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금으로 발달장애인 호의호식하라고?
내 세금으로 발달장애인 호의호식하라고?
2018.05.11 11:59 by 류승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외치며 부모들이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한다. 사람들은 손 안의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기사를 읽고 댓글도 단다.

“국가 책임? 내가 낸 세금으로 발달장애인 책임지라고? 국가에서 장애인 낳으라고 장려라도 했냐? 부모는 뭐하고? 왜 나라에서 장애인을 책임지래?”

아~ ‘책임’이라는 말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발달장애인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먹여 살려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몰라서 오해를 한다. ‘국가 책임’이라는 말만 듣고 발끈한다. 내가 낸 세금이 장애인 호의호식하는 데 쓰일 것만 같아 반대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모든 것.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 그럼 가봅시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내용 속으로! 슈웅~!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크게 8개의 정책 과제를 담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의미 있는 낮 시간 활동 보장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본격 도입’이다. 이게 무슨 뜻일꼬? 의미 있는 낮 시간? 주간 활동? 기다려보시라. 이런 걸 설명하려고 지금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지적장애 2등급 아들의 하루 일과를 먼저 소개한다. 열 살이 된 아들은 아침에 학교를 가서 오후에 하교를 한다. 어떤 날은 1시20분에 끝나고 어떤 날은 4시에 끝난다. 하교 시엔 활동보조인이 교실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들을 데리고 치료실에 들렸다 집에 온다.

나는 매일 오후 4시~5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만난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동네 어디로든 산책을 나간다. 주로 퇴근하는 아빠를 마중하러 지하철역으로 가곤 한다. 집에서 나갈 땐 셋이었지만 돌아올 땐 넷이다. 우리 가정의 일과다. 그러다 밤이 되면 씻고 잘 준비를 한다. 하루가 저물고 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아마도 이 일상은 아들이 고3이 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중간에 쌍둥이 누나는 빠질 수도 있다. 사춘기가 넘어가면서 부턴 공부를 핑계로 온 가족 저녁 산책에서 빠지게 되리라. 하지만 이러한 일상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참담한 수준. 몇 년 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취업에 성공한 성인 발달장애인이 10명 중 2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 나머지 8명은 무엇을 하느냐! 그러니까 10년 후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는 내 아들은 무엇을 하느냐! 나랑 같이 집에 있어야 한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일 년 내내, 우리 둘 중 누구 하나가 먼저 죽을 때까지.

학령기 때는 ‘학교’라는 갈 곳이 있다. 또 부모들도 학령기 시절에는 치료실에도 열심히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부모도 늙는다. 수입은 줄거나 없어진다. 치료 지원 바우처도 끊기고 활동보조인 활용 시간도 현저히 적어지는 성인기인데 오히려 자식에 대한 모든 책임이 부모 몫으로 돌아온다.

자, 상상해 보자. 10년 뒤 에너지 넘치는 20대 아들이 나와 함께 집에만 있는다고. 누가 먼저 미칠까? 아들과 나 우리 둘 중에서. 그래서 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낮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것도 지역 안에서. 그 프로그램은 학습을 위한 것이든, 취미를 위한 것이든, 직업을 위한 것이든, 사회성을 위한 것이든 당사자 욕구와 필요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성인 발달장애인이 자신들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쏟아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성인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 아들 같은 어린이도 하교 후 치료실을 가지 않고 지역 사회 안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든지 활용하리라. 이것이 주간활동 서비스다. 이를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새로운 예산을 대규모로 편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발달장애인법 안에 주간활동 서비스를 위한 근거가 마련돼 있고, 3년째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지역도 있으며, 우리 아들이 사용하는 활동보조인 활용 서비스를 살짝 응용하면 지원 인력 양성과 관리에도 그리 큰 부담이 없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를 지닌 게 두 번째 정책 과제인 ‘노동권 보장’이다. 앞서 말했듯 발달장애인의 실업률은 처참한 실정이다. 발달장애인이라 해서 아무것도 못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주길 정중히 부탁드린다. 우리들 모두가 잘 하는 게 다르고 업무적 역량에 차이가 있듯이 발달장애인도 개인별 특성이 천차만별이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장애가 없는 우리들도 취업난~ 취업난~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사실 마음을 먹으면 취업을 할 데는 많이 있다. 다만 월급이 적어서, 일이 힘든 것 같아서, 사장의 인상이 안 좋아서 등등의 이유로 스스로가 취업활동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발달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할 데가 있어야 하지. 뽑아주는 데가 있어야 지원 원서라도 넣어 보지. 나라에서 기업체에 할당한 의무 고용률은 10%도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터무니없이 약하다. 그러니 기업체 의무 고용률이 지켜지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공공일자리를 늘리는 작업도 함께 해달라는 게 두 번째 정책과제의 핵심이다. 그리고 사회적 공공일자리 유형에는 장애인 민원 안내사, 장애인 인권옹호 활동가,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가, 장애인 동료상담가 등 당사자가 장애를 지녔기에 더욱 멋지게 해낼 수 있는 많은 일들이 포함돼 있다. 주민센터에서 하루 세 시간씩, 성인이 된 우리 아들이 민원을 넣으러 온 노인들의 ‘안내’를 돕는다고 생각해 보라. 비록 말을 야무지게 하지는 못하지만 어설픈 듯하면서도 성의를 다하는 그 모습에 민원을 넣으러 온 사람들도, 주민센터 공무원들도, 무료한 듯 앉아 있던 공익도 얼굴에 미소가 살포시 지어지지 않을까?

