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목숨 거는 숫자 ‘20’의 비밀
정당이 목숨 거는 숫자 ‘20’의 비밀
2018.01.26 21:48 by 이창희

4년에 한 번 선출되는 국회의원은 총 300명입니다. 국회에는 의석수가 100명이 넘는 거대 정당이 있는가 하면 10명도 안 되는 군소정당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정책 결정이나 법안 처리가 표결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당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의석수에 비례합니다. 그렇다보니 주어지는 권한이나 자격 등에도 정당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이 바로 20석입니다. 왜 그럴까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준, 교섭단체

국회법 제33조 제1항은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섭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의논하고 절충함’으로, 교섭단체는 독자적 협상권을 가진 집단을 의미한다. 반대로 비(非)교섭단체의 경우 정당이더라도 협상 권한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1월26일 기준으로 현재 20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121석, 자유한국당 118석, 국민의당 39석, 바른정당 9석, 정의당 6석, 대한애국당 1석, 민중당 1석, 무소속 2석으로 구성돼 있다. 위 국회법 정의에 따르면 교섭단체는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이다.

그렇다면 20석 이상을 보유한 교섭단체에는 어떤 권한과 혜택이 있을까.

일단 정당 운영에 가장 중요한 국고보조금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한다. 만약 보조금 총액이 1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절반인 50억원을 교섭단체에 우선적으로 균등 지급한다. 비교섭단체는 남은 50억원에서 각각 5%씩 지급받게 된다. 여기서 또 남는 금액은 다시 절반으로 나눈 뒤 국회 의석수와 총선에서의 정당지지율에 비례해 지급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은 각각 16억6000만원을, 비교섭단체인 바른정당·정의당·대한애국당·민중당은 각각 2억5000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남은 금액을 의석수와 지지율에 따라 나누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보조금을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 33억3097만원, 자유한국당이 33억8867만원, 국민의당이 25억694만원을 받은 반면 바른정당과 정의당은 각각 6억482만원과 6억6877만원에 그쳤다.

교섭단체는 입법 활동을 위한 정책연구위원을 둘 수 있고 국고로부터 입법지원비를 지급받는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 국민의당 ‘국민정책연구원’ 등의 정책연구기관이 운영되는 기반이다.

국회에는 13개의 상임위원회가 있고 개별 의원들은 의무적으로 1개의 상임위에 소속돼 있다(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기획재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등이 바로 상임위다). 상임위는 위원장과 간사(부위원장),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협상 권한을 가진 간사는 교섭단체에서만 낼 수 있다.

이 간사들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대정부질문, 긴급현안질문 등 정기국회와 임시국회의 주요 일정을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상임위 내부에서 쟁점이 되는 법안을 논의할 때도 대부분 간사들 간 협상에서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교섭단체는 간사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반면 비교섭단체는 국회 운영에서 소외되는 셈이다.

언론의 대접 역시 다르다. 신문기사에서 ‘여야 3당 회동’, ‘4당 대표 회담’ 등을 접해본 적이 있을 거다. 언론에서 말하는 3당, 4당은 교섭단체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의장이 정당 대표들과 만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비교섭단체는 거의 초대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 ‘교섭단체’ 3당만 초대받았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지난해 12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 ‘교섭단체’ 3당만 초대받았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그래서 스무 명에 ‘목매는’ 그들

이러한 이유들로 ‘마의 20석’ 고지는 정당들의 존립이 달린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거의 사례들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중반이었던 2001년 초.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의원 3명이 느닷없이 탈당한 뒤 야당인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다. 본래 17석이던 자민련은 한순간에 20석이 돼 교섭단체로 격상됐다. 공동정부를 구성하려는 양당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고육지책. 이는 ‘의원 꿔주기’라는 엄청난 비판과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18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 2008년. 18석의 자유선진당과 2석의 창조한국당은 교섭단체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결성했다. 그러나 양당의 이념과 정책기조에서 공통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결국 1년 만에 해산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사진: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사진: 국민의당)

최근 사례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39석의 국민의당과 9석의 바른정당이 합당하면 48석이 된다. 외견상 교섭단체를 이루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합당을 둘러싸고 통합파와 반대파의 내부 갈등이 심각해 여러 변수가 잠복해 있는 상태다.

합당 반대파들은 이미 독자적 신당 창당 움직임에 착수했다. 이들의 수가 20명이 되지 못하면 비교섭단체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반면 29명을 넘을 경우 국민의당 통합파와 바른정당 조합이 비교섭단체로 전락하게 된다.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머릿수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별은 과연 정당한가

‘20인=교섭단체’ 기준은 효율적인 국회 운영을 이유로 생겨났다. 제헌국회부터 20인과 10인의 구성요건이 몇 차례 변동되다 1973년 2월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시절 개정된 국회법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은 군소정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들로 구성된 정당임에도 20명이 안 된다고 해서 국회 의사결정에서 소외와 차별을 겪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거대 정당이 항상 옳은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며, 이를 견제하거나 혹은 사회적 소수를 대변할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이들은 항변한다.

실제로 다른 국가들의 기준과 비교해도 한국의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까다롭다. 프랑스 하원은 총 의석수 577석 중 15석이 기준으로, 비율로 보면 2.6%다. 미국과 영국, 독일은 아예 기준이 없으며 그 외 국가들 역시 대체로 5%를 넘지 않는다. 반면 300석 중 20석을 요하는 한국은 6.6%다.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법안들은 수없이 쏟아졌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를 요구하는 이들의 힘이 애초부터 크지 못했던 데다 주도권을 쥔 거대 정당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서다.

45년을 이어온 공고한 구조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성요건 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 운영에서의 차별과 보조금의 과도한 차등 지급 등은 분명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회 운영과 보조금 지급은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뤄진다. 국민이 목소리를 높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또 있다.

필자소개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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