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겼어요.
친구가 생겼어요.
2018.05.02 17:33 by 류승연

 

아들에게 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여자 친구다. 일반학교를 다닐 땐 늘 친구관계를 어찌 맺어줘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작년, 특수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관계란 것이 형성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로서 마냥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구의 이름은 은지(가명).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예쁜 아가씨다. 그런데 흐뭇하게 지켜보는 나와는 달리 실제 이들의 관계는 라이벌 내지는 적에 가깝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린다.

사회성이 뛰어난 다운증후군 아이답게 은지는 평소 친구에 관심이 많다. 아들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키도 작은 여자아이가 자꾸 주변에서 서성이며 건드리니 신경이 쓰인다.

일반 아이들 같으면 점잖게 말로 요구사항을 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한테 적절한 중재를 요청했을 텐데 아직 언어가 서툰 이 아이들은 말보다 빠른 몸으로, 자신의 의사를 먼저 전해 버린다. 둘이 엉켜 붙어 한바탕 난리가 나고 그런 날은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이 온다.

그렇게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은지와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둘 사이는 라이벌에 가깝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서로가 신경 쓰인다.

은지가 화장실을 가는 길에 아들이 바로 옆을 지나면 은지가 아들을 툭 하고 건드린다. 아들도 질 수는 없지. 교실에서 은지가 곁을 지나갈 때 잽싸게 건드린다.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로를 라이벌처럼 의식하고 지금이 기회다 싶을 때 한번씩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 얘기를 선생님에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이 터졌다. 기뻐서였다. 친구와 싸운 얘기를 들었는데 왜 기쁘냐고? 그렇게 큰 싸움이 아니고 한 번씩 오고가는 투닥거림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친구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했기 때문에, 나는 웃음이 났다.

 

상호작용이라는 건 꼭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상대와 부정적인 감정이 오가는 것 역시 상호작용이다. 또래와 그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도 하지 않던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이나마 서로 교류할 친구란 게 생겼다. 함께 투닥거리다 둘이 똑같이 혼나기도 한다. 아들이 이런 경험을 학교에서 하고 있다는 게 나는 너무나 좋다.

일반 학교에서는 자주 경험하지 못할 일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장애가 있는 ‘불쌍한’ 친구를 잘 챙겨주고 도와주려 한다. ‘불쌍한’ 친구가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이 발생해도 그냥 참고 넘기곤 한다. 선생님이 그랬기 때문이다. 누구는 도와줘야 하는 친구라고. 그러니 화나는 일이 있어도 장애가 없는 자신들이 참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이번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잘 배우지 못한다. 상호작용이라는 게 항상 좋은 것만 말하는 건 아닌데, 내가 남을 귀찮게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나도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하는데, 그런 걸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

전에 안산에 있는 자조모임 ‘꿈꾸는 느림보’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사무실이 있어 장애 아이들이 마음 편히 갈 곳이 있어 좋다고.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안에서 아이들끼리 부딪히며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열심히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친구를 건드렸다. 학교에서는 자신을 건드린 친구가 ‘불쌍한’ 장애인 친구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비장애 아이들이 화가 나도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사무실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봐주는 게 어디 있어. “왜 방해해!”. 곧바로 부정적인 피드백이 날아온다. 배려 받는 환경에서만 생활해 온 장애 아이는 당황하지만 그러면서 배워 나간다. 사람들끼리 감정이 섞여 오고가는 ‘진짜 사회생활’을 배워 나간다.

그런 일을 아들이 겪고 있는 것이다.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들이 특수학교로 전학을 와서 친구관계란 게 형성되는 걸 보고 나는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통합교육이 대세인 현실이지만 ‘친구 관계’를 생각했을 땐 무조건적인 통합만을 외칠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지와의 일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작년 말에는 하교 시간이 되자 아들이 친구의 신발주머니를 들어 친구 손에 건네주더란다. 일반 학교에선 늘 다른 친구들의 도움만 받던 아이였는데, 특수학교에 와서 똑같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끼리 생활을 하게 되자 자신도 자연스럽게 남을 돕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해서 또래끼리의 상호작용을 길러주자고 특수학교에서 장애 아이들끼리만 생활을 하면 이번에는 또 진정한 ‘진짜 사회’를 배울 수가 없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럼 어째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장애 아이들이 일반학교에서, 일반 사회에서, 지금 내 아들이 배우고 있는 것 같은 친구들 간의 상호작용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일반학교의 교사들 먼저 제대로 된 장애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가 ‘같은 학급’이라는 ‘한 사회’ 안에서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엔 딸 학급의 반 모임이 있었다. 동네의 키즈카페를 통째로 대관해 엄마들과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 놀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데 딸이 전에는 안 하던 행동을 한다.

자꾸 아들의 팔을 잡고 트럼플린장 안에서 아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이상하다.

“왜 자꾸 동환이를 끌어내? 트럼플린 하고 놀게 놔 둬”라고 하자 딸이 말한다.

“안 돼. 친구가 자꾸 신경 쓰인대. 내보내래”

아이들이 모여 뭔가의 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중간에 왔다갔다하니 예민한 친구가 그 모습을 두고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급기야 딸더러 네 동생 좀 여기서 나가게 하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트럼플린장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이리 전부 모여 봐”. 나는 크게 박수를 치면서 놀고 있던 반 아이들을 전부 모았다.

아이들이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자 아들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아이는 너희들과 똑같은 10살인데 아직 말도 못하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태어날 때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머릿속에 피가 났다고. 그 일 때문에 평생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 살게 됐다고.

너희들은 열 살이 되면 열 살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아이는 몸은 열 살이 됐어도 열 살처럼 생각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많이 지나야 한다고. 그러니 이 아이가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트럼플린장을 중간에 가로지르거나 해도 그런 건 이해하고 함께 해 달라고.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어떻게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냐며 궁금해한다. 다 같이 아들을 이해하고 트럼플린장 안에서 함께 놀겠다고 입을 모은다. 오케이. 나는 딸 친구들을 상대로 한바탕 장애이해교육을 늘어놓은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들에겐 사후 보고를 했다. “제가 지금 아이들한테 장애이해교육 좀 하고 왔어요”라고. 뭐라고 할 엄마는 아무도 없다. 다들 잘했다고 한다.

 

딸 친구들 모임은 지난 금요일에 있었다. 4월 27일이다. 이 아이들은 4월 20일에 학교에서 장애이해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발달장애에 대해 알지 못했다. 왜냐면 장애인의 날인 20일에 학교에선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등 신체 장애인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으로 장애이해교육을 마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장애 아이가 일반 학교를 다녀봤자 학급 안에서 친구들과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하기가 어렵다. 발달장애인에 대해 뭘 알아야 그들을 대하는 법을 알고, 그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법도 배우지.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말로만 부르짖는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일반 학교의 교사들 먼저, 아니 교장선생님 먼저 제대로 된 장애이해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배울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법을. 굳이 특수학교에 가서만이 아니라 일반학교에서도 장애의 경계가 없이 서로가 자연스럽게 상호소통 하는 법을.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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