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거주한 지난 4년 동안 한국의 몇몇 지인들이 다녀갔다. 과거엔 ‘중국’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낙후된 국가라는 인식이 만연했으나 최근 들어 경제적 급성장을 비롯한 발전상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이 중국을 찾아오곤 했다.
베이징에 머물던 시절 찾아오는 이들에게 소개했던 장소 중에 빼놓지 않았던 곳은 베이징대 캠퍼스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상아탑이기도 하고, 중국 특유의 학구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인들은 베이징대의 규모와 분위기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감흥(?)을 느낀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한국의 대학 캠퍼스 화장실을 떠올려보라. 나름 지성인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탓에 대체로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그러나 베이징대의 화장실은 시설 측면에서는 떨어지지 않을지 모르나, 위생과 환경은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지인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중국은 아직도 멀었구나.”
他们说, 그들의 시선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중국의 특징이 있다. 이른바 ‘꽌시’ 문화다. ‘내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을 구분 짓는 것. 전자에겐 한없이 관대하며 그의 어려움을 곧 자신이 어려움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돕는 반면, 후자의 경우 심하게는 목숨이 달린 일에도 외면한다. 공용 화장실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에도 이 같은 ‘꽌시’ 문화가 녹아있다.
중국인들에게 공용 화장실은 ‘내 것’이 아니다. 이를 깨끗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자신 뒤에 곧바로 화장실을 사용할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 역시 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인 가정을 방문해보면 정 반대의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들의 집에 있는 화장실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다. 평범한 수준의 집에도 화장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있고 강한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간단하다. 자신의 집, 그리고 화장실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내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남이 아니다.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주택가를 둘러보면 대도시, 그 안에서도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물 외관이 허름한 경우가 많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곳이 허다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보면 180도 딴판이다. 밖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청결함과 깔끔함이 놀라움을 선사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해당 주택이 자가 거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집 주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경우에 한정된다. 반면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의 사정은 이와 또 반대다. ‘남의 집’에 ‘잠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관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있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她说, 그녀의 시선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중국인들의 인식은 단순히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해묵은 인식이 초래한 ‘나비효과’의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파견된 대기업 주재원 A씨.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개인적인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퇴근 후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부동산을 알아보고, 한국식 음식점을 차리는 것도 고민했다.
꼼꼼한 시장조사를 마친 그는 베이징에 최고급 시설의 어학원을 열기로 결심한다. 최근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A씨는 베이징에서 숙식을 함께 제공하며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추후 한국 어학연수 코스까지 연계하는 어학원을 계획했다. 그는 그럴듯한 사업 구상과 함께 호텔을 빌려 투자 설명회까지 열었고, 이에 흥미를 느낀 한인 자본가들 다수가 투자 의사를 밝혀왔다. 기존의 한국어 교육 업체들도 여럿 참여하게 됐다.
탄력을 받은 그는 우선 비교적 지가가 비교적 저렴한 베이징 외곽 지역의 오피스텔을 대거 매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 그가 알아본 오피스텔은 가격 대비 위생 상태가 매우 엉망이었던 것이다. 숙식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의 컨디션이 확보돼야 함에도 도저히 거주하기 어려운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건물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한 두 차례의 세입자가 거주를 하고 나면 제아무리 새 집도 폐허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A씨는 세입자가 퇴소할 때마다 수리 및 리모델링을 하는 것도 고민했으나 그 비용이 엄청나 타산이 맞지 않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다고 새 건물을 매입하기엔 너무나도 비쌌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명의로 주택을 직접 구매할 경우 100% 현금으로만 가능한 데다 매매 가능 건축물의 종류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결국 그는 사업을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