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었다는 큰 아이
죽고 싶었다는 큰 아이
2017.05.31 10:56 by 시골교사

“엄마, 알아요? 나, 공부 때문에 죽고 싶었어요. 그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요.”

큰 아이가 어느 날 불쑥, 자기의 속마음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아이의 그 고백 앞에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불쌍했다. 그리고 또 미안했다.

(사진: shutterstock.com/ostill)

큰아이는 독일에서 4년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독일과 학제가 맞지 않아, 한 학기를 유예했다. 월반을 시킬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어휘력이 부족해 꿈도 꿀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1년 후에 시험을 쳐서 월반을 시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억지로 만든다는 것이 본인과 부모에게 무리인 듯했다. 어쨌든 큰아이는 자기가 또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사실을 내내 부끄러워했다.

독일에서는 독일 아이들에게 뒤처질까봐 내심 걱정이었고, 한국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는 늘 복잡했다. 그러다 보니 확 드러내놓고는 아니더라고 아이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 겁을 주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시험 전에는 시합을 앞두고 있는 코치처럼 긴장감을 조성하고, 좋은 결과 내지는 더 나아진 결과를 보이도록 강요했다. 그러면서도 밤늦게까지 학원 안보내고, 과외 안 시키는 것을 다행인줄 알라고, 다른 엄마들보다 덜 스트레스 주는 것이니 고맙게 여기라고 주입했다.

비록 과외와 학원은 안 가지만, 한 번도 호되게 경험하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엄마의 감시 앞에 아이는 주눅 들고 힘들었던 게다. 순하고 여린 성격에 엄마의 강요를 큰 반항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인 상처가 결국은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곪아 버렸다.

이러한 아이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머릿속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더랬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 적게 준 꽤 괜찮은 엄마로 인정받을 날이 올 거야.’, ‘사교육 없이도 잘 적응하는 아이의 모습을 자랑할 날도 오겠지.’ 

이런 밑그림은 아이의 한 마디 고백 앞에 산산이 찢어지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아이의 고백은 엄마인 나를 참 부끄럽게 했다. 낯선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깔끔한 답을 주지 못한 엄마에 불과했다. 결국 엄마만 믿고 따라오라고, 엄마가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독일에서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사진: shutterstock.com/kentoh)

“프라우 백((Frau Baeck), 한국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자살을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곳에 아이를 데려갈 건가요? 두 아이가 그곳에 가면 적응할 수 있겠어요?”

아이들을 예뻐하던 독일 할머니가 귀국 준비를 하는 나에게 걱정 어린 표정으로 심각하게 던진 질문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세계 1위, OECD 국가 중 학생 자살률 세계 1위! 이런 현실 앞에 두 아이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두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다. 먼저는 아이들이 성적에 비관하여 계속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그것에 대해 사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말이다.

2014년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린 울산의 한 학생이 수능 전날 방에서 목을 맸고, 창원의 한 여학생은 성적 비관으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2015년 한 여학생은 서울 명문대 수시 1차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능을 망쳤다고 자살을 선택했고,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날 한 남학생은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런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자살의 원인은 ‘체벌, 왕따, 친구관계, 성적’ 등이었다. 한 국회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2015년 8월까지 자살한 초·중·고교생 61명, 그중 14명은 성적불량이나 성적비관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성적 문제로 자살한 학생 숫자는 2010년 18명, 2011년 16명, 2012년 16명, 2013년 12명, 2014년 9명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15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렇게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례가 계속하여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며 가슴 아파하는지, 어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살원인 중, 성적비관에 국한에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안고 있는 사회적 스트레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지상주의, 입시몰입교육, 대학의 서열화 등이 학창시절 내내 긴장감을 조성한다. 입시실패는 곧 삶의 낙오자라는 공식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대학입학으로 인정받으려는 강박감과 불안감으로 학생들은 시달리고, 결국 이런 현실이 그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사진: shutterstock.com/Elnur)

이런 일련의 일을 놓고 2010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경쟁이 심한 교육, 그래서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학생들에게는 불행한 교육’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 교육은 교육의 본질에서도 벗어났고, 효율성도 떨어진 지 오래다.

우리나라가 늘 자랑하며 얘기하는 201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자.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수학 1~4위, 읽기 3~8위, 과학 5~8위로, 2000부터 2016년까지 읽기, 수학, 과학의 전 영역에서 줄곧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럼, 이 순위와 결과를 학습시간 대비 교육의 효율성으로 다시 표현해 보면 어떨까?

통계청이 발표한 ‘2014 생활시간조사-초·중·고 학생의 평균 학습시간’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교생의 1일 평균 학습시간은 초등학생 5시간 23분, 중학생 7시간 16분, 고등학생 8시간 28분으로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면 초등학생은 약 38시간, 중학생은 약 50시간, 고등학생은 약 60시간 공부한다. 이것은 OECD 평균 33~34시간에 비하면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일주일에 거의 60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서 학교와 학원 선생님이 준 수많은 정보들을 무감각하게 머릿속에 입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위의 학습시간과 대비하여 재해석한다면 교육의 효율성이 높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거기다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을 생각해 보자. 청소년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5시간을 채 못 채우고 있다. 이것은 학습시간 투자의 비효율성과 함께 학생들의 수면권조차 침해당하는 형국인 셈이다.

이런 속내를 숨긴 채, 학습시간이 긴 것을 대한민국의 뜨거운 교육열이라고, 또 미래사회를 이끌고 갈 경쟁력이라고 언제까지 자랑만 하고 있을 것인가? 경쟁과 불안의 논리 속에서 늘어나는 학습시간, 수면권과 행복권의 침해, 그리고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극단적인 방법의 선택 앞에 어른들이 이제는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의 그런 명분 앞에 그동안 말없이 고통받아온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제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사진: shutterstock.com/SanchaiRat)

독일 역시도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학교 성적으로 비관하여 자살한 예는 보지 못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자살하는 사례가 생긴다면, 이 문제를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더는 아이들의 자살을 단지 경쟁을 견뎌내지 못한 개인의 나약함으로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극단적인 분위기가 가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돌려서도 안 될 것이다.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 경쟁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한 개인에게, 한 가정에 책임을 넘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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