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중력을 가진 무중력 상영장(전편)
독립영화라는 우주에서
취향이라는 중력을 가진 무중력 상영장(전편)
2018.03.16 17:36 by 송희원

“독립영화, 입문해보고 싶은데 마땅한 통로가 없네요. 독립영화 보는 모임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 서울 동작구 김지혜씨가

영화 <패터슨>(짐 자무쉬 감독, 2016)에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별다를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영감을 받아 시를 쓴다. 어느 날 패터슨은 노동과 휴식 사이, 일상의 틈새에서 이런 시구 하나를 길어 올린다.

“어린아이 때는 세 가지 차원을 배운다. 높이와 넓이, 깊이. (중략) 좀 더 자라면 네 번째 차원이 있다고 듣는다. 시간. 흐음… 이런 말들도 한다. 5차원, 6차원, 7차원이 있다.”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라는 차원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 알게 되는 다른 한 차원. 바로 외로움이다. ‘혼밥’, ‘혼술’, ‘혼영(혼자 영화 보기)’ 등 나홀로 문화가 발달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이런 외로움의 차원이 한층 더 강고해지는 것 같다.

<패터슨>(짐 자무쉬 감독, 2016) 포스터(좌).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점심시간 자신의 노트에 시를 쓰고 있다.

지난 주말 혼자라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함영(함께 영화 보기)’, ‘함술(함께 술 마시기)’을 하는 ‘무중력 상영장’을 찾았다. 무중력 상영장은 친구 셋이 모여 자신들이 좋아하는 공간과 독립영화를 조합해 상영회를 열고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독립영화·공간·사람이라는 무한한 차원의 우주 속을 부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차원의 권태로운 일상도, 4차원 외로움의 시간도 흩어지게 만드는 무중력 상영장만의 매력을 소개한다.

 

| 태초에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가 있었다

“무중력 상영장의 목표는? 운영진 모두의 연애입니다.”

무중력 상영장은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셋, 성진영(33·싱어송라이터), 장종호(29·조경관리사), 송윤희(직장인)이 꾸려가는 독립영화 소규모 상영 모임이다. ‘연애’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독립영화를 널리 알리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독립영화 상영회를 시작하게 되었죠. 독립영화는 상영할 곳이 많이 없는데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일도 멋진 것 같고요.”(장종호씨)

“독립영화, 특히 단편영화는 영화제나 소규모 기획 상영회 외에는 만나 보기 어려워요. 워낙 예전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제가 직접 상영회를 기획해서 보고 싶은 작품을 틀면 좋겠다 싶었죠.”(성진영씨)

좋아하는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공간에서 함께 모여서 보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들.

(양쪽사진 모두 왼쪽부터)무중력 상영장 운영진 성진영·송윤희·장종호씨.

무중력 상영장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대학생일 때 한창 창업 붐이었거든요. 그때 창업지원사업 공모에 ‘문화+푸드트럭’을 기획해 신청했죠. 트럭으로 전국을 다니며 한 편에는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다른 한 편에선 요깃거리를 파는 거예요. 제가 좀 하고 싶은 게 많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죠.(웃음) 결국 창업지원 사업에 선정돼서 고가의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얻어냈고, 그걸 가지고 알던 책방 사장님께 공간을 빌려 처음 상영회를 시작했어요.”(장종호씨)

무중력 상영장 로고

무중력 상영장이라는 이름도 장씨의 작품이다. 우주공간을 떠돌 듯 정해진 공간 없이 돌아다니며 상영하는 모습을 표현한 이름이라고. 장씨는 “중력이 현실이라고 하면 무중력은 현실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라며 “경계를 넘어 무언가에 순응하지 않는 느낌이 독립영화와도 잘 어울렸다”고 설명했다.

멋들어진 이름과는 달리, 초반 활약은 미비했다. 거의 2년 동안 상영회는 드문드문 열렸다. 혼자선 여러 가지가 힘에 부쳤다. 지난해 1월, 성진영씨와 송윤희씨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펼쳐졌다.

