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연대성, 정의를 지니지 못한 자본주의에는 도덕이 없으며 따라서 미래도 없다.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 他们说, 그들의 시선
“자본주의 시장에 문을 개방하기 이전 중국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이제는 중국인 누구도 인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다만 인민폐(人民幣·중국의 화폐)를 위해 일할 뿐이다.”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 나도는 이야기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체제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학자들은 이를 ‘수정 자본주의’라 부른다.
특이한 점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서방 국가들의 자본주의보다 중국의 자본주의가 더욱 자본주의스럽다는 것.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 빼고는 돈이면 뭐든 가능한 곳이 중국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에서 대표적인 재벌의 사장 아들이 베이징 외곽의 도로에서 낸 음주 사고는 어느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피해자의 존재는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 她说, 그녀의 시선
“베이징 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오면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 여긴 그래도 아직 10위안(한화 약 1700원)이면 만두 한 판에 뜨거운 두유 한 잔까지 넉넉하게 마실 수 있으니 살 만한 곳이지. 믿을 수 없겠지만 한국도 20년 전 캠퍼스 풍경이 이와 같았어. 그때가 그립네.”
중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국인 A씨는 1년 전 베이징대 캠퍼스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당시 그가 목격했던 베이징대 내의 편의 시설은 프랜차이즈 전문점이 침범하기 전 한국 대학과 유사하다고 했다. 소상공인들이 옹기종기 모인 프랜차이즈 청정지역이라는 것.
맞는 말이었다. 필자가 3년간 지냈던 베이징대 캠퍼스에는 대학 외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커피 전문점,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대신 작고 허름하지만 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불과 지난해 9월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난해 가을학기 베이징대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줄지어 문을 열고 학생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 측은 학생회와 교수진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학내 소상공인들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동시에 건물을 모조리 헐어냈다.
결국, 대학 측이 직접 운영하는 중앙 학생식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소규모 식당과 상점들이 이 기간 동안 헐려 나갔다.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의 서적을 책임졌던 학내 서점 3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당 서점들은 매 학기 초반 학생들의 전공서적을 판매하는 곳으로, 캠퍼스 외부 소재 프랜차이즈 서점에 비해 30%나 저렴한 덕분에 인기가 높았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서점을 살리기 위해 재학생들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중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종의 ‘집단행동’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작은 서점들의 자리에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는 ‘신화서점’이 자리 잡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전의 캠퍼스보다 세련되고 깔끔해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다양한 분야의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입점해 있어 편리하게 원하는 물건과 먹거리를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곁은 지켰던 서점과 소규모 상점들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프랜차이즈 상점과 편의점, 식당의 존재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깊고 빠르게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사회의 흐름과 그에 발맞춘 대학 측의 얄밉도록 기민한 대응이 달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보다 세련되고 대형화된 서점은 더 이상 학생들을 위한 서적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캠퍼스 밖에서나 안에서나 전보다 더 비싼 가격에 밥을 먹게 됐다.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소상공인이 아닌 대기업의 금고로 흘러 들어가게 됐다.
수십 년간 터를 잡고 학생들을 위해 장사를 해온 소상공인들은 그렇게 캠퍼스 밖으로 내몰렸고, 우리가 그들을 잊은 사이 또 다른 어딘가를 찾아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떨치며 체제성을 증명하고 있는 자본주의. 그 안에서는 공간의 추억도 사람의 정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일까.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