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투리, 영하난 좋다난~”(이래서 좋다니까~)
“제주 사투리, 영하난 좋다난~”(이래서 좋다니까~)
2017.01.18 14:19 by 이도원

‘혼저옵서예’

자판기에서 ‘제주방언’을 ‘탁’ 누르면 ‘툭’하고 나오는 말.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에 알았던 유일한 제주도 말이기도 하다. 모두 알다시피 ‘어서오세요’란 뜻이다. 마치 일식집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랏샤이마세’와 같다.

대학 시절 남편과의 연애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주 사투리를 익혔다.

대학교 1학년 개강날 난 수시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내게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초록색 바지를 입고, 21세기에 살면서 잠자리 안경을 끼고, 도깨비 머리를 한 남자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그렇게 시작된 인연.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내 남편이다. 외모부터 말투까지 특이했다. 대부분 서울에서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제주도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받았다.

가장 튀었던 건 그 아이가 쓰는 어휘와 말투였다. 그의 제주 사투리는 순식간에 동기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그 당시 가장 유행했던 말은 “돌안? 미쳔?”(돌았어? 미쳤어?) 이었다. 아마 호기심에 가득 차 물어보는 동기들 사이에서 본인도 정신이 없었겠지 싶다.

그의 사투리는 문자에서도 숨겨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만난 지 9년째이고 내가 제주에 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만 그 때 당시에는 이게 무슨 글자들인가 싶었다.

“근데이~ 있네이~” (근데~ 있잖아~)
“영하난 좋다난~” (이래서 좋다니까~)

가끔 고향 친구들과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들을 때는 정말 ‘외계어’라 생각할 정도로 요상한 말들을 했다. 그 때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

“그런거 달마~” (그런거 같아.)
“겅하카부댄~” (그럴까봐서~)

그렇게 난 그의 매력보다 먼저, 제주도 말의 매력에 빠졌다. 급기야 서울에 적응하면서 점차 사투리를 안 쓰는 그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인지 지금 남편의 친구들은 내가 육지에서 온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002

하지만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제주 말을 대부분 이해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기까지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남편이 군대에 가있던 때에, 아버님께서는 나와 남편의 인연을 생각하시어 종종 전화를 하시기도 하셨다. 아마 아버님도 나름 육지 아이를 배려한다고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아버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듣고만 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곤 순간 정적이 흘렀는데, 본능적으로 내가 대답할 타이밍이란걸 눈치 챈 나는 무작정 말했다.

“네~”

그리고 당황한 아버님은 급히 서운해하시는 말투로 전화를 마무리 하셨다. 끊고 난 후에도 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님이 하신 말씀 중 무엇도 기억해내서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전히 그 날의 통화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지만, 추측컨대 “우리 아들 기다리기 힘들면, 좋은 사람 만나 봐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때 아버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내가 제주방언으로 인해 난항을 겪었던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제사’다. 어느 제사였던가. 당시 제사 준비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나와 할머니뿐이었다. 평소에 명절 때에도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님이나 남편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곤 했었는데, 나와 할머니 둘이서 제사 준비를 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저디 족은 사라 주라.”(저기 작은 접시 좀 줘.)

“.....”

“저디~ 족은 접시 주라.”

결국 할머니께서는 직접 접시를 꺼내셨다. 그렇게 몇 시간의 의사소통 난항을 겪은 후 어머님과 작은 어머님 등 도움의 손길이 등장하고 나서야, 제사준비는 무사히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제주도는 여자, 돌 그리고 바람이 많은 섬이다. 바람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사소통에도 특별한 점이 있다. 특히 배를 타는 어부, 물질을 하는 해녀들에게는 바람과 파도 속에서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소리가 크고 빠르다.

예전부터 남편에게 많이 들어왔었다. 물질하시는 분들은 말이 빠르다고.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해녀인 (남편의) 외숙모, 어부인 외삼촌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나름 제주방언에 대한 자신감이 오를 대로 오른 시기였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어부 외삼촌께서 한 말씀 하시면 모두가 까르르르 웃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난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영어듣기 평가를 했던 때가 떠오를 정도였다.

여전히 내겐 넘기 힘든 벽. 할머니, 할아버지, 해녀, 어부. 그렇지만 여러 번 만나고 대화를 듣다보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무리 제주 사투리에 익숙하다지만…(사진: Maxim Tupikov / shutterstock.com)

요즘 제주로 내려오는 육지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표준어를 접할 일이 많아지면서 제주 방언이 예전만큼 쓰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를 지켜내려는 움직임도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제주방언을 활용한 노래, 연극, 발표회를 하기도 한다. 지키는 것은 결국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몫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우리의 아이가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어도 제주 방언이 널리 쓰이길 ‘바램쪄~’(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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