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농작물, 이제 도시에서 똑똑하게 키워드세요!
도시형 스마트팜으로 농업혁명 꾀하는 ‘스페이스팜’
건강한 농작물, 이제 도시에서 똑똑하게 키워드세요!
2020.04.08 16:25 by 최태욱

한국임업진흥원은 중기부 예비창업패키지 특화분야 주관기관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스마트포레스트’ 분야 예비창업자 인큐베이팅 지원에 나섰다. 이를 통해 스마트팜부터 자동 방제 드론, 목재 유통플랫폼, 인공지능 로봇파종기까지 다양한 ‘스마트포레스트’ 창업기업이 탄생했다. 본 시리즈는 산림과 4차 산업혁명을 결합해 창업에 성공한 혁신가들의 이야기다. 

“아들‧딸 출가시킨 노부부가 빈 방에 스마트팜을 꾸려 딸기도 재배하고 상추도 재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노부부는 손도 대지 않고 건강한 농작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심지어 부가가치도 만들 수 있죠. 이게 저희가 구현하고자 하는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서유리 스페이스팜 대표의 청사진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아파트 동마다 독채처럼 딸린 스마트팜에선 동 주민들에게 신선한 새싹채소를 공급할 수 있고, 도심 곳곳에는 주차 빌딩 대신 양배추 빌딩이 생길 수도 있단다. 다소 허황되게 들릴 법한 얘기들이지만, 모두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만나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스프레드’ 같은 회사는 교토 시내에 번듯한 스마트팜 건물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미국의 LA에서도 수직형 스마트팜 빌딩이 시범 제작되고 있다.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문제,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 등 농업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대에 도시형 스마트팜으로 우리나라 농업의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나선 이들, 한국임업진흥원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스마트포레스트) 출신의 ‘스페이스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9 스마트포레스트’가 배출한 창업 기업 ‘스페이스팜’
‘2019 스마트포레스트’가 배출한 창업 기업 ‘스페이스팜’

| 美NASA의 ‘우주 상추’에서 얻은 영감으로 창업까지…
스페이스팜의 두 주역, 서유리(32) 대표와 김성노(46) CTO는 원래 농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서 대표는 7년 간 디자인‧개발 분야에서 근무했고, 김 CTO는 KT와 네이버 등에서 활약했던 20년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각기 다른 노선을 걷던 두 사람은 2018년 봄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로 한 스타트업에서 조우했는데, 그곳이 바로 스마트팜 시스템을 개발하던 회사였다. 

“가장 전통적인 이미지인 농업에 가장 혁신적인 4차 산업혁명을 덧 댄 개념이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원래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금세 매료됐죠.”(서유리 대표)

“엔지니어 생활이 힘들다보니 언젠가부터 귀농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농사가 만만치 않잖아요. ‘차라리 농사 잘 짓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발상이 계기가 됐어요.”(김성노 CTO)

몸담던 회사가 경영 위기에 빠지자, 두 사람의 의욕은 새로운 창업으로 모아졌다. 신선한 기획력의 서 대표와 풍부한 전문성을 가진 김 CTO의 의기투합이었다. 전 회사에서 약 2년 여 동안 연구한 것을 토대로 자신들만의 개성을 조금씩 덧대며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제공했던 것은 미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정거장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개발한 ‘에어로포닉스(Aeroponics‧식물 재배에 흙이나 담수 등이 필요하지 않은 재배법)'였다. 김 CTO는 “에어로포닉스는 가장 제한된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재배를 가능하게 한다”면서 “통제와 관리가 생명인 스마트팜과 최고의 궁합을 가진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사명이 ’스페이스팜‘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 실제로 지난 3월, 글로벌 과학저널 '프론티어스 인 플랜트 사이언스(Frontiers in Plant Science)'에선 에어로포닉스로 재배한 '우주 상추'가 영양과 안전성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에어로포닉스와 다른 재배법의 차이. 에어로포닉스는 노출된 뿌리에 물이나 영양액 등을 필요한 만큼 분사해주는 시스템으로 노지(露地)보다는 실내에 더 적합한 방식이다.
에어로포닉스와 다른 재배법의 차이. 에어로포닉스는 노출된 뿌리에 물이나 영양액 등을 필요한 만큼 분사해주는 시스템으로 노지(露地)보다는 실내에 더 적합한 방식이다.

| 우리의 키워드는 ‘도시형’, 그리고 ‘완전 지능화’
방향성이 정해지자 창업 준비에 속도가 붙었다. 여러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보던 중 한국임업진흥원의 예비창업패키지 ‘스마트포레스트’가 눈에 쏙 들어왔다. 스마트팜을 전문 분야로 하는 해당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맞춤옷 같이 꼭 맞았다. 2019년 8월, 스마트포레스트에 입성한 이들은 여러 농가를 방문하는 등 농업공부를 하면서 두 가지 키워드를 도출했고, 이를 토대로 사업화를 진행시켰다. 

