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했을까?
그는 왜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했을까?
2017.11.24 15:59 by 최현빈

연말이면 등장하는 반가운 손님 ‘빨간 냄비’. 빨간 냄비 앞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추운 날씨에도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 누구보다 겨울이 추운 사람들. 매 겨울이면 ‘나눔’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글은 나눔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단어는 ‘나눔’이다(사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동훈(34∙서울 영등포구)씨도 그렇게 후원을 망설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씨는 4년 전 후원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계기는 금주(琴酒)였다. 매달 카드 명세서에 30만원씩 찍히는 술값. 아깝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한 국제구호단체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돈을 가치 있게 써 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먹고 죽자’는 생각으로 술을 마시면 돈을 버리는 느낌이었거든요.”

이씨는 그 길로 광고 속에서 봤던 몽골 아이에게 월 3만원씩 후원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몽골에서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자신이 후원한 아이의 편지였다. 보내준 돈으로 옷을 샀다는 이야기와 고맙다는 말이 실려 있었다. 작은 감사 편지에 불과했지만 울림이 남달랐다. 자신의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겐 유익하게 쓰인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잘 지내라는 내용의 간단한 답장을 썼다.

몽골과 과테말라에서 결연아동이 보내온 편지

시간이 지나며 편지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3살이었던 아이는 어느덧 7살이 되었다. 처음엔 감사하다는 말이 전부였지만 어느 날부턴가 자신의 일상을 적어 보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며 드는 생각,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생각, 꿈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아이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씨의 답장도 점점 길어졌다.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과목은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물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외국의 아이였지만 조카나 동생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씨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한 명의 아이를 도왔지만 점점 다른 나라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 아이들의 편지가 이씨의 집으로 날아든다. 이씨는 후원 외에도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했다. 긴 휴가나 연휴가 생기면 해외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카드 명세서에선 더 이상 술값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시작은 조금 어려웠죠.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작하고 나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주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으니까요.”

이동훈씨가 후원하는 인도네시아의 결연아동의 모습

지난 8월, 이씨에겐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몽골로 봉사를 떠나 후원하던 아이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한 느낌도 있었다. 이씨는 “펜팔친구가 아닌, 후원자 위치로 아이를 보려니 부담이 조금 생기더라”고 회상했다.

결국 불편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멀리서 아이가 달려왔다. 사진과 똑같은, 그 아이였다. 아이의 얼굴을 보자 이씨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자신만 후원자와 사례자라는 틀에 갇혀 있었단 느낌이 들었다.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동훈씨의 모습(사진: Good Neighbors 박찬학 작가)

이씨는 하루 동안 아이와 놀아주고, 도시의 쇼핑센터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끄러운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아이와 장난치며 편하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 마치 친형처럼요. 처음엔 필요 이상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요즘은 주변에 후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추천을 꼭 해줘요.”

지금도 이씨는 몽골의 아이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씨는 “자신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직 미혼이지만, 이씨의 웃음은 아빠였다.

 

| 처음 마음 그대로, 쭉 밀고 가는 것이 중요

얼마 전 어금니 아빠, 새희망씨앗 사건 같은 모금과 관련된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보낸 후원금을 악용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기부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사실 이씨도 새희망씨앗 사건의 피해자다. 지금도 이씨의 통장에선 당시 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매달 빠져나간다.

분한 마음으로 모든 후원을 끊을 법도 하지만 이씨는 “분노보단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기부문화가 위축되면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후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우이웃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모은 기부금 대부분을 횡령한 새희망씨앗 사건(사진: JTBC)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나눔실태 및 인식현황(2016)’에 따르면 기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2.3%)' 다음 꼽은 것이 ‘기부를 요청하는 기관/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23.8%)였다. 기부단체를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이유로는 ‘기부금액의 투명한 운영’이 54.2%의 응답을 보였다.

이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씨가 매달 해외결연 아이들에게 후원하는 액수는 정확히 30만원. 이전엔 술값으로 나갔던 금액이다. 이씨는 “제가 감당하지 못할 기부는 안 한다”고 운을 뗀 뒤 “좋은 마음을 먹었으면 그 마음을 쭉 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망설이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후원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겐 이러한 사건들이 여전히 불안하지 않을까. 이씨에게 어떤 단체를 고르는 게 좋을지 물었다.

“처음 시작할 땐 사회가 감시하기 쉬운 큰 단체를 고르는 게 좋아요. 제가 굿네이버스와 함께 시작한 이유도 그래서죠. 주변에 후원을 오랫동안 해온 지인이 있다면 추천을 받는 것도 좋죠. 후원 방식이나 결연아동과의 소통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자신에게 맞는 단체를 고를 수 있거든요.”

처음 후원을 시작한 이야기를 할 땐 부끄러운 목소리로 “술값을 줄여보려고요”라 말했던 이씨. 인터뷰를 끝마칠 때 그의 목소리는 훨씬 당당했고, 웃음도 가득했다.

(사진: Good Neighbors 박찬학 작가)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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