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드 기사가라에서 일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올해는 농경지를 더 매입했죠. 그동안 땅을 빌려 사용했는데, 이제는 제 소유의 땅에서 마음껏 재배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베아트리스, 카페 드 기사가라 조합원)
르완다에 사는 베아트리스 씨의 이야기, 그리고 굿네이버스와 르완다 커피의 인연. 여기에는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여느 아프리카 나라들이 그러했듯, 르완다도 유럽(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그로 인해 그릇된 유산을 갖게 됐다.
과거 르완다를 지배했던 벨기에가 모호한 기준으로 민족을 나눈 게 화근이었다. 키가 크고 콧대가 높은 ‘투치족’을 지배계층으로, 그렇지 않은 ‘후투족’을 피지배계층으로 두고 후투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쳤다. 그렇게 시작된 민족분열은 1962년 독립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러던 중 1973년 후투족 출신 쿠데타 정권에 의해 투치족은 역으로 억압받기에 이르고, 두 민족 간의 증오는 갈수록 쌓여만 갔다.
1994년 4월 6일, 그 증오가 분출되는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쥐베날 하뱌리마나’가 탄 비행기가 테러공격으로 인해 요격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양 측의 갈등은 내전으로, 또 학살로 번져갔다. 당시 사건으로 100일 남짓한 시간에 약 100만 명의 르완다 주민들이 희생됐다. 당시 르완다는 그야말로 생지옥, 그 자체였다.
굿네이버스도 당시 이 지옥 같은 현장을 함께 했다. 1994년 8월 11일 한국 최초로 르완다 자이레 고마 지역에 긴급구호 의료봉사단을 파견했던 것.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굿네이버스는 기꺼이 그 아비규환 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울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내전의 상처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될 때쯤, 굿네이버스는 르완다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커피 생두가공회사인 ‘카페 드 기사가라’를 통해 그들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다.
르완다는 커피로 유명한 나라다. 세계 유수의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르완다 커피를 즐겨 쓴다. 하지만 르완다의 커피 농가는 가난을 면치 못한다. 현지의 유통방식 때문이다. 현지에선 중개 상인들이 생산자로부터 생두를 제 값에 구매하지 않는다. 어음을 주거나, 아주 싼 값에 가져온다. 그리곤 이를 시장에 되팔아 돈이 확보되면 뒤늦게 생산자에게 대금을 지불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가 어려운 극빈층 주민들에겐 너무 가혹하다. 어렵사리 수확을 했지만, 돈을 바로 받지 못하니 동기부여도 크게 떨어진다. 세계적으로 노동착취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굿네이버스가 현지에 만든 유통업체 ‘카페 드 기사가라’는 조금 다르다. 생두를 매입할 때 곧바로 현금을 100% 지급하고, 시장에서 판매 수익이 발생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생산자는 대금지급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 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생산 및 품질 개선에도 집중할 수 있다.
‘카페 드 기사가라’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현지 1차 가공시설을 대여해 안정적인 가공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직원교육도 꾸준히 실시하여 기술적인 부분을 개선했다. 또한 농부들에게는 커피열매 재배법과 수확 노하우 등을 전수하며 생산성 혁신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품질은 좋아지고, 소득은 높아진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수립하는 과정인 셈이다.
유통업체인 ‘카페 드 기사가라’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고스란히 생산 농가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농가들은 안정적으로 커피열매를 매입할 수 있다. 커피 유통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통 혁신의 결과는 놀라웠다. 지난 4년 동안 ‘카페 드 기사가라’가 함께한 지역 농가는 커피나무 한 그루 당 수확 가능한 수량이 1.13kg에서 3kg으로 증가했고, 농가의 소득도 159% 증가했다. ‘카페 드 기사가라’가 4년 간 58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었던 힘도 이러한 농가의 선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20년 전의 내전과 차별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 그렇게 자란 이들이 열심히 일하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했던 굿네이버스와 ‘카페 드 기사가라’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우리의 커피를 꾸준하게 소비해줄 파트너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Cafe de Gisagara 정규영 대표)
현재 ‘카페 드 기사가라’는 르완다에서 1년에 100톤(t) 가량의 생두를 생산한다. 이중 절반은 미국, 러시아,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온다. 국내에서는 전문 생두업체와 로스터리 카페를 대상으로 납품하고 있는데, 원두커피의 경우 굿네이버스에서 운영하는 ‘좋은이웃 카페’에서도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현재 굿네이버스는 ‘카페 드 기사가라’의 모델을 다른 커피 생산국들에 이식할 채비에 한창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내 유명 스페셜티커피업체 등과 함께 과테말라 사회적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도 현지 사업 담당자와 구체적인 소통을 진행 중이다.
세상을 위한 좋은 변화 ‘굿네이버스’가 만드는 커피 한 잔으로, 이 겨울 마음의 한기까지 녹여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