세 번째 정책 과제는 주거권 보장이다. 이 부분에 대한 오해도 상당한 듯 하다. 발달장애인에게 공짜로 집을 주라는 얘기처럼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아이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라에서 장애인 자식 잘 돌보라고 집이라도 덜컥 준다면 “감사합니다~”하며 덥석 받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염치없는 부모들이 아니다.

아들은 내가 죽기 전까진 어떤 식으로든 내 보호 아래 잘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지금 현 상태가 미래까지 그대로 지속된다고 가정을 하면, 아마도 내 사후에 아들은 장애인 시설에 입소하게 될 확률이 가장 높다. 시설이라... 물론 좋은 시설도 많이 있겠지만 엄마 마음에서는 결코 보내고 싶지 않은 게 장애인 시설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아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동네 안에서 그대로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항상 가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함께 늙어가는 동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매일 가는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죽어서야 시설 밖으로 나가는 삶을 살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아들이 살아갈 집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물량의 일정 비율을 발달장애인에게 우선 지원해서 자립하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이 살았던 지역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주거확보에 필요한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여기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 인력의 양성을 통해 비장애인의 일자리도 늘리고 말이다.

8개 정책 과제 중 가장 핵심인 3개만을 다뤘는데도 벌써 나에게 할당된 페이지가 한참을 넘어가 버렸다. 이를 어쩔꼬. 나머지는 속성으로 언급하고 가자면 ▲발달장애인의 소득보장을 위한 부양의무제 사실상 폐지와 장애연금 대상 확대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지원 강화를 위한 보조인력 추가 배치와 가정 내 배리어프리 환경 조성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옹호 활동 지원을 위한 자기주도적 서비스 및 의사소통 지원 체계 구축 ▲가족지원 확대를 위한 부모 심리상담 지원과 양육지원 사업 ▲발달장애인 법적 능력 보장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마련 등이 있다.

자, 이것이 바로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면서 요구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다.

“내가 장애인 자식을 낳았으니 나라에서 책임져라!”

“발달장애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부모인 나를 대신해 나라에서 책임지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라!”. 이런 떼쓰기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연하게 교육받고, 취업하고,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듯이 발달장애를 가졌어도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당연하게 교육받고, 취업하고,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과 법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앞으로 그 누가 발달장애인 자식을 낳더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더 이상 늙은 부모들이 성인이 된 장애인 자식과 동반자살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달라는 부탁인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예산 확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가? 우리나라의 1년 예산 중 장애인 복지에 쓰이는 예산이 전체 예산의 0.2%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게다가 그마저도 현 정부 들어 '발달장애 관련 예산은' 더 줄었다는 사실? 알고들 있는가? 이는 OECD 가입 국가들 중 최저에 해당하는 수치다. OECD 가입 국가들의 장애인 복지 평균 예산액은 전체 예산액의 2%다. 우리나라는 10분의 1수준인 0.1~0.2%다. 아. 다행히 꼴찌는 아니다. 우리나라 밑에 한 나라가 더 있다. 바로 멕시코다. 그렇다고 멕시코를 이겼다며 춤이라도 추어야 할까?

대한민국 4대강이 녹차라떼로 변하는 데 들어간 예산이 장애인 복지로 쓰였다면 어땠을까? 툭하면 갈아엎는 멀쩡한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예산을 장애인 복지에 돌린다면? 정책 하나 안 만들고 개인의 정치질에만 골몰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세비를 이쪽으로 압수한다면?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많은 예산이 쓸데없는 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복지가 지금 이 지경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나라에서 발달장애인 정책을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제대로 된 복지와 시스템을 갖춰달라는 요구. 그것을 약속해달라는 외침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다. ‘국가 책임’이라는 말의 뉘앙스만 듣고 발끈해서 반대할 게 아니라 그 안의 내용을, 사정을, 세세히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다. 왜 부모들이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지금 5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못 들어가고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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