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두 번 울리는 도우미견 분양
시각장애인 두 번 울리는 도우미견 분양
시각장애인 두 번 울리는 도우미견 분양
2014.10.22 08:30 by 더퍼스트미디어
 

시각장애인과 함께 도우미견이 거리에 나가 훈련하고 있는 모습.


 

“왼쪽!” 박진우(가명•23) 씨가 목소리를 높이자, ‘나리’가 좁은 골목길을 힘차게 뛰어갔다. 나리는 시각장애 1급인 진우 씨의 도우미견. 진우 씨가 밖을 나설 때마다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다. 진우 씨가 도우미견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당시에는 지금은 은퇴한 ‘하비’와 짝을 이뤘었다. 학교에 갈 때마다 어머니의 차를 타야 했던 진우 씨는 도우미견 하비를 만나면서부터, 혼자 힘으로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케인(흰 지팡이)만 가지고 다닐 때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졌어요. 전에는 장애물을 감지 한 후 돌아가야 했는데, 도우미견은 알아서 피해 가거든요.” 덕분에 진우 씨는 더 자립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비가 은퇴하자, 새로 나리를 분양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 “도우미견이 케인보다 보행할 때 훨씬 유용해요.” 진우씨는 도우미견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얻는 것이 훨씬 많단다. “도우미견을 만나고 더 적극적으로 생활하게 됐어요. 도우미견은 눈이 안 보이는 제게 안경, 렌즈 같은 존재입니다.”

  | 또 하나의 가족인 도우미견, 시각장애인의 사회 복귀까지 돕는다  

사실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은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시각장애인의 건강한 사회 복귀를 돕는다.

“한 아버님이 배를 타다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게 됐어요. 이 일로 부인은 집을 나가고, 사남매를 돌봐야 하는 암울한 상황이었죠. 매일 술로 지새웠습니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날 지경이었는데, 따님이 도우미견 신청을 해서 분양을 했어요. 지금 이 분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전엔 10분 거리에 있는 슈퍼를 1시간을 더듬더듬 걸어서 담배나 술을 사서 집에 가는게 하루 일과였다면, 요즘엔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을 데리러 학교 앞까지 가신다고 해요. 도우미견 덕분에 산책하러 나가고, 바깥세상과의 접점을 하나둘씩 만드시더니,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안마사 교육까지 받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이이삭 훈련 팀장은 “특히 중도 시각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우울증•실망감에 사회와 등을 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도우미견이 이들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우미견은 단순히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도우미견 판단에 따라 주인을 안내한다. 갑자기 자동차가 다가오는 돌발 상황 발생 시 혼자서만 피해도 되는지, 아니면 주인과 함께 피해야 하는지 등의 대응 방향도 스스로 판단한다. 2년에 달하는 오랜 훈련의 성과다.

도우미견은 생후 50일 정도가 되면 일반가정에서 1년 정도 지내며 교육을 받는다. 퍼피워킹(Puppy Walking) 단계라고 부르는 이 과정에서는 도우미견이 다른 강아지들과는 달리 사료 외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사람의 손을 무는 것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에 정신이 팔려 주인에게 집중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람의 옆에서 따라다녀서도 안 된다. 주인을 앞에서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본 소양 교육을 마친 후에는 테스트를 거쳐 본격적으로 전문가들로부터 1년간 훈련을 받는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하고도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이 되는 건 10마리 중 1~2마리 정도다.

 

도우미견3


  | 도우미견 분양 받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 돈 없는 시각장애인은 두 번 운다  

하지만 모든 시각장애인이 도우미견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우미견과 거리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25만 3,095명(2013년 12월, 보건복지부). 이중 도우미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1-3급) 대상자는 약 5만여 명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장애인 도우미견 훈련기관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두 곳이며, 매년 도우미견 분양을 받는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은 10명(훈련 기관별 3~4명 수준) 전후다.

