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도로의 ‘지뢰’ 블랙아이스를 막아라
겨울철 도로의 ‘지뢰’ 블랙아이스를 막아라
2019.01.22 15:20 by 이창희

여느 날이나 다를 것 없었던 도로였어요. 날씨가 조금 추웠다는 것만 빼면 말이죠. 규정 속도에 맞춰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난데없이 차가 미끄러지더니 한 바퀴 빙글 돌더라고요.”(남해고속도로 17중 추돌사고 현장 운전자 A)

지난달 11, 전남 장흥군 남해고속도로 영암 방면을 달리던 트럭과 화물차가 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며 서로 크게 부딪혔습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뒤이어 달려오던 차량들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부랴부랴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제 때 멈추기엔 이미 늦은 상황. 충돌로 엉켜있는 차량을 뒤따라오던 차가 차례로 들이받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이날 이 도로에서 추돌한 차량은 모두 17대였습니다. 17중 추돌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도로 위 빙판. 하지만 도로 위 어디에도 눈이나 얼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요. 차량 십 수대를 속절없이 미끄러지게 한 원흉은 바로 오늘의 주제인 블랙아이스(Black Ice)’입니다.

 

블랙아이스? 누구냐 넌.
블랙아이스? 누구냐 넌.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 블랙아이스

겨울철 도로에는 눈이 내립니다. 눈은 제설작업에 의해 혹은 자연적으로 녹게 되고, 녹은 눈은 수분으로 변해 도로로 스며듭니다. 이 물기는 증발할 새도 없이 영하의 날씨 속에 그대로 얼어붙어 살얼음을 형성합니다. 즉 도로 위의 검은 얼음, ‘블랙아이스(Black Ice)’가 되는 것이죠. 블랙아이스는 워낙 얇고 투명한 탓에 도로의 검은 아스팔트 색이 그대로 비쳐 이러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블랙아이스는 주로 겨울철 아침 시간대에 터널 출입구나 다리 위의 도로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눈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하천 주변의 도로, 또는 그늘이 져 있는 커브 길과 같이 기온의 차이가 큰 곳에서 발생하기 쉽습니다. 처음 얼었을 때는 위험도가 높지 않지만 차량 타이어의 마찰열에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며 마치 빙판처럼 매끈하게 다져집니다.

 

주로 커브길에, 보이지 않게 도사리고 있는 블랙아이스.(사진: wikihow)
주로 커브길에, 보이지 않게 도사리고 있는 블랙아이스.(사진: wikihow)

운전자들은 겨울철 운전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눈길, 빙판길은 신경을 곤두세우기 마련이죠. 블랙아이스가 무서운 건 이러한 경각심을 허물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운전자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죠. 설사 보인다 하더라도 단순히 도로가 조금 젖은 것으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미끄러지게 됩니다. 특히 차량의 속도가 빠른 고속도로에서는 위의 사례처럼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일어난 빙판길 대형 추돌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이 이런 대참사를 빚어낼 수도 있습니다.(사진: grizzly-bag)
지난해 미국에서 일어난 빙판길 대형 추돌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이 이런 대참사를 빚어낼 수도 있습니다.(사진: grizzly-bag)

최신 차량에는 ABS(Anti-lock Brake System·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와 같은 기술이 탑재돼 있어 어느 정도 미끄럼을 막아주지만 블랙아이스의 위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성능 좋기로 유명한 영국의 스포츠카 맥라렌이 블랙아이스를 만나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겨울철 도로 결빙이나 눈으로 인한 사고는 5천 건이 넘습니다. 이중 대부분이 블랙아이스로 인한 사고로 추정됩니다. 공단에서는 눈길이 일반 도로에 비해 3배 정도 미끄럽지만, 블랙아이스가 도사린 길은 9배 더 미끄럽다고 설명합니다.

 

블랙아이스를 만나면 차가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사진: wentzvill)
블랙아이스를 만나면 차가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사진: wentzvill)

피하거나 혹은 녹이거나빙판길의 보안관

블랙아이스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도로 열선과 제설·제빙제 등 기존의 방식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동시에 새로운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미리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블랙아이스를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차량 운행 속도와 가속도, 엔진 회전 속도(RPM),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 브레이크 사용 여부 등을 기록하는 차량운행기록계(DTG)를 이용해 블랙아이스를 탐지하는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속도가 줄지 않고 미끄러지거나, RPM이 상승하는데 속도가 올라가지 않고 있다면 빙판 위라고 판단합니다. 빙판이 감지되면 GPS로 해당 위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고, 이를 교통 정보에 반영해 실시간으로 주변 차량에 알려줍니다. 블랙아이스가 의심되는 길이란 정보를 제공 받은 운전자들은 미리 속도를 줄여 대비할 수 있는 것이죠.

 

블랙아이스 예측 원리.(사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블랙아이스 예측 원리.(사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에서는 눈과 얼음이 잘 녹는 도로 포장재도 연구 중입니다. 현재 도로에 주로 사용되는 구리 열선은 시간이 지나면 전기가 연결된 선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보통은 그 수명이 2년 정도죠. 이 구리 열선 대신, 아스팔트와 지면 사이에 열을 내는 탄소섬유 포장재를 넣는 방식이 발열과 내구성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는 게 연구원 측의 설명입니다. 현재 탄소섬유의 높은 가격이 문제인데, 이 부분만 해결된다면 바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빙판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질은 따로 있죠. 바로 염화칼슘입니다. 흡습성이 강한 데다 물과 만나면서 열을 내는 성질이 있어 제설 작업에 흔히 쓰입니다. 무엇보다 염화칼슘으로 녹은 수분은 여간해선 다시 어는 경우도 없어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가격도 무척 저렴하고요.

하지만 이 염화칼슘은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바로 금속을 부식시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죠. 다리 위 제설을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교량을 잇는 철골 구조물에 영향을 줍니다. 누적되면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죠. 당연히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량에도 좋지 않고요. 무엇보다 환경에도 무척이나 좋지 않죠. 염화칼슘이 지하수로 흘러들게 되면 하천 생태계에 악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이에 염화칼슘 같은 염소계 제설제 대신 칼륨 아세테이트나 구연산, 유기산염 같은 비염소계 물질을 이용한 제설제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다만 이러한 친환경 제설제들은 제설 능력면에서 염화칼슘에 미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이 필요합니다.

 

저렴하고 효과적이지만 환경에 좋지 못한 염화칼슘.(사진: ThoughtCo)
저렴하고 효과적이지만 환경에 좋지 못한 염화칼슘.(사진: ThoughtCo)

블랙아이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블랙아이스도 쉽게 말하면 그저 빙판길입니다. 미리 서행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사고를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전문가들은 비용이 들고 번거롭더라도 겨울철엔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예기치 못하게 블랙아이스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속칭 핸들이라 부르는 스티어링 휠을 적절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차체가 미끄러지면 주로 뒷바퀴가 중심을 잃고 좌우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핸들 역시 그에 맞춰 같은 방향으로 조작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뒷바퀴가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차량의 진행 방향을 전방으로 맞춰 정상 궤도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티어링 휠(핸들) 조작만으로도 위험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습니다.(사진: howtodrive)
스티어링 휠(핸들) 조작만으로도 위험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습니다.(사진: howtodrive)

만약 차량에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블랙아이스를 만났다면, 브레이크 페달 대신 엔진 브레이크로 감속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방법이지만 실제로 빙판길을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동 변속기를 한 단씩 변속하고, 자동 변속기는 ‘+,-’ 레버를 이용하여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공식블로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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