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집 샀다. 결혼하자
오빠, 집 샀다. 결혼하자
오빠, 집 샀다. 결혼하자
2017.02.16 16:54 by 제인린(Jane lin)

신혼부부에게 ‘허니문하우스’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신혼부부 열 쌍 중 9쌍이 주택 마련을 위해 빚을 내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국토부 ‘2015 신혼부부 주거실태조사’)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사랑고백 대신, 내 집 인증으로 프러포즈를 한다는 중국의 사정을 들어볼까요?

(사진:Stock-Asso/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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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시선 

“나 집 샀어, 그러니까 이젠 결혼해줄 수 있지?”

최근 중국의 한 도로에 어떤 남성의 청혼 문구가 담긴 광고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남성은 오랜 기간 만나온 한 여성에게 ‘사랑한다.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 대신 최근 구매한 부동산 구매 확인증을 보이며 청혼을 했죠.

‘연애는 판타지, 결혼은 현실’이라는 뭇 사람들의 주장이 맞나봅니다. 어쩌면 일생에서 가장 로맨틱한 순간일 수도 있는 프러포즈조차 사랑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은 세태가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20대 청춘 남녀를 겨냥해 출간된 연애 필독서 속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결혼은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실이 반드시 ‘경제력’이란 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의 중대한 결정 요소를 ‘그것’이라 생각하는 세태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melis/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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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나 이미 집 샀어, 결혼해줘’라는 청혼 문구가 담긴 초대형 광고판의 모습. (사진: 웨이보(微博))

그 역시 프러포즈 초반은 우리가 아는 분위기와 비슷하게 끌고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에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풍선, 장미꽃 장식, 촛불까지 준비했죠. 많은 사람이 그들의 청혼을 구경하고 축하할 준비를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남성은 해당 여성의 손에 모두가 기대하던 청혼 반지를 끼워주는 대신, 자신의 통장과 방산증(房産證)이라 불리는 부동산 구입 및 등기 완료 확인증을 쥐여주며, ‘결혼하자’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의 결말이 ‘결혼’이었는지 또는 ‘거절’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이 같은 행태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는 사실입니다. 남성의 재력을 마냥 부러워했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행태가 비단 최근에 들어와 불거진 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배우자’라 일컬어지는 최소한의 기준이 상식처럼 만연해 있었죠. 이를테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50년대에는 ‘영웅’이라 칭해지는 혁명 세력을 선호했으며,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던 60년대에는 최소한의 먹거리가 보장되는 농민에게 시집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이후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군인, 80년대에는 대학을 나온 엘리트 집단, 개혁개방에 대한 요구가 거셌던 90년대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적 사다리를 탈 수 있는 당 간부 출신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을 최고라 여겼죠.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돈’이 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입니다. 시대가 바뀌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변화해왔던 것이죠.

(사진:웨이보(微博))

문제는 최근 결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자가 소유의 부동산’ 마련이 누구에게나 녹록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욱이 결혼적령기에 있는 20~30대 남성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자가 소유의 부동산을 마련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더욱이 최근 수년 사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1선 대도시 부동산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으며, 신혼부부를 위한 전용 주택을 일컫는 ‘훈팡주(婚房族)’의 경우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180만 위안(약 3억 원) 이상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실제로 현지 유력 언론 ‘제일경제일보(第一經濟日報)’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16년 2월~2017년 1월) 기준 2인 가구 신혼집 평균 가격은 690만 위안(약 12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지난 1년 동안 무려 180만 위안(약 4억 원) 오른 것이죠.

특히 신혼부부들 특성상 지어진 지 오래된 주택보단 바로 분양되는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한데, 이들 신혼부부를 겨냥해 지어진 주택의 경우 화려한 인테리어 비용이 추가되면서 일반 주택보다 최고 6% 이상 비싸게 팔려나가게 됩니다.

업체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지난 한 해 구입한 주택의 평균 가격은 500~1000만 위안(약 9~18억 원)이 38.4%로 가장 많았고, 1000만 위안 이상(약 18억 원)이 16.3%, 2000만 위안(약 36억 원) 이상이 1.7%를 차지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35세 이상의 비교적 늦은 결혼을 하는 부부는 5000만 위안(약 83억 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을 구입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죠.

실제로 현지 유명 부동산 업체 ‘마이티엔팡찬(麦田房产)’에 따르면, 같은 기간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큰 손으로 떠오른 이들 역시 26~36세 연령대의 신혼부부였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평수의 주택은 60~90평대였고요.

상황이 이쯤 되니, 집 때문에 빚을 지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도 많아집니다. 중국에선 예부터 ‘팡누(房奴, 주택 구매 시 지나친 담보대출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이들)’라 불렸는데, 지난 2000년대만 해도 초반 100만 위안대의 주택 담보 대출자를 가리키는 이들이, 최근엔 자연스레 500만 위안 이상의 대출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확대되는 분위기입니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큰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의 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이 같은 시기에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세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입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마치 사랑보다는 그(또는 그녀)가 가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결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좀 더 어른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 말이죠.

이즈음 되니, 필자는 한때 중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TV드라마 ‘뤄훈시대(裸婚時代, Naked Wedding)’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1년 중국에서 방영된 30부작 드라마. (사진: PPTV 캡쳐)

제목 ‘뤄훈시대’ 속의 ‘뤄훈(裸婚)’은 값비싼 보석과 부동산, 외제차도 필요 없는 ‘사랑 제일주의자’ 남녀가 결혼에까지 이르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류이양’은 청혼을 위해 예비 장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 졸업 후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애썼어요. 집과 차를 사서 자첸(여주인공)과 당당하게 결혼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아무리 죽도록 일해도 월급으론 뛰는 집값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저의 부모님은 노동자 출신이라 돈도 없고 조건도 형편없지만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고, 무엇보다 자첸을 친딸처럼 아껴주세요. 우리 집이 작고 초라해서 자첸이 함께 살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어머니 집에 들어와 살게요. 자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곳이 제 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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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뤄훈시대’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한 드라마 속 류이양(왼쪽)과 자첸의 모습. (사진:PPTV 캡쳐)

곧장 류이양은 여주인공 자첸 앞에서 다시 청혼합니다.

“나랑 결혼해줘. 네가 늙어도 지금처럼 여전히 업어주고 너의 지팡이가 되어줄게, 너의 이가 다 빠지면 내가 씹어서 먹여줄게, 난 네가 죽고 난 후에 죽을 거야. 너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면 너를 돌봐 줄 사람이 없잖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귀신이 되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할 거야.”

필자는 이 대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사랑고백이라면 남은 일생을 함께해도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죠. 최소한 부동산 구매 확인증을 보여주는 것보단 멋지다는 생각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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