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탄 야옹이, 귀성길은 고되냥?
KTX를 탄 야옹이, 귀성길은 고되냥?
2018.02.23 17:47 by 최현빈

그동안의 귀성길은 참으로 편안했다. 그저 기차에서 푹 자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0.4살배기 고양이 ‘숲이’가 새 가족이 되었기 때문. ‘고양이는 멀리 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설인데, 마땅한 대안이 없어 부산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30분. 고양이와 함께한 설 귀성길 이야기.

 

| 연휴 전_ 설 연휴, 고양이를 어찌해야 할까

설 연휴 일주일 전, 집사의 가장 큰 고민은 고양이 ‘숲이’었다. 3박 4일의 연휴 동안 집에 놓고 가기도, 그렇다고 부산까지 데려가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수의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수의사는 잠시 고민한 뒤 “장거리 여행에 고양이를 데려가는 건 사람 중심적인 생각”이라며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급적 집에 두고 가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문제는 명절이라 딱히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충분한 밥과 물을 준 다음, 혼자 두고 가는 건 어떨까? 마침 2박 3일간 외부 출장이 있어 숲이를 집에 둘 일이 있었다. 답은 ‘NO’였다. 밥과 물은 알아서 잘 먹었지만 화장실이 문제였다. 제때 모래를 갈아 주지 않아 한쪽 구석을 새 화장실로 만들어버렸기 때문. 그나마 한 곳에서만 볼일을 본 게 다행이었다.

배설물보다 더 큰 문제는 숲이의 외로움이었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덜 탄다’고 하지만 이것도 개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집사를 본 숲이는 그야말로 경사였다. 종일 옆을 빙빙 돌며 머리를 비비고, 밤새도록 귀를 빠는 ‘쪽쪽이’를 할 정도였다(그 뒤로 숲이는 매 밤이면 집사의 귀를 빠는 버릇이 생겼다). 3박 4일, 어쩌면 4박 5일 동안 집을 비우는 상태에서 숲이를 집에 두는 건 무리였다.

숲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냥이’다

 

| 출발 준비_ 고양이와 함께 부산에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숲이와 함께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애묘인들의 관련 후기들을 찾아봤다. KTX에 함께 탑승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두 가지였다. 애완동물 이동장과 광견병 예방접종 확인증. 특히 예방접종 확인증은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다른 승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확인증을 받기 위해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다음으로 준비한 건 푹신한 담요와 배변 패드. 집사의 집부터 부모님의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도 4시간 30분. 이동하는 동안 숲이는 이동장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좁고 딱딱한 이동장 안에서의 시간이 편안할 리 없기에 푹신한 담요를 바닥에 깔아줬다. 담요 위에는 애완견용 배변패드를 두 장 깔아줬다. 애묘인들의 후기에 따르면 ‘고양이는 자신이 편안하다고 느낄 때만 배변 활동을 한다’고 했지만 기차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의 마약 간식이라 불리는 ‘츄O’ 2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숲이가 격하게 이동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이제 준비는 마쳤다. 남은 건 숲이의 반응이었다. 기차 안에서 너무 힘들어하면 다음 명절엔 돌봐줄 사람을 어떻게든 구해야지.

 

| 출발_ 생각보다 기차는 편하다냥~

지하철 1호선 석계역 출발 ▶ 서울역 ▶ KTX에서 2시간 40분 ▶ 부산역 ▶ 부모님 차를 타고 30분 ▶ 도착

귀성길 여정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서울역까지 가는 지하철에서의 약 40분. 정거장마다 새로운 승객들이 타 숲이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빈 자리가 있길 바라는 것이었다.

걱정됐던 지하철에서의 여정, 숲이는 다행히 얌전했다

다행히 지하철엔 빈자리가 있었다. 이동장을 무릎에 올려놓고 서울역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출발 전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었을까. 숲이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집 근처 병원에 갈 때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야옹’하고 울어댔는데. 지하철에선 옆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고, 편하게 눕기도 했다.

