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의 힘, 까르보나라 without cream
오리지널의 힘, 까르보나라 without cream
2019.01.08 11:47 by 이창희

파스타는 요상한 변종의 역사를 가진 음식 중 하나다. 이태리에선 라면 정도의 취급을 받는 주제에 물 건너 조선 반도에 들어오면서 별안간 신분을 세탁하고 몸값이 높아졌다. 저간의 히스토리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맛은 훌륭하기에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래서 잘 생기고 예쁘면 장땡이라는 말이 나오는 듯도 싶고.

인종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파스타는 단연코 흰색을 선호한다. 계란의 난황에서 우러나는 그 촘촘하고 밀도 높은 맛은 혀에 한 번 각인되면 고래 등자락에 붙은 빨판상어마냥 떨어질 줄을 모른다. 한때 홀로 즐겨 찾던 파스타 가게에서 까르보나라 2인분 메뉴가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수능에서 답을 밀려 썼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좌절로 닥쳐왔더랬다. 그러니, 당신이 만약 빨간색 파스타를 좋아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도 좋다. 아니 눌러라. 

그런데 까르보나라에 크림을 쓰지 않는 것이 정통 오리지날 본토 방식이라는 소문이 언제부턴가 스멀스멀 들려오고 있다. 보통은 이런 경우 그러든가 말든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궁금하긴 했다. 크림 없이 크리미한 맛의 음식을 만든다니. 어쨌거나 붕어 없는 붕어빵을 만드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일단 면부터 골라보자. 여러 종류가 있지만 까르보나라의 식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적당히 얇은 스파게티다. 납작한 링귀네, 구멍이 뚫려 있는 두꺼운 펜네, 회오리 감자 모양으로 생긴 푸실리 등은 비추다. 이것들로 만들어도 맛있다는 사람은 떡국 떡으로 만들어도 맛있다고 할 거다.

면 삶는 법은 간단하다. 깊이가 있는 냄비에 물을 충분히 넣고 끓이면서 소금과 올리브유를 아주 살짝 투하하자. 최현석 쉐프처럼 허세를 부려보길 추천한다. 당신이 언제 또 해보겠나. 물이 끓으면 면을 부챗살 펼치듯 넓게 펼쳐 넣어준다. 먼저 잠긴 부분부터 다리 풀리듯 스르륵 빨려 들어가는 데는 30초 정도 걸린다. 

그 다음은 고기. 관찰레(Guanciale)나 판체타(Pancetta)를 쓰는 것이 정석이지만, 솔직히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 그냥 아무 베이컨이나 준비하자. 비계와 살코기가 비슷한 비율이 되도록 해서 한입 말고 반의 반입 크기로 자른 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넣고 볶는다. 그리고 곧바로 마늘을 넣는데, 편마늘로 하든 중식도로 눌러 으깨 넣든 땡기는 대로 하면 된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양파와 버섯도 이때 투입한다.

가장 중요한 소스를 만들 차례다. 계란에서 노른자만 추출해서 볼에 담고 파마산 치즈와 후추를 함께 섞어준다. 인내심을 발휘해 열심히 섞다가 식용색소 황색 2호 정도의 색깔이 되면 멈추도록 하자.

소스를 완성할 쯤이면 베이컨이 기름을 내뿜으며 익어갈 것이다. 과자로 변하지 않는지만 잘 감시하면서 면의 상태를 확인한다. 전문가들은 9분 정도를 추천하는데, 꼭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 라면 끓일 때도 봉지 뒷면에 나온 설명을 곧이곧대로 따라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어디 드라마에서 본 걸 따라한답시고 벽에 던지는 행위는 하지 말자. 바로 떼어내지 않으면 흉하게 들러붙어 처치가 곤란해진다. 심지어 벽지에 던지는 사람도 있는데 독자 중에는 그 정도로 소름끼치게 무식한 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삶아낸 면을 체에 밭쳐 물기를 털어낸 뒤 곧바로 팬에 부어준다. 베이컨의 기름과 양파와 마늘의 향이 면에 입혀질 정도로 볶아주면서 살짝 익힌다. 면이 다 익었다 싶으면 불을 끔과 동시에 아까 만들어둔 소스를 넣어 마구 섞어주자. 불을 끄지 않고 소스를 넣어도 되긴 하지만 자칫 온도가 너무 높으면 노른자가 스크램블마냥 흉하게 익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

이제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를 다시 마구 뿌려주면 완성이다. 파슬리나 바질은 역시나 옵션이다. 물기 없이 노오란 색의 볶음면 같은 느낌이 든다면 성공이다. 탱글한 면과 진득한 소스의 quantity와 quality가 equality를 이뤄 당신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것이다.

Atmosphere & Mariage
-느끼한 듯 느끼하지 않은 그 무언가가 필요한 저녁
-적당히 드라이한 레드 와인

Recipe
-스파게티 면
-계란(노른자)
-파마산 치즈
-양파, 마늘
-베이컨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