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크에서의 마지막 여정
카르나크에서의 마지막 여정
2016.10.06 16:17 by 곽민수

카르나크 신전의 동-서축과 남-북축이 만나는 지점. 그러니까 제 3, 4 탑문 사이로 나 있는 람세스 9세가 단장한 '남쪽 문'을 지나 제 7 탑문을 향하다보면 ‘은닉처’ 혹은 '은닉의 마당'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 은닉처에서는 신성호수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탑문들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동-서축과 남-북축
은닉의 마당 위치

이곳에 ‘은닉의 마당’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1903년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조르지 레그랭(Georges Legrain)이 수천 점에 이르는 석상, 동상 그리고 목재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워낙 유물의 수가 많았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확인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현장에서 조사가 끝난 유물들은 곧바로 10량의 기차와 3척의 배에 실려 카이로의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때 발견된 유물들은 해외로 반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르지 레그랭 (Georges Legrain, 1865-1917)

이 엄청난 양의 유물들은 모두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거의 동시에 매장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유물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귀중한 물건들을 한꺼번에 땅에 매장하는 행위는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집트 역사에 걸쳐서 종종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유물 매장도 카르나크를 방문한 신앙이 깊은 이들이 특별한 봉헌의식을 통해서 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은닉의 마당' 전경
‘은닉의 마당’에서 발견된 오소르콘 3세의 석상 (사진: Wikimedia)

은닉의 마당에서는 람세스 2세에 만들어진 카르나크 신전의 남쪽 외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남쪽 외벽은 람세스 2세의 아버지인 세티 1세가 제작한 북쪽 외벽과 대칭됩니다. 람세스 2세는 으레 그래왔듯이 이 벽면에도 전투 장면을 자랑하듯이 장식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전투 장면이 애초에는 특정한 전투를 염두에 두고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외벽에 전투 장면이 먼저 그려졌고, 외벽이 완성된 이후 15년간의 팔레스타인 원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원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기록은 그 후에 덧붙여졌습니다.  어쩐지 참 람세스 2세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남쪽 외벽

은닉의 마당 남쪽에 있는 제 7탑문은 신전의 남-북축에 최초로 세워진 제 8 탑문에 이어 두 번째로 투트모스 3세가 세운 것입니다. 탑문의 남쪽 면에는 투트모스 3세의 거대한 한 쌍의 석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탑문의 벽면을 보면 투트모스 3세가 적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지만, 사실 이 벽면에 쓰인 이름들은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들인 메렌프타가 슬쩍 자신들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역시 람세스 2세답습니다.

제 7 탑문

남-북축에 가장 먼저 세워진 제 8 탑문의 주인공은 하트셉수트 입니다. 하트셉수트는 자신의 빈약했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페트 축제, 아름다운 계곡의 축제와 같은 '국가 규모의 의례들'을 재정비합니다. 그 중 신상이 성선(聖船)을 타고 카르나크 신전 밖으로 외출하는 행렬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하트셉수트가 제 8 탑문을 건설함으로 카르나크 신전의 남-북축을 사용하려고 한 이유는 아멘 신상이 카르나크 신전을 나와 남쪽의 룩소르 신전을 향할 때에 축제 참가자들의 눈에 보여지는 이 행렬에 시각적 장엄함을 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남-북축은 하트셉수트가 그린 청사진을 따라서 쭉 확장되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은 아닙니다.

제 8 탑문
투트모스 3세 시대의 카르나크 신전 남-북 축 복원도 (사진 : Digital Karnak)

뒤이어 등장하는 제 9, 10 탑문은 파라오 호렘헵의 작품입니다. 호렘헵은 투탕카멘 이후 즉위하여 아케나텐 시절 잠시 무너졌던 이집트의 전통을 회복시킨 파라오로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아케나텐의 흔적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작업에 집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는 9, 10 탑문도 역시 그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동-서축의 제 2 탑문을 보면서 설명했듯이, 이곳의 9, 10탑문도 아케나텐이 카르나크에 지었던 ‘아텐 신전’을 해체시킨 후에 그 석재들을 가지고 지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호렘헵의 탑문들이 다시 해체되어 아텐 신전의 일부를 복원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복원된 아텐 신전은 룩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제 9, 10 탑문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람세스 2세는 제 9, 10탑문에도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기록들을 열심히 남겼습니다.

제 9 탑문
재조립되고 있는 제 9탑문
제 10 탑문 (북면)
신전 외부에서 바라본 제 10 탑문 (남면)
호렘헵 시대의 카르나크 신전 복원도 (사진: Digital Karnak)

제 9 탑문과 제 10 탑문 사이의 마당에는 '아멘호테프 2세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습니다. 많은 기둥으로 구성된 20m- 37m 규모의 이 건물은 애초에는 카르나크 신전과는 분리되어 있는 독립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호렘헵이 제 9탑문과 제 10 탑문을 건설함으로 카르나크 신전의 일부로 포섭되어버렸습니다. 이 건물은 아멘호테프 2세가 특별히 주관하는 의례들이 행해졌던 곳으로 추측됩니다.

아멘호테프 2세의 궁전

제 10탑문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무트 신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남-북축과 이 무트 신전은 스핑크스의 길로 이어져있습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신전은 보존상태가 그리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신전 내부에는 무트와 종종 동일시되는 사자머리의 여신 세크메트의 조각상이 700여 개나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에는 겨우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현재 무트 신전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여정을 여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제 더 남쪽으로, 오래도록 고대 이집트 제국의 변경이었던 아스완으로 발길을 옮기려고 합니다.

제 10 탑문에서 무트 신전으로 이어지는 스핑크스의 길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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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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