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아침 글감 드릴게요
‘똑똑’ 아침 글감 드릴게요
2016.09.30 18:20 by 김석준

“난 이제 페이스북 같은 건 안 해”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페이스북을 떠났다. 이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봐도 사적인 내용을 쓰는 친구는 거의 없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게 이젠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스타그램? 아니. 인스타그램에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넘치고, 맛있는 음식이 넘치고, 이 넘쳐서, ‘조작된 세계’ 같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글만 쓰고 싶은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씀’은 그런 사람들에게 반가운 애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이다. 이름처럼 오로지 ‘글쓰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아침 7시 그리고 저녁 7시에 한 번씩 글감을 준다. 익명으로 글을 쓰니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이 공간에는 하루에만 2만 명이 방문하고 1만 명이 글을 쓴다. 씀을 만든 개발사 ‘10b’의 이윤재(25), 이지형(22)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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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어떻게 만났나

지형: 같은 학교(UNIST‧울산과학기술대학교) 동문이다. ‘Project M’이라는 교내 팀에서 처음 만났고 그 후에 수업도 같이 듣고 룸메이트도 했다. 나는 컴퓨터공학 전공에 산업디자인을 부전공했고. (윤재)형은 반대로 디자인 인간공학부 전공에 컴퓨터 공학을 부전공했다. 학교 방침상 부전공이 필수였는데, 덕분에 만났고, 덕분에 같이 일하고 있다.(웃음)

왼쪽은 이윤재, 오른쪽은 이지형

어떻게 씀을 만들게 되었나.

윤재: 작년 9월쯤에 제대로 된 어플을 한번 완성해보잔 얘기를 나눴다. 뭘 만들까 생각해보니 둘 다 공통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하더라. 그래서 글쓰기를 주제로 잡았다.

초기엔 어떤 모습이었나.

윤재: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하루 동안 간격을 두고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이 답변을 하고 그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일기가 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약간 부자연스럽더라.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7시와 하루를 끝마치는 저녁 7시에 글감을 던져주는 서비스로 바꿨는데, 그게 지금의 씀이다. 사실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만 있었을 뿐, 대단한 결의를 가지고 시작했던 건 아니다.

씀 사용 방법. (왼쪽부터)알림이 왔다. 어플에 들어갔다. 글을 썼다.

대단한 결의는 없었다고 하지만, 씀은 꽤 인기 있는 어플이다. 앱스토어 전체 무료 앱 3위, 라이프스타일 분야 무료 앱 1위까지 올랐었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자본이 몰리는 어플 시장에서 단 두 명의 대학생이 만든 작품치곤 상당히 선전한 셈. 게임도 아닌데 말이다.

한 마디로 ‘잘나가는’ 어플이다.

지형: 우리도 놀랐다. 기말고사 직전인 (지난해) 12월 4일에 올렸는데, 일주일 만에 약 2000명이 다운받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공부에 집중을 하나도 못했다. 덕분에 학점도 안 좋게 나왔고.(웃음) 그때부터 겪은 일은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의 연속이라 계속 신기해했다. ‘프라이머’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단체)에서 투자도 받았다. 지금은 휴학을 하고 서울에서 어플을 만들고 있다.

 

씀에 열광하는 이유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에요. 그런데 하나도 안 힘들어요.”

글을 쓰는 공간은 이미 많지 않나.

윤재: 아니, 반대다. 오히려 글을 쓸 곳이 별로 없다. 흔히 SNS를 떠올리지만, 사실 굉장히 애매한 공간이다. 진지한 생각을 기록하면 오글거린다는 반응이 온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 제약이 있기도 하고. 다들 SNS에 대한 염증을 한번쯤은 느껴봤을 거다.

그럼 씀은 SNS가 아닌가?

지형: 한 글감을 가지고 여러 명이 쓰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한다. SNS의 본질이 소통이라고 한다면, 그런 지점에선 SNS의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SNS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나 공감에 대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 반면, 우리는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방식이니 SNS와는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이나 공감을 표하는 장치도 없고.

윤재: 사실 우리는 씀이 SNS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부터 SNS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만들기 쉬웠던 것 같다. 단순히 ‘사람들이 글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과 가장 친숙한 형태와 기능으로 만들었다. 보면 알 수 있지만 종이와 아날로그의 콘셉트를 많이 가져왔다.