첫 번째 키워드는 ‘도시형’이다. 스마트팜의 성패는 효율적인 환경 제어에 달려있는데, 도시는 농촌에 비해 환경제어에 유리하다. 김 CTO는 “시골에서 시설 하우스를 하면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난방비지만, 도심 유휴공간은 어느 곳이나 기본적인 방열 관리가 되어 있다”면서 “효율성 측면에서 인프라가 풍부한 도심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적인 이유도 강하다. 농업이 부득이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활동인데다, 섭취하는 음식이 나에게 오는 거리에 비례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푸드 마일리지’ 개념에 비춰 봐도, 재배지와 먹는 곳은 가까울수록 좋다. 서유리 대표는 “농산물 가격의 70%는 유통비용”이라며 “도시가 생산지이자 소비지가 될 수 있다면 비효율적이고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생산‧유통 문제를 개선하며 더 저렴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도시형 스마트팜은 비효율적인 농산물 유통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다.
도시형 스마트팜은 비효율적인 농산물 유통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완전 지능화’. 여기에는 스페이스팜이 적용한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 녹아있다. 사실 국내의 스마트팜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국내에 상용화된 시스템 역시 특정 조건을 설정해놓으면 그에 맞춰 환경을 제어해주는 ‘자동화’ 정도에 그친다. 엄밀히 말해 반쪽짜리 스마트팜에 불과한 것이다. 

“농사는 굉장히 예민한 작업이잖아요. 오랫동안 축적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죠. 씨를 뿌리면 자라긴 하겠지만… ‘질 좋은 농산물’을 담보하진 못해요. 더 좋은 품질로 더 많이 재배할 수 있는 농부들의 노하우와 지식을 흉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지능화이고, 이를 통해 완전한 ‘스마트팜’이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성노 CTO)

이를 위해선 먼저 데이터를 처리하는 높은 수준의 기술, 즉 ‘빅데이터’ 기술이 필요하다. 농작물에 관련된 온도, 습도, 일조량, ph농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서 처리하는 역할이다. 여기에 흔히 인공지능 기술로 알려진 ‘머신러닝’을 접목해 최적의 재배 환경과 방식을 찾아나가며, 이를 자동 제어장치와 연결해 알아서 LED도 비춰주고, 물이나 양액도 분사해주면 비로소 완전한 스마트팜으로 기능하게 된다. 

 

지능형 환경 조절 장치와 빅데이터 기반의 기계학습 플랫폼을 융합한 스페이스팜의 아키텍처
지능형 환경 조절 장치와 빅데이터 기반의 기계학습 플랫폼을 융합한 스페이스팜의 아키텍처

| 빅데이터 플랫폼 개발 끝, 올해 안에 실제 ‘똑똑한 밭’ 만든다! 
듣기만 해도 복잡다단할 것만 같은 작업, 그렇다면 스페이스팜은 현재 어느 정도 단계까지 온 것일까? 지난해 8월 스마트포레스트에 참가한 이래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빅데이터 플랫폼 개발을 완료한 것이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팜 데이터를 긁어모아 재배가 잘 됐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 이는 이후 이어질 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 개발의 토대가 된다. 통합센서 등 IoT 디바이스를 맡아줄 업무 파트너도 든든하다. 덕분에 실제 구현될 스마트팜의 하드웨어 프로토 타입 역시 제작이 완료된 상태이며, 통합 모니터링이나 스마트팜 운용 시스템에 대한 기획도 거의 마무리 단계다. 

현재 스페이스팜에서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10평 정도 스마트팜(5단 구성)을 꾸릴 경우, 약 5,000만원의 구축비용이 들며, 상추 재배를 기준으로 연간 2,6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매출량은 일반 노지의 약 7.5배에 달하는 수치. 설비에 소모품이 거의 없어 반영구적인 재배‧생산이 가능하다.

 

스페이스팜의 교육용 스마트팜 시제품
스페이스팜의 교육용 스마트팜 시제품

도심 유휴공간의 재발견이란 콘셉트답게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집의 방 한 칸부터, 한 층, 건물 한 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에 적용될 수 있다. 김성노 CTO는 “자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우리 스마트팜을 통해 딸기나 양배추를 재배했을 경우, 평당 산출액이 서울의 평당 평균 임대료(약 8만원)를 훌쩍 뛰어 넘는다”면서 “임대가 안 되는 상가 사무실도 신 개념 농지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시드투자 유치다. 연구‧개발 비용이나 전문 인력의 활용이 필수적인 업무 특성 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자금 문제다. 실제로 지난 달 싱가포르에서 방문한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코로나19국면으로 무산된 일도 있었다. 

투자가 더욱 시급한 이유는 올해의 ‘숙원사업’인 베타 스페이스팜 구축을 위해서다. 실제 구현을 위한 모든 사전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상업성 검증을 위한 베타팜 오픈은 필수적이다. 김성노 CTO는 “스페이스팜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품질과 생산성 모두 우수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게 첫 번째 목표”라며 “이를 위해 올해 안에 10평 공간의 베타 팜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IR피칭을 하고 있는 서유리 대표
싱가포르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IR피칭을 하고 있는 서유리 대표

장기적으로는 스페이스팜의 전국적인 확대와 이를 통해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아름다운 농촌을 훼손하지 않아도 되는, 유통에 따른 환경오염을 만들지 않는, 누구나 값싸고 질 좋은 농작물을 신선하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선 ‘이름값’을 꼭 해보고 싶단다.  

“오는 2033년이 화성하고 지구가 가장 가까워지는 때라, 미국에서 화성에 우주인을 보낸대요. 그때까지 완성도를 갈고 닦으면 우리도 사명처럼 우주로 나가야죠. 스페이스팜이 화성에서 재배한 딸기, 기대해주세요!(웃음)“(서유리 대표)

 

/사진: 스페이스팜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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