“영화제에서 종호를 우연히 만나. SNS를 팔로잉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함께 할 무중력지기를 모은다’길래 냉큼 하겠다고 했죠.”(송윤희씨)

“저도 SNS글을 보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댓글을 남겼죠.”(성진영씨)

자신을 “하늘, 바람, 나무, 술, 영화 그리고 사람 덕후”라고 소개한 송씨와 “늦잠 자는 것과 맥주 좋아하는 잉여인간”이라고 일컫는 성씨는 그렇게 한 팀이 됐다. 셋은 지난 1년 동안 무중력 상영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공간을 부유하며 장·단편 독립영화를 상영해왔다. 그렇게 열린 상영회가 총 25회에 달한다.(매달 둘째, 넷째 주말)

을지로의 작은 카페 ‘작은물’에서 열린 24번째 상영회 포스터

 

| ‘어디선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무중력 상영장입니다

상영회가 한 번 열리기까지 크게 2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영화 선정. 상영회에서 선정하는 독립영화는 대개 세 부류다. 무중력지기들이 영화제에서 재미있게 봤거나,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흥미가 생겼거나, 영화광인 지인들의 추천을 받은 작품들.

영화가 결정되면 그다음으로 영화 배급사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한다. 배급사마다 ‘공동체 상영’이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평균 열댓 명의 관객들이 찾을 정도로 소규모인 무중력 상영장은 배급사에 여건을 설명하고 상영료를 협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공동체 상영이란?

독립영화가 가진 열악한 배급환경을 극복하고,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영화관람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인 상영·관람방식이다. 극장이 없는 지역과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특정 무리나 공동체에 평소 만나기 힘든 독립영화나 다양성영화를 제공한다.

(출처: 모두를위한극장, 시네마달)

두 번째, 영화를 배급받은 뒤에는 공간 섭외를 한다. 무중력 상영장에겐 어디든 극장이 될 수 있다. 각자 가보았거나 가보고 싶었던 공간을 섭외하는데, 음악 활동을 하며 특색 있는 공간을 많이 다니는 성진영씨가 주로 추천한다.

이제까지 상영회가 열렸던 공간은 서울 등지의 소위 ‘힙한’ 카페, 독립서점, 북펍이다. 서대문구 신촌 쉬바펍과 모조레코즈, 마포구 염리동 퇴근길책한잔, 영등포구 문래동 라이드앤타이드, 중구 을지로 작은물, 합정동 손과얼굴, 서울혁신파크의 이동식 리어카집 등이 상영회가 열렸던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사장님께 저희 취지를 말씀드리고 공간을 섭외해요. 비영리활동이다 보니 대부분 지인을 통해 무료로 대관했어요. 상영회 동안 공간 수익을 최대한 창출할 수 있도록 음료 판매를 돕고요. 하지만 올해부터는 대관료를 소정이라도 지불하자고 정했어요. 배급사와 공간 모두에게 적정선의 비용을 내는 방식으로요.”(장종호씨)

(상단 왼쪽부터) 무중력 상영장이 열렸던, 쉬바펍/모조레코즈/퇴근길책한잔/작은물/손과얼굴/리어카집.

무중력지기들이 독립영화와 공간을 이은 뒤 SNS에 홍보하면, 관객들이 찾아온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실로 다양하다. 영화전공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솔로부터 커플까지, 독립영화 마니아부터 입문자까지 말이다.

쉽게 볼 수 없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다보니 먼 걸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힙한’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게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넓지 않은 공간에서 하는 소규모 상영회라 사람과 사람 거리가 매우 가깝죠.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요.”(성진영씨)

 

/사진: 무중력 상영장 제공

 

#후편에서 상영회보다 더 ‘실한’ 뒤풀이 이야기, 그리고 무중력지기들이 추천하는 독립영화가 소개됩니다.

 

※<TF_독립영화>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꾸려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거나 제보할 것이 있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메일(ssong@thefirstmedia.net)로 보내주세요:)   

 

필자소개
송희원

목표 없는 길을, 길 없는 목표에 대한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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