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간역, 철길따라 인연을 꽃 피우는 시골역
황간역, 철길따라 인연을 꽃 피우는 시골역
2016.07.17 15:26 by 최현빈

441.7 킬로미터, 경부선 일반 열차 노선의 길이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우리나라의 대표 노선 중 하나인 이곳의 정 중앙은 어디일까요? 왠지 국토의 중앙에 있을 것 같은 대전역이 떠오르지만 아닙니다. 충청북도 영동군의 황간면. 포도가 많이 나는 이 작은 마을에 경부선 중앙에 위치한 작은 시골역이 숨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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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면은 주민이 오천 명도 채 되지 않는 마을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황간역 역시도 대도시의 역과 비교하면 정말 작은 역이지요. 하지만 이곳엔 언제나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작은 시골역에 무슨 볼일이 있어 사람들이 찾아가는 걸까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직접 황간역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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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반겨준 것은 뜻밖의 전시회였습니다. 역사 한쪽에는 갤러리가 꾸며져 있는데, 이곳에선 7월 2일부터 31일까지, ‘ARPT 철도문화전2016’이 열리고 있습니다. 철도 사진과 모형, 그리고 오래된 역사의 이정표와 티켓까지… 작은 철도박물관이 따로 없습니다. 놀랍게도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행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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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살아있는 철도모형

‘ARPT(All Railways Photo Team)’는 철도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동호회입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역에서 억새꽃축제와 함께 철도사진전시회를 개최했고, 지난 5월에는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철도에 대해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요.

열차로 연결된 인연

이날 현장에선 행사를 위해 서울과 대전에서 달려와 준 세 분의 동호회 회원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철도와 사진, 그리고 이들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아버지는 기관사, 고모들은 승무원인 집안에서 나고 자랐어요. 철도를 자연스럽게 좋아할 수밖에 없었죠.”

장기현(23‧코레일관광개발)씨의 말입니다. 그는 2014년 창단된 ARPT의 창립 멤버입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열차와 역사(驛舍)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기현씨는 어린 시절에는 철도 기관사를 꿈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만은 할 수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간호조무사, 화물차 기사 일을 경험했습니다. 많은 일을 거쳐 지난 6월 20일부터 무궁화호 카페열차에서 승무원 일을 시작했다는 기현씨. 그는 “열차 기관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레일 위에서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 왼쪽부터 임지훈, 신준식, 장기현씨

신준식(20‧우송대 철도경영학과)씨와 임지훈(20‧서울예대 시각디자인과)씨는 철도 사진을 찍다가 만난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열차 타는 것을 좋아했다는 둘은 2009년 개화역에서 있었던 서울지하철 9호선 개통식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역에서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서로를 알아보고는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둘은 경춘선의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를 함께 타고, '내일로' 여행도 하면서 지방 곳곳의 작은 역들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각자의 진로를 준비하느라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철도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준식씨와 달리 지훈씨의 전공은 시각디자인. 지훈씨는 “친구는 철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지만, 나에게는 단지 취미 생활이다 보니 자연스레 관계도 소원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철도 덕분에 친해졌다 철도 때문에 멀어진 이 둘을 다시 이어준 것 역시 철도였습니다. 기현씨가 활동하고 있는 철도사진 동호회 말입니다. 

기현씨와 두 친구는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새로운 추억과 사진 기술을 나눴습니다. 셋이 함께 사진을 찍으러 나가 보면 초등학생 사진사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카메라가 희귀했지만 이제는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집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준식씨는 “취미 생활도 좋지만, 다른 승객들에 대한 배려와 안전에 대한 의식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간혹 철도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나머지 열차의 행선판을 몰래 떼서 가져가거나,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민원을 넣는 친구들도 있다면서요. 준식씨는 “열차 사진을 잘 찍겠다고 선로 가까이에 위험하게 다가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셋은 밖으로 촬영을 나갈 때면 항상 안전조끼를 입고 촬영하고, 안전한 범위에서만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모든 촬영은 안전을 전제로 합니다. (사진: 신준식)

철도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매일 열차를 타는 기현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잠시나마 한 공간에 있는 것이 특별한 것 같아요. 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승객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요. 짧지만 그런 인연들이 저에게는 소중하게 느껴져요.”

기현씨는 매일 열차로 익산과 대전을 오가며 첼로 수업을 듣던 어느 꼬마 승객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얼마 전 그 아이가 승무원 생활을 마감하는 제 동료를 위해 객실에서 작은 연주회를 열어줬다”면서 “사비를 털어가며 군것질 거리를 사주던 친군데 정이 참 무서우면서도 소중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무궁화호 승무원으로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열차인 KTX의 승무원이 되는 것이 기현씨의 목표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행운아, 장기현씨

시골역장의 노래

작은 시골역이지만 이곳에는 언제나 문화가 가득합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철도문화전 이외에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음악회, 토크 콘서트,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가 매달 꾸준히 열리고 있지요. 지난 6월 12일에도 작은 음악회가 열려 강희주 소프라노, 박홍렬 화가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이 황간역을 찾았습니다.

강병규 황간역장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황간역을 지키는 강병규(58) 역장님이 부임할 당시만 해도 황간역은 폐역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

“교통수단으로서의 황간역은 그 역할을 지속하기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끌어와야만 했었죠.”

많은 간이역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때는 지역의 교통과 문화, 생활의 중심지였던 황간역도 도로 교통의 발달로 이용객이 점차 감소했습니다. 승객이 찾지 않는 역은 곧 폐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역장님이 직접 만든 옛 황간역 모형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모으기 위해 역장님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황간역 이야기 사업. 오래된 역에 깃든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 역 게시판에 전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시골역 같지만 황간역은 11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역사입니다. 그만큼 많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지요. 역장님은 “게시판을 구경하던 청년이 갑자기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며 그때를 회상했습니다.

황간역 이야기를 엮은 뒤로도 역장님의 문화 사업은 계속됐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기부한 폐항아리에 시를 새기기도 하고, 조용한 시골역을 아름답게 가꾸는 등 황간역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는 어느덧 황간역의 정기행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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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꾸며진 황간역

2014년 10월에는 서일본여객철도의 모리 타카시(Mori Takashi)씨의 제안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학생들이 함께하는 철도문화 교류회도 열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이는 이 행사도 어느덧 6회째입니다. ARPT 친구들 또한 교류회를 통해 만난 인연이지요.

“역의 존폐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고객들이 결정하는 것이죠.”

역장님은 황간역 주민들과 함께 ‘황간마실’이라는 지역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역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지역 주민들이 차도 끓이고, 떡도 마련해 방문객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역장의 재량이나 취향에 따른 것이 아닌, 주민들 스스로 만든 수익모델로 황간역에서 문화사업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철도에서 일하는 40년간 수많은 역에 머물렀지만 황간역에 대한 역장님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황간역 곳곳에서는 역장님과 지역 주민들의 정성이 들어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와 정이 넘치는 시골역 황간역.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황간역을 방문해 조용한 역이 시끌벅적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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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맘대로 포토 스팟

황간역 승강장 가장자리엔 캔과 패트병 등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바람 부는 날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런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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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동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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