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반도 남북의 두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그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압도적이고 엄청난 규모로 다가오는 평화의 기운은 마치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의 기세와도 같았습니다.
그 이후 남북 정상은 한 차례 더 만났고, 이번 가을을 맞아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협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답답하리만큼 더딘 속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차분하게 인내하고 더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보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 인터넷의 한정된 정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은 실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금단의 땅을 밟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 근처에라도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지적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30대 중반의 현직 기자와 청년공동체 대표, 진보정당 당원, 여기에 거구의 50대 인문학자와 탈모가 고민인 40대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케케묵은 금언(金言)을 실천하고자 백수 한 명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역대급의 무더위가 한반도를 휘감았던 8월의 어느 날 늦은 밤, 이들은 북한 국경이 바라보이는 중국 단동으로 함께 떠나기로 결의했습니다. 출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부러 별다른 준비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민족주의나 남북통일 같은 거대 담론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 특수한 분단국가에 태어나 특별한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못내 궁금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육안으로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인지, 갑작스레 움트기 시작한 변화의 물결이 북쪽에서는 어떤 온도로 흐르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누군가는 옥류관까진 아니어도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의 평양냉면을 먹어보고 싶었고, 어떤 이는 압록강에 뛰어들어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싶었으며, 열하일기를 집필한 연암 박지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는 이도 있었습니다.
처음 바라보게 될 압록강 너머 북한 신의주의 풍경, 북쪽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싶은 기대, 다른 한편으론 차가운 벽에 부딪히고 좌절을 맛볼 수도 있겠다는 걱정. 복잡다단한 심경이 교차하던 9월의 첫째 날 아침, 그들은 태운 중국행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