비용을 지불하고 협찬을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가수 아이유 씨는 먼저 연락이 와서 저희가 기타를 제작해 판매했고, 따로 계약을 맺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밴드 혁오의 오혁 씨도 마찬가지고요. 저희는 그저 감사함만 갖고 더 좋은 기타를 만드는 데 신경 쓰고 있습니다.”(박준석 대표)

 

크래프터만의 원천 기술인 ‘도브테일 익스텐션’. 기타의 척추와도 같은 네크(neck)의 하이텐션 평형을 잡아준다.(사진: 크래프터 기타)
크래프터만의 원천 기술인 ‘도브테일 익스텐션’. 기타의 척추와도 같은 넥(neck)의 하이텐션 평형을 잡아준다.(사진: 크래프터 기타)

박 대표의 중장기적 목표는 세계 최고 레벨의 마틴이나 테일러 기타에 뒤지지 않는 기타를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지향점일 수는 있지만, 그 같은 목표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서다.

꿈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최근 그는 크래프터가 낳은 수많은 기타 중에 경쟁력 있는 모델들을 남기고 정체성이 모호한 모델은 과감하게 없애는 작업에 들어갔다. 향후 크래프터의 라인업은 소비자가 모델명 하나만으로도 어떤 목재로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급의 기타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끔 깔끔하게 정비될 예정이다.

“하루 수백 대씩 생산하던 시스템도 100대 이하로 대폭 줄였습니다. 기타를 찾는 이들은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오히려 기타를 소비하는 이들의 수준 자체는 높아지고 있어요. 그분들이 원하는 수준에 맞춰 질 좋은 기타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크래프터는 자연스레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한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박준석 대표)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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