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로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IMF 이후 확연히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연령별로 60대는 빈곤과 질병, 40대~50대는 경제적 문제와 실업, 20대~30대는 취업과 불투명한 미래, 10대는 입시와 학교폭력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자살은 모든 사회문제와 연결돼 있으며 누구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도 파산•실패•실연•가족의 갑작스런 죽음 등 심각한 상실을 겪게 되면 자살 위험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자살을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크다. 가족 중 자살한 사람이 있으면 정신병력으로 오해를 살까봐 쉬쉬하거나 교통사고였다고 사망 원인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인식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살 위험군에 대처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은 더욱 심각한 수준인 듯 하다.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 10명 중 7명은 주변에 SOS를 친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내는 마지막 구조요청이다. 그러나 “사는 게 다 그렇지, 소주 한 잔 마시고 잊어라”는 식의 반응들이 있다. 이 대답 속에는 경청의 자세가 없다. 자살 위기에 놓인 이들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술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죽음을 부르는 3종 세트라 할 수 있다. 특히 술은 자살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부분의 자살은 판단력이 흐려진 음주 후, 혼자 있을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죽음으로 내 몬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매년 9월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그 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자살예방을 위해 위험군을 대상으로 치료와 공감, 설득을 해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살은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몇몇 전문가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월 세 모녀 자살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 등 자살위험을 느끼는 이들의 주변인이 직접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쓰는 인간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관계에 대해 재조명해 볼 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인 ‘나’ 혼자는 때론 나약할 수 있지만, 함께하는 ‘우리’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내가 아닌 우리에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하는 ‘공동체 운동’이 관계 부족으로 발생한 자살 문제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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