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약 90%의 우리말, 10%의 영어로 진행되어 다소 어감 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코드. 이 친구 꽤 유명하다. 소위 유튜브 스타다. 최근엔 방송도 많이 나오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자료가 많다는 걸 알지만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지금 여기 내 눈 앞에 있는 안코드를 이해하고 싶어서.
솔직히. 안코드는 사람들이 자기를 ‘촛불 하나’로만 인식하는 걸 싫어한다. 2년여 전, 교대역에서 불렀던 ‘촛불 하나’ 이후로 여전히 사람들이 그 노래만 찾기 때문. 나는 안다. 안코드가 이 노래뿐 아니라 풍부한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이 노래 가사가 주는 따뜻함을 사랑한다는 것도.
서로 알게 된지 두 달.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케미’가 좋단 걸 알았다. 지금은 동네이웃처럼 지낸다. 실제 나눈 이야긴 많은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엄두가 안 났다. 내가 아는 안코드의 자연스런 멋들을 읽는 이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이나 생활방식이 꽤 독특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까? 유독 듣고 싶었다. 안코드가 생각하는 안코드.
“(질문의 요지를 곱씹다가) 음…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래. 예상은 했지만 역시 쎄다. 뭐 안코드를 잘 모르는 사람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크게 한 번 웃어주고, 존중해주기로 했다. 무언가 굴레 안에 두기를 싫어하는 그다운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도 한 번 부탁해봤다.
“(잠깐 뜸을 들이다)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종교적 이유로 일본에 입양되었고 입양된 가족이 계속 여행을 하면서 사는 덕분에 ‘출신’의 개념이 없어졌어. 어른이 되면서 내 안에 있는 자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5년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지.”
대답 두 개에 이미 그가 다 묻어나 있다. 종교적 이유로 가족과 삶의 환경이 바뀐 얘기를, 그는 너무도 무심하고 태연하게 읊조렸다. 그의 성격, 행동은 다 거기서 비롯된 거다. 지금의 태도를 보면 참 자유롭게 자라왔나 보다 싶지만 유년기부터 십대 중반까지 그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환경은 늘 급격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영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입양되었고, 이후 온 가족이 이스라엘에 살다가 11살 즈음 한국에 들어와 학교를 다녔다. 십대 중반 즈음 급격한 환경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자신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우리말도 잘 못하는 꼬마는 한국에서 일반 중학교 생활을 했다. 민족성 강한 우리나라에서, 것도 십여 년 전에. 더 안 들어도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예상 가능했다. 평범하지 않았기에 받았을 지속적 소외. 일명 왕따. 안코드에 경우는 좀 더 심했다. 큰 인기를 누리다 ‘따’ 당하기를 반복했다. 정확히 한 달을 주기로 말이다. 당시 가족들은 일본에 있고 한국에는 혼자 남아있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도 잃고 의지 할 곳도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은. 진짜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의 가족은 또 누구인가? 인생에 있어 신념과 종교는 어떤 의미인가? 안코드는 틀을 깨고 스스로 걸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You can only love people the way love yourself.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은 본인, 즉 ‘나’다.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 주위의 시선과 판단에 이리저리 채였을 그다. 스스로에 대한 확고함은 그 과정에서 얻은 전리품.
“내가 이렇게 하면 이 사람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 인생을 그 위에 세우면 모조리 잃어. ‘나답게’가 없으면 내 안의 목소리가 작아진다고. 나는 누굴까? 나는 사실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만두면 뭘 어떻게 하지? 이런 건 좀…”
뒷말을 더 잇지 않았지만 안 들어도 공감할 수 있다. 그만 두기 무서워서, 스스로를 마주하기 두려워서 싫어하는 일을 평생 하는 이들. 그리고선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이들도 많다.
