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철길 따라 시간여행
군산, 철길 따라 시간여행
2016.07.31 17:07 by 최현빈

전북 군산에 위치한 경암동 철길마을. 철로를 따라 판잣집들이 아슬아슬하게 늘어선 모습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말을 저절로 떠오르게 합니다.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골목길 바로 옆으로 지나는 철길의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지요. 덕분에 지금은 지역을 찾은 손님들이 사진을 담아가기 위해 들리는 주요 관광지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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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마을의 역사는 1944년, 일본이 제지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기 위해 선로를 놓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때문에 노선의 이름도 공장을 소유한 제지업체의 이름을 따 ‘북선제지철도’, ‘세풍철도’, ‘페이퍼코리아선’ 등으로 불리어 왔지요. 철길 옆으로 판자촌이 늘어선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 말부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의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2008년, 이곳을 지나던 철도의 운행도 중단되고 판잣집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도 대부분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과거의 풍경을 재현하는 동상만이 열차와 사람들로 언젠가 시끌벅적했을 마을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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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요? 장경순(83) 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0년부터 이곳에서 살며 마을의 변천사를 지켜봤습니다. 할머니에게 당시 철길마을의 풍경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여기서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 아이들 발목도 끊어지고 난리도 아니었지.”

지금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이곳을 지나던 열차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습니다. 철길과 주택 사이의 아슬아슬한 거리가 마을의 매력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지요.

철길마을의 변천사를 지켜본 장경순 할머니

장난기 많은 아이들에겐 특히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하루 두 차례, 아침과 저녁에 종이를 가득 실은 열차가 경적 소리를 울리며 들어오기 시작하면 열차 쪽으로 ‘뺑’ 하고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열차가 마을을 지나는 동안 천천히 달리면 아이들은 그 옆으로 올라탔다가 매달릴 틈이 사라지는 좁은 골목으로 진입하기 전 다시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자기 발이 다친 줄도 모르고 신발을 찾고 있는거여. 그걸 보고 ‘네 신발이 아니라 발을 잊어버렸다’ 그랬지.”

실제로는 너무도 위험한 장난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제때 뛰어내리지 못하거나, 열차에 발이 빨려 들어가 다치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놈의 기차가 다니질 않으니까 지금은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안전사고도 문제였지만, 집 안에 있으면 소음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열차가 벽 너머로 착 붙어 지나는 만큼 거대한 굉음이 주변을 휩쓸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소리를 “온 집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아기를 재워야 하는 부모들은 특히 문제였는데 나중에는 아기들이 소음에 면역이 돼 기차가 지나가도 깨지 않고 자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라는 동요 구절이 다시 한 번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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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떠나는 여행

이제 경암동 철길마을의 선로 위는 열차가 아닌 여행객들의 발길로 붐비고 있습니다. 마을의 풍경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습니다. 옛 교복을 빌려 입고는 ‘달고나’를 먹는 연인들의 모습도 여럿 보입니다. 철길마을을 벗어나도 군산엔 이렇게 옛 복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자주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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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수탈의 통로로서 크게 발달한 도시입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인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들이 이곳에서 배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졌던 것이지요. ‘근대거리’라고도 불리는 군산의 구도심에는 구 조선은행, 구 일본18은행 등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식 건축물과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 미술관 등으로 쓰이며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역사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이 거리를 옛스런 복장을 하고 누비며 한껏 시간여행을 즐기기도 합니다.

과거의 건물들이 한곳에, 군산 근대거리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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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은행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경제수탈을 위해 지어졌던 대표적인 금융기관입니다.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개·보수되어 군산의 건축물들과 당시 업무를 보던 은행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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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근대건축관, 과거엔 조선은행으로 쓰였다.

 

군산 신흥동에는 일제 강점기 부유층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히로쓰 가옥이라고도 불리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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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져 있는 이성당. 안에는 유명하다는 빵을 사기 위한 여행객들로 가득합니다.

 

조용한 군산의 저녁

“군산에 다른 볼거리가 또 없을까요?”

군산의 대표 관광지인 철길마을과 옛 건물들을 구경하고 나서 상인들과 택시기사들에게 물었습니다. 군산 토박이임을 자처하는 분들의 말은 한결같습니다. “그것들 봤으면 다 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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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열차 여행이나 사진가들의 방문이 늘어나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군산은 조용한 도시입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영화 속에서도 한적한 항구도시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군산을 떠나기 전, 낙조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금강 하구둑 부근에 도착하자 근처에서 소풍을 나온 아주머니들이 서울 사람이 왔다며 과일, 빵 등을 나눠줍니다. 그새 빵 냄새를 맡았는지 하구둑에 일렬로 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에서 하루의 해가 저무는 모습은 조용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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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마을과 근대거리를 품은 조용한 도시 군산. 마냥 가볼만한 곳을 찾아 떠나왔지만, 주민들의 인심과 한적한 분위기가 더욱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잠시 바닷바람 강바람을 쐬며 조용히 걷고 싶다면 지금 군산행 열차에 몸을 실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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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동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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