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 울릴 때 멍때리면 벌어지는 일
중국 국가 울릴 때 멍때리면 벌어지는 일
2018.01.30 18:22 by 제인린(Jane lin)

억압과 불평등에서 자유와 평등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진보를 가로막으려는 세력은 존재합니다.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의사를 허용하지 않는, 힘으로만 찍어 누르면 통제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 그럴수록 구성원들의 반발은 커지고 변혁의 시기만 앞당긴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 他们说,그들의 시선

최근 중국에서 ‘류강(刘康)’이란 이름을 가진 16살의 소년이 공안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홍콩 독립을 뜻하는 글자를 게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港独, 항독)

류 군은 지난달에도 같은 글자를 SNS에 게재했으며, 이에 공안국은 그의 평소 동태를 감찰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국영 신문사 ‘관찰자망’ 보도에 따르면 류 군은 ‘학생동원’이라는 학생회 조직에 몸담고 있으며, 이 조직은 중국의 대(對) 홍콩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다. 공안국에서는 교육계가 해당 조직을 즉각 제지하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감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를 대변하는 국영 언론의 시선에서는 류 군의 행위가 반정부적인 행위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류 군과 그가 소속된 조직의 행위는 누군가에게 심대한 피해를 끼치거나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16세 소년으로 구성된 모임에서 홍콩 독립을 외치는 의사 표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 정부가 오히려 더 위협스럽다.

 

| 她说, 그녀의 시선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구룡(九龍)역. 남부도시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가는 이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얼마 전 중국과 홍콩을 여행 중이었던 한국인 관광객 정모 씨는 구룡역에 당도했을 당시 느꼈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택시에서 인민폐(人民幣·중국 공식화폐)를 꺼내들었다가 낭패를 봐야 했다. ‘인민폐를 홍콩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가이드북에 따라 별 생각 없이 돈을 내밀었으나 택시기사는 홍콩달러를 요구한 것.

정씨는 “택시뿐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점에서도 인민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반드시 홍콩 달러로 환전해야 했다”고 했다. 실제로 구룡역 인근에서는 여러 곳의 환전소를 찾아볼 수 있다.

홍콩은 지난 1997년 영국의 반환으로 중국 영토로 편입됐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일국양제’ 시스템을 도입, 20년째 이어져 오는 중이다.

홍콩 독립이라는 표어를 든 남성의 모습. 해당 사진에 대해 중국 언론은 ‘독립 분자’라고 비판해 보도했다. (사진: 바이두)

화폐 뿐만 아니라 언어도 다르다.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话) 대신 광동성 일대에서 사용하는 광동어를 사용한다. 중국 정부는 보통화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20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광동성과 홍콩, 마카오를 아우르는 중국의 최남단 지역은 과거부터 중국 중앙정부와 다르게 발전해왔다. 특히 근대화 시기 서구 열강들이 이 지역 항구를 통해 들어왔고, 이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외모는 또 어떤가. 홍콩사람들의 외모는 중국의 약 90%에 해당하는 한족과 외관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등 북방계 민족의 특징을 가진 대륙 사람들과 달리 홍콩인들은 체형이 작고 왜소하다. 피부색 역시 하얀색이 대부분인 한족과 다르게 구릿빛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를 중국인보다는 홍콩인이라고 불리길 원한다. 피부색과 생김새, 언어와 문화가 명백히 다름에도 ‘국가’라는 미명 하에 중국인이 돼야 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범민주파(반공산당파) 의원들의 농성 모습. (사진: 위클리홍콩)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기조를 바탕으로 이들의 의사를 무시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류 군의 사례를 빌미로 법을 뜯어고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콩의 자치는 홍콩입법회가 담당하는데, 총 70석의 의석 중 친(親) 공산당 의원이 40석을 차지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가 강하단 뜻이다.

이들은 최근 ‘의사규칙(议事规则)’으로 불리는 사학법 개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세부조항이 총 49개에 달하는 법이다. 개정안에는 입법회 주석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 회의를 열어 각종 현안에 대해 의결할 수 있고 의결 정족수 역시 주석의 결정에 의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홍콩 소재 초중고교 내에서의 홍콩 독립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을 담은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 사학법이라는 명분하에 학생들의 집단 운동을 검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개정안이 통과된 과정은 더욱 석연찮았다. 본래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정무위 상정과 총회 의결, 최종 결선 투표에서의 과반수 표결 등의 3단계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개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22명의 범민주파 의원들이 결집했으나 홍콩입법회는 보안 요원과 공안 등을 대거 투입해 회의장과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이들을 강제로 체포·구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범민주파(반공산당파) 의원들의 농성 모습. (사진: 위클리홍콩)

이처럼 홍콩입법회에 친 공산당 계열이 득세하면서 중국 정부에 충성적인 행위를 표면화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초 홍콩기술대학교 측은 졸업식에 참여한 졸업생들 가운데 국가 연주 중 기립하지 않은 이들을 강제 퇴장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國歌)법’을 통해 국가가 재생되는 도중 국가 모욕 행위는 국가(國家)와 당을 모욕하는 것에 준하는 처벌(징역 3년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주의를 강제하는 ‘악법’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홍콩에 있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는 국가가 울려 퍼지는 시간 동안 기립하지 않은 학생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한 일부 학생들은 스스로 식장을 떠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라는 명분을 앞세워 힘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려는 중국 정부의 통제는 앞으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6세 소년이 올린 단어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의지를 짓밟는 정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고 대국이라 자칭하는 이들에게 어떤 권위가 세워질 수 있을까.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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