내 경우엔 직업을 구할 때, 새로운 일을 벌일 때 고려하는 몇 가지가 있다. 수익, 배움, 가치, 재미. 내가 하려는 일이 이 네 가지와 맞아 떨어지는지 알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적정 수익이 얼마인지, 지금 내가 배우고 싶은 게 뭔지,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은 뭔지 등.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다. 경제적 가치가 더 중요한 사람은 ‘수익’이 더 높은 직업을 찾는 게 맞다. 하지만 그 기준이 사람들의 시선이라 ‘이 나이쯤이면 이만큼은 벌어야 하지 않아?’에 맞추려다 보면 사람은 지친다. ‘나’라는 기준은 하나만 맞추면 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리 맞추려고 노력해도 모두에게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안코드를 만나게 된 건 옥상파티에서였다. 들어서 알겠지만 그는 말이 참 많다. 많은 말 만큼이나 또 친근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매일보든 오랜만에 보든 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한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만날 때마다 ‘비쥬’(서양식 볼키스)로 인사하는 사람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맛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맛’.
인터뷰 무렵의 안코드는 엄청나게 바빴다. 하루 네 시간 자고, 촬영 다니고 콘서트 연습으로 새벽 여섯 시까지 합주연습하고. 콘서트 홍보를 위해 버스킹도 놓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여백 없이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 그는 정선에 촬영을 갔다가 당일 올라오기로 했다. 그런데 일정을 바꿔 하루 더 있기로 했단다. “정선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거 같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신난 목소리였다. 의문이 들었다. 많이 돌아다녔으니 길 위에서 헤어지는 인연도 많았을 터,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갑작스런 만남이 그렇게 소중할까? 바쁜 와중에 잠을 줄여가며 스치는 인연에 시간을 써야 하나?
“(진지하게) 인생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야, 인간관계가. 그걸 위해 산다고 봐도 돼. 나한테 집중하기로 하고 나를 찾아 나선 건 ‘나를 사랑하기 위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야. 나는 이게 인생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해. 음악보다도.”
사람한테 그렇게 상처 받았는데도?
“사람이 그렇게 좋으니까 상처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넋 놓고 ‘모두가 좋아!’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안코드와 코드가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인생에는 각각 33%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첫 째는 인생의 스승, 두 번째는 동료, 또래 애들. 마지막은 제자. 그래야 사이클이 자연스럽잖아? 또래가 편하다고 그들과만 어울리면 다 같이 성장을 안 해. 성장 없이 시간만 계속 흘러가는 거지. 그럼 우울증 걸려. 시간은 흐르는데 성장하지 못하면 인생이 건조해져 버리잖아. 반대로 성장을 하면 완전 좋아! ‘난 살아 있어’ 이런 느낌 있잖아! 뭔지 알지? 제대로 배울 줄 알아야 해. 그러려면 가르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 그럼 다시 가르쳐봐야 하지.”
이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박장대소 했으며,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던지. 특히 또래들끼리 어울리기만 하면 놀 땐 즐겁지만 곧 우울증 걸린다는 말에 눈물이 나도록 웃어버렸다. 지나간 내 기억에 우울증도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며 무릎도 탁 쳤다.
제일 피하고 싶은 사람은 부정적이고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란다.
“왜 있잖아 이런 사람들. ‘내가 좀 아는데 그거 불가능해.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의견도 꿈도 자신감도 없으면서 자신감 넘치는 척, 모두 다 아는 척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직 자신감을 못 찾은 사람과는 좀 달라. 그 겸손함 자체가 스승이 될 수도 있고 그 겸손함으로 누군가에게 배우려고 하겠지.”
삶의 굴곡이 많아 그런지 명언 제조기가 따로 없다. 그저 멋있는 말이 아니라, 묘하게 설득이 되고,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를 만날 때 마다, 그가 그 동안 스스로 찾아다닌 지혜들이 내 머리 위로 폭포수가 되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음악, 여행얘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우린 나눌 얘기가 참 많았다.
(안코드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