독립출판물로도 출간했던 ‘씀’

아날로그 콘셉트에 대해 더 듣고 싶다.

윤재: 처음에는 원고지 모양도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복잡해 보일 수 있어서 지금은 아이콘과 랜딩 화면(어플 로딩화면)에서만 원고지를 보여준다. 폰트도 나눔명조를 써서 책 같은 느낌을 줬다. 처음에는 디자인 욕심이 생겨, 많은 요소를 자랑하듯이 넣기도 했는데 지금은 화려한 디자인은 거의 뺐다. ‘디자인 되어있다’고 티 내지 않고 글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과 글을 읽고 싶게 만든 디자인 덕분일까. 하루 방문자 2만 명 중 절반이 글을 쓴다. 그중에는 독특한 콘셉트의 글도 많이 올라온다. ID ‘인스턴트 스릴러’는 아주 짧은 스릴러 소설을 쓴다. 또 ID ‘유월에게’는 장거리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편지형식으로 씀에 기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글을 다른 사용자들이 담아간다. 어플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쉬운 접근과 큰 파급력이 바로 어플의 매력이다. 일찌감치 개발자가 된 이들에게 ‘어플 개발’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졌다.

 

어플? 전문가만의 영역은 아니다

최근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독립운동가의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뿐만 아니라 그 선생님은 학생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만든 어플이 20개 정도가 더 있다고 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걸 독학으로 했다는 것. 2018년부터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코딩교육이 시작된다. 코딩 즉, 컴퓨터 코드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일이 아닌 걸까.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단순한 어플이었고, 마크 주커버그 역시 대학생이었다. 씀과 10b의 미래 역시 아무도 모른다.

앱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코딩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형: 코딩을 배우는 건 예전에 컴퓨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고, 그 전시대에는 영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영어를 한다고 해서 영어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어플을 만드는 것도 비슷하다. 코딩은 기본적인 언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글을 쓰는 것과 같단 얘기다. 습작경험도 그래서 필요하다.

윤재: 코딩이나 어플은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본질이 아니라, 그것으로 전해주는 게 무엇이냐가 본질이라고 본다.

지형: 사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우리처럼 완전하지 않아도 시작은 할 수 있다.

그 밖에 어플의 매력이라면?

지형: 파급력이 크다. 씀이 대단하지 않음에도 다들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

윤재: 어플과 같은 소프트웨어는 행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문학이나 그림은 감정을 전달하는데, 소프트웨어는 행동을 전달한다.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소프트웨어는 ‘이런 행동을 한번 해봐’라고 말한다.

 

아이디어 자체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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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 말고 만들고 싶은 어플이 있나?

지형: 씀 때문에 진행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있다. 캠퍼스 안에서 초성를 등록하고 이어지고 싶은 사람의 초성을 등록해서 서로 일치하면 알려주는 서비스를 생각했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초성으로 등록하기 때문에 일치하는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웃음)

그 아이디어, 기사에 나가도 되나.

윤재: ‘우리가 더 잘 만들면 되지 않나?’하는 확신이 있다.(웃음) ‘글감을 주고 글을 쓰는 어플이야’라고 설명을 하면 ‘다들 그런 거 많은데?’라는 반응이다. 아이디어 자체는 상관이 없고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마치 음악을 하는 분이 ‘나는 이런 느낌을 음악을 만들고 싶어’ 라고 말하면 ‘그런 느낌의 음악은 이미 있어’라고 하는 거랑 비슷하다.

9월 30일의 글감은 '한번 더'였다.

씀을 통해 어떤 영향력을 주고 싶은지.

지형: 허무하게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별로라고 느꼈던 건, 압도적으로 나의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것이었다. 잠깐 쉬고 있을 때도 봐야 할 것 같고, 맹목적으로 쓰게 되더라. 페이스북을 한 시간하고 나면 허무한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내가 만든 것에서는 그런 느낌이 안 들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씀의 시작이었다. 적어도 우리의 것을 쓰고 종료했을 때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뿌듯함을 주고 싶다.

 

/사진: 김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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