올해로 국내에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이 도입된 지 22년째, 지금까지 200명 내외 시각장애인만 지원을 받고 있다. 겨우 대상자의 0.4%다. 현장에서는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1992년 설립된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한 해에 약 3~4마리꼴로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을 무료로 분양해왔다. 이곳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는 달리, 기업후원 없이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매달 100만 원 꼴인 개인 후원과 보건복지부와 경기도로부터 받는 1억 7,500만 원이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예산 전부다. 시각장애인 도우미견 양성 비용이 1마리당 5,000만 원에서 1억까지 이르는 데 비해, 보조금이 터무니없다는 지적이다.

이이삭 팀장은 지금의 정부 보조금으로는 “기껏해야 도우미견 2~3마리밖에 키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금의 부족은 고스란히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양을 원하는 사람의 수보다 도우미견 숫자가 훨씬 더 적어서다. 올해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목표로 잡은 도우미견 분양 수는 4~5마리이지만, 현재 대기자 수는 10명 정도. 평균적으로 신청에서 분양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점자블록을 따라 거리를 걷는 시각장애인에게 도우미견은 든든한 동반자다.


그렇다면 도우미견 대기자 수가 10명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도우미견을 무료로 분양하지만, 분양 후에는 도우미견을 돌보는 비용은 시각장애인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시각장애인에게 도우미견 분양은 그 자체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도우미견 돌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분양은 어렵다는 것이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측 설명이다. 이 때문에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분양 여부를 결정할 때는 신청자의 장애의 종류, 기본 인적사항, 가정의 형태, 가족의 동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대형 견에 속하는 도우미견의 사료 값, 병원비 등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갖췄는지도 살핀다.

현재로써는 전동휠체어, 시력보조용 안경 등 장애인 보조기구와는 달리 도우미견 돌봄 비용과 관련해서는 정부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경제적 요건이 안내견 분양에서마저도 또 다른 굴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의 긍정적인 역할이 조명되면서 분양 지원의 필요성 또한 논의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2012년에는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도우미견 분양 보조금을 확대한 예산안(3억 원)을 올렸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에는 1억에서 9,000만 원으로 예산이 깎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미국 뉴욕 지하철 선로에 시각장애인이 떨어지자 도우미견이 뛰어들어 주인을 구한 사례가 인터넷 상에서 화제였다. 미국에선 시각장애인을 위해 매년 300여 마리의 도우미견이 훈련을 통해 길러지지만, 한국은 현재 10마리의 도우미견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도우미견 분양을 받고 싶다면? 1.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 홈페이지(www.helpdog.org) 접속 후 우측 상단의 ‘장애인 도우미견 분양신청’ 클릭. 이름, 나이, 장애 등급 등 간단한 인적사항과 기타 정보를 입력한 후 저장하면 신청 완료. 전화 접수(031-691-7782)도 가능. 도우미견 분양을 신청하면, 1차 서류 검토를 거친 후, 면접, 분양 교육, 무료 분양 순서로 진행됨. 필요시 현장 방문을 통하여 분양 여부를 결정하며 분양 교육 기간은 약 4주. 문의 이메일 : helpdog2@naver.com

2. 삼성화재안내견학교 : 20세 이상의 전맹 및 저시력 시각장애인이라면 전화(031-320-8922)로 신청. 단, 4주간 진행되는 안내견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안내견을 돌볼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성인이어야 함. 안내견학교 합숙 교육과 거주하는 곳에서의 이동 경로 위주로 각각 2주씩 총 4주의 교육 후 무상으로 위탁분양. 홈페이지 : http://mydog.samsung.com

 

(사진/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제공)

 



글/김민정
김민정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다음에는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현장의 메시지를 좀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정말로 열심히, 꼼꼼히 취재해 잉크 냄새보다 현장의 냄새가 더 진한 기사를 써보고 싶습니다. 이번 취재가 그때를 위한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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