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이긴 사진사들, 꿈을 찍고 희망을 현상하다
암 환자들의 자립 교육 지원하는 ‘다나음’ 프로그램
암을 이긴 사진사들, 꿈을 찍고 희망을 현상하다
2018.11.26 18:12 by 송희원

“장애인의 장수 사진을 찍어 주는 봉사를 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너무 밝고 긍정적인 거예요. 낙담하고, 투정만 부리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멋쩍은 듯 말을 이어가는 A씨. 혈액암 판정에 골수 이식까지 받았었지만, 더 이상 환자의 무기력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과 목소리에선 의욕이 충만하다.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이어줄 매개체 ‘사진’을 만났기 때문이다. 

두 달 전, ‘바라봄’(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던 9명의 사람들은 모두 A씨와 비슷한 사연을 지녔다. 이들은 암 환자 자립 지원 프로그램 ‘다나음’(다시 나아가는 한 걸음) 사진 교육 수강생들로 각각 유방암, 신장암, 위암, 간암, 혈액암 경험자들이다. 이날은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선으로 찍어온 사진들을 함께 감상한 뒤 사진작가 선생님의 조언을 받는 자리. 지난 6월부터 사진 이론 교육, 야외 출사를 거치며 갈고 닦은 실력을 맘껏 뽐내는 시간이다.

마치 잘 차려진 사진 학원에 와 있는 기분. 조리개, 셔터스피드, 사진 구도, 중앙 중점, 측광모드 등 꽤나 전문적인 용어들이 들리며,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조언도 오간다.

“이 항구 사진은 약간 비스듬하죠? 수평선을 맞추려면 풍경의 세로선을 기준으로 찍어야 안정적이에요.” 선생님의 조언을 듣는 수강생들의 자세에서는 진지함이 묻어난다.

 

다나음 자립 교육 생활사진가 과정 이론 수업(사진: ARCON)
다나음 자립 교육 생활사진가 과정 이론 수업(사진: ARCON)

암 경험자들의 고난은 수술 및 치료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낮아진 체력과 자존감, 선입견과 편견 등으로 일과 사회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MSD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아르콘(ARCON)이 주최하는 ‘다나음’은 이 같은 암 경험자 및 가족의 고충을 헤아려, 이들의 건강한 사회 복귀를 돕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암 경험자들의 수요 조사를 통해 상담(공공선연구소), 사무 관리(SBS아카데미컴퓨터아트학원), 사진(바라봄) 등의 과목을 선정했고, 각각의 교육은 물론,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십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특히 사진 교육은 교육 특유의 활동성 때문에 인기가 많다. 유방암을 앓았다던 B씨는 “미용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예쁘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담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 교육을 택했다”면서 “(기존에)타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꽤 접했는데, 진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다나음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번 다나음 생활사진가 과정 1기에서 사진을 배운 수강생들은 총 10명. 대부분 DSLR 사진기를 처음 다뤄보는 초보자들이다. 교육을 담당한 이관석 사진작가는 “초보자가 따라가기엔 다소 버거울 수 있었는데도, 부득이 수업을 빠질 땐 따로 찾아와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의 존재 덕분이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수강생들은 ‘암 경험’과 ‘사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공감대를 만들어냈고,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서로 돈독한 관계가 돼 있었다.

“암 환우 모임 같은 곳을 가면 주로 같은 병을 가진 분들만 만나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대부분 병, 증상 같은 것들이에요. 자연스레 더 우울해지죠. 그런데 여기는 다양한 병을 가진분들이 섞여 있어서 증상 얘기는 잘 안 해요. 무엇보다 사진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대화가 늘 즐겁죠.(웃음)”(다나음 수강생 C씨)

 

다나음 자립 교육 생활사진가 과정 야외 출사(사진: ARCON)
다나음 자립 교육 생활사진가 과정 야외 출사(사진: ARCON)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은 수강생들의 동기부여를 돋운다. 현장에서 만난 수강생 D씨는 “치료 후 복지관 같은 데서 기술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막상 ‘일하라’고 불러 주는 데는 한군데도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그에게 교육 이후 인턴십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참 반갑다. 모든 수강생들은 교육이 모두 끝난 후 '장애인 일자리 정보 한마당' 취업용 증명사진을 촬영하는 인턴십에 참여한다. D씨가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진 기술을 연마해 나갈 계획”이라고 다짐하는 이유다.

이미현 ARCON 차장은 “모든 교육과 인턴십이 종료된 후에도 참여자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심화 교육을 마련할 계획이다”라며 “실질적으로 환우 분들께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나음’(다시 나아가는 한 걸음)은 한국MSD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아르콘이 주최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암 경험자에게 실질적인 교육과 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사회복귀와 자립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올해를 시작으로 암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인식개선 캠페인과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송희원

목표 없는 길을, 길 없는 목표에 대한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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