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선거 정국을 뜨겁게 달구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아시는가. 알기 전엔 다소 황당하지만 알고 나면 더욱 당황스러워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을 게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프로젝트를 획책한 주동자, 영등포 구의원 ‘라’ 선거구에 출마한 김종현 후보와 함께 내 인생의 2시간을 속절없이 낭비했다. 아참, 무소속이다.
촛불을 들었던, 삐딱하게 평범한 사내
김 후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의 건실한 청년이‘었’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원하던 회사에 입사해 2년가량 일했다. 갑자기 사업이 하고 싶어 4년 동안 신나게 일을 벌여본 뒤(본인 말로는 망한 건 아니라 함) 1년은 백수로 지내다 현재는 서울의 모 여대 앞에 터를 잡고 책방을 운영 중이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구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뭘까. 정치적 계기와 결정은 정치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뤄진다고 했던가. 2016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 나갔던 그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정권이 시민의 힘에 의해 끌어내려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리고 기대 속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대다수의 이들이 성취감에 만족하고 있을 때,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갈급함을 느꼈다.
“의무감에 촛불을 들었는데, 정말로 정권이 바뀌었어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서 그치지 말고 정치를 직접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지금까진 밥상에서 주어진 메뉴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 보는 거죠.”
그렇게 생각이 선 그는 곧바로 ‘작당모의’에 착수했다. 피선거권을 비롯한 선거 전반을 학습했고, 그 과정에서 동지들을 규합했다. 이들과 함께 올해 지방선거에서 가장 기초 단계의 선출직인 구의원에 도전해보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지금까지 그를 포함해 6명이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특정 이념이나 정책 아래 모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원 무소속 출마다.
명함과 트럭, 그리고 돈 잔치
일견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작은 심각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통상적으로 지방선거에는 1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입후보하고 4000명에 가까운 당선자가 배출된다. 총 선거비용은 조 단위다. 구의원만 해도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평균 4000만원 정도를 사용한다. 문제는 선거비용을 보전하는 현행 선거법이다.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용의 전액을, 10~15% 득표의 경우 50%를 돌려받는 제도다. 당연히 국고에서 나간다.
“선거 기간에 쓰이는 돈, 그게 모두 다 우리 세금이라고 생각하면...”
김 후보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선거는 결국 ‘돈 잔치’다. 선거비용을 과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말도 되지 않는 공약이 횡행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이미 심각하게 고착화된 현실이다. 선거 기간이 되면 우리는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난생 처음 접하는 후보로부터 명함과 함께 인사를 받는다(그리고 대부분 길에 버려진다). 지나가는 트럭의 확성기에서는 트로트를 개사한, 요상하고 시끄러운 음악이 지치지도 않고 흘러나온다.
“출근길에서 받는 명함 하나로 과연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을 하지 않고도 당선되는 사례가 많아져야 ‘아, 이런 방식은 효과가 없는 거구나’라는 의식이 생기고 선거운동 문화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X), 초대하는(O) 선거운동
그렇다면 그가 내세우는 대안은 무엇일까. 기다렸다는 듯 그의 머릿속에 대기하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우선 그는 명함, 맞춤옷, 사무소 등 기존의 ‘선거 필수품’은 모두 포기했다. 대신 ‘전국민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온라인 선거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선거사무소를 자택으로 등록하고 매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자신을 알릴 계획이다. 이름 하여 ‘방구석 필리버스터’.
그럼 온라인 소통이 전부냐고? 아니다. 유권자들과 오프라인으로 부단히 만날 계획도 다 마련돼 있다. 예상했겠지만 길거리에서 무작정 들이대는 방식은 아니다. 자신의 일정을 시간대로 세세히 공지한 뒤 이를 보고 찾아오는 유권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정치인은 왜 항상 선거 때만 ‘낮은 자세’ 운운할까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어느 술집에서 맥주를 마실 예정이니 누구든 와서 지역 현안을 이야기하든 욕을 하든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시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경로당 찾아가고 교회가서 예배 보고 이런 건 못 하겠죠. 상관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그를 위한다는 이들까지 그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꽤 있으리라. “그렇게 해서 당선이 되겠어?” 여기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하다.
“그럼 띠 두르고 나가서 명함 돌리면 당선이 되는 겁니까?”
이쯤 되면 공약이 궁금해진다. 정말로 이 신박한 선거운동이 먹혀들어 구의원에 당선이 된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정말 당선이 된다면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차별금지조례입니다. 타고난 성별, 성적 지향, 계층, 수준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강한 벌금을 때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번 선거는 처음이라
이렇듯 포부로 가득한 그로서도 아쉬운 부분은 분명 있다. 프로젝트가 구상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착수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선거까지 6개월가량 남겨두고 시작한 셈인데, 1년 전에만 시작했어도 훨씬 더 파급력 있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다.
여기에 또 추가하자면 주변인들의 반응. 처음부터 의구심을 보이는 이들의 반응이야 익히 예상했던 터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의의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이들조차도 막상 선거가 시작되니 말이 달라졌다.
“‘그래도 명함은, 그래도 현수막은 있어야지.’ 그들에게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잘못된 선거운동 문화가 바뀌길 원하는 이들도 결국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더군요. 저는 제 방식으로 할 생각인데 자꾸 이상한 사람이 돼 가는 것만 같아 괴로웠습니다. 그런 인식 자체가 기존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심드렁한 청년 하나가 구의원 선거에 도전장 한 번 낸 것으로 한국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 사실, 회의적이다. 오히려 기존의 정치, 그리고 선거운동 문화가 그 체제성을 증명하는 또 한 번의 사례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서는 변화든 진화든 퇴화든, 어떤 엔딩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드라마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