 KTX 안에서의 숲이. 물티슈를 베개 삼아 아예 누웠다

KTX에 탑승해서도 마찬가지. 지하철에서처럼 얌전히 누워 잠을 청했다. 지하철과 KTX에서 숲이는 승객들의 대스타였다. 어린아이들은 집사의 동물 이동장을 보자마자 안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해했고, 숲이를 본 뒤에는 ‘어머 고양이가 안에 있어!’라고 외치며 좋아했다. 어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숲이가 이동장 창 사이로 발을 한 번씩 뺄 때마다 ‘고양이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 집사가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은 ‘고양이 너무 예쁘게 생겼다’는 말. 집사가 평생 듣지 못할 말을 숲이가 대신 들어줬다. 부산까지의 여정은 생각보다 너무 편했다.

초보 집사’s Note_ 고양이가 갑자기 울 때는?

고양이의 ‘야옹’ 소리는 사람을 향한 울음소리다. 밥그릇이 비었거나 화장실을 치워달라는 등 사람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기차에서 얌전히 잠을 자던 숲이가 갑자기 ‘야옹’하며 울자 집사는 직감했다. ‘얘가 배변 활동을 했구나’. 아니나다를까 곧바로 이동장 안에서 시큼한 소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배변패드를 빼내 감싼 뒤 화장실로 달려갔다.

모래에 배변을 볼 수 있는 집과 달리 기차에선 배변 냄새가 정말 빠르게 퍼진다(고양이 소변 냄새는 정말 독하다). 이동장을 무릎에 올려두고 꾸벅꾸벅 졸다가도 ‘야옹’ 소리가 난다면 곧바로 이동장 안을 확인해 볼 것. 그렇지 않으면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 도착 30분 전_ ‘신의 한 수’ 고양이 마약간식 ‘츄O’

기차가 동대구를 지나 울산을 지날 때쯤, 얌전히 자던 숲이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잠든 뒤 세 시간쯤 지나서였다. ‘그래, 이제 일어날 때도 됐다.’ 집사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첫 단계는 머리를 이동장 창에 갖다 대는 행동. 머리를 바짝 붙이고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고, 살짝 밀어보기도 했다. 주변 승객들은 고양이의 얼굴이 가까이 보인다고 그저 좋아할 뿐이었다.

이동장 밖으로 나오려는 숲이. 기어이 머리를 내미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발이었다. 창밖으로 쭉 뻗었다. 집사가 하는 것처럼 이동장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이동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고양이 발. 발톱을 내밀지 않은 고양이 발은 둥그렇게 생긴 게 참 귀엽다. 이번에도 그저 주변 사람들만 신났다.

마지막으론 ‘야옹’ 소리를 내며 이동장 바닥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바닥의 배변 패드가 발톱에 뜯기기 시작했다. 울음소리 역시 자고 있는 다른 승객에겐 방해가 될 터였다. 기어이 숲이는 머리를 이동장 밖으로 내미는 데 성공했다(다행히 동대구역에서 옆자리 사람이 내렸다). 바깥 공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고양이를 얌전하게 만들거나 안정시켜주고 싶을 땐 ‘츄O’이 정답이다

집사의 선택은 고양이 마약간식 ‘츄O’. 집에 처음 들어온 날, 구석에 숨어 잔뜩 웅크려있던 숲이가 집사에게 다가오게 만든 마법의 간식이었다. 간식을 보여주자 숲이는 밖에 나오려는 동작을 멈추며 ‘끼야호!’하고 울었다. ‘끼야호!’는 간식을 주기 직전 신나서 내는 소리다. 맛있게 간식을 먹은 숲이는 잠시 몸단장을 한 뒤 이동장 안에 누웠다. 맛있는 것이 뱃속에 들어가 기분이 좋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기차는 무사히 부산역에 도착했다.

숲이의 새 화장실. 앞으로가 걱정이다

부산역 앞을 나오자 부모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부산의 가족들 역시 숲이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여동생은 직접 화장실을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숲이에겐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이 낯설기만 할 터. 집사의 명절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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