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날로 흥하고 있지만 디바이스 기반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실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받는 전체 투자 중에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이뤄지는 투자는 1~2% 수준에 그친다. 투자가 미미하니, 도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도 미미하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비교해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고전적인 의미의 제조업을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약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제품군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문제는 발명의 어머니
지난 6일,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캠퍼스에서 ‘하드웨어 지원사업 결선 데모데이’가 개최됐다. 캠퍼스 2주년 성과 공유회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를 위해 총 76개 스타트업이 신청했고 이중 15개팀이 선정돼 결선 발표에 참여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무기로 일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싱크 블랭크(대표 김동민)는 최근 여성들의 사용이 늘고 있는 월경컵을 소독·보관할 수 있는 제품 ‘리사’를 선보였다. UV-LED로 살균 소독 후 보관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포인트. 최근 월경컵이 기존 생리대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열탕소독과 건조 등 관리가 쉽지 않은 점에 착안한 것이다. 내부를 스테인리스로 처리해 위생적이고 리튬배터리를 장착해 충전이 쉽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알라 코스메틱(대표 박연화)은 한 손에 잡히는 ‘올인원 브러쉬’를 내놨다. 15년 경력의 메이크업 전문가인 박 대표가 현장에서 겪은 불편함을 차곡차곡 모아 구현한 아이디어다. 용도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브러쉬들을 한 손에 들고 화장을 하다보면 떨어뜨리거나 헷갈리기 쉬웠다. 또한 파우치 안에서 따로 노는 브러쉬들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잡이 하나에 5개의 각기 다른 브러쉬를 장착했다. 그저 그런 기능성 제품처럼 만듦새가 허술한 것도 아니다. 3D 모델링을 통해 섬세한 그립감을 살렸고, 컬러도 취향에 맞게 설계했다.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제품도 있었다. 버킷츠(대표 하영웅)의 스마트 침대 ‘IoT 모션베드’는 대학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려오던 하영웅 대표가 직접 구상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원격으로 침대의 높낮이부터 조명 및 독서대 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자작나무-포퓰러 합판을 소재로 직접 조립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1000만 반려동물 시대를 겨냥하다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그야말로 반려자 급 위상이다. 자연히 이를 타깃으로 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도 늘어나고 있다.
펫디오(대표 송면근)는 반려동물 납골함을 제작한다.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뒤 상실감에 휩싸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착안, 생전의 반려동물이 사용하던 집이나 물건을 소재로 납골함을 만든다. 반려동물 종별에 따라 개 모양과 고양이 모양의 납골함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송면근 대표는 조형미를 살린 제품을 통해 사후에까지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이어주고 싶다는 포부다.
웨다(대표 최치민)는 데이터를 이용한 반려동물 보호 서비스를 내세운다. 한국은 1000만 반려동물 시대지만 매년 10만 마리의 유기견·유기묘가 발생한다. 웨다는 그 이유를 비용적 부담과 쉽지 않은 건강관리 때문으로 파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려동물이 휴대할 수 있는 와이파이 센서를 개발, 활동량과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최치민 대표는 “반려동물의 치료시기를 놓쳐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면서 “한 발 빠른 대처를 통해 반려인이 양육을 포기하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워라밸’ 혹은 ‘소확행’의 트렌드가 각광받는 시대. 그만큼 개인의 취향과 행복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발맞춰 소소하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RNS(대표 김준성)가 내놓은 춤추는 로봇 스피커 ‘파티어’는 그 모습만 지켜봐도 흥이 절로 오른다.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러볼을 로봇에 장착하고 블루투스 스피커와 결합했다. 음악에 맞춰 상하좌우 신나는 움직임과 함께 형형색색의 조명이 발사된다. 클럽이나 캠핑, 각종 레크레이션 현장에서 열리는 파티에 제격이다.
다양한 신발을 모으는 행위는 더 이상 일부 연예인들만의 취미가 아니다. 테크노케미(대표 정다운)는 신발 매니아를 위한 ‘디스플레이 & 케어슈즈 케이스’를 선보였다. 신발 수집가들은 수십 켤레의 신발을 사서 모으지만 보관과 관리에 어려움 겪는 이들이 많다. 해당 케이스는 효율적인 보관은 물론이고 습기와 냄새를 잡아주는 기능까지 갖췄다.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훌륭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는 가구가 된다.
이날 데모데이에서는 이밖에도 여러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저마다의 제품을 선보였다. 아직은 시제품 수준에 머문 곳부터, 이미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제품까지 단계는 다양했지만 척박한 길에 뛰어든 이들의 치열함은 그 어느 데모데이 못지않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중국 심천의 하드웨어 엑셀러레이터 ‘대공방(大公坊)’의 딩춘파(Allen Ding) 대표는 “한국에서 이런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저마다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면서 “중국으로 초대해 시제품 제작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