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우주로 간다? ‘이티(E.T.)’ 얘기가 아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시민들은 하루 평균 130만km를 자전거로 오간다. 대략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다. 인구 10명 중 7명이 자전거를 타고, 차 1대 당 5대의 자전거가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 그러면서도 자전거 사고‧사망률은 OECD 최저수치다.(작년 코펜하겐의 자전거 사고 사망자는 단 1명.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3년 간 390여명이 자전거 사고로 사망했다.)
(자료: 코펜하겐 시청, 2014)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란 타이틀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전거 친화 인프라는 무엇이 다를까? 직접 달려봐야 안다.
미션:
코펜하겐 시청광장에서 ‘Dronning Lousie Bridge’ 무작정 찾아가기
‘직접 체험해보자’는 막연한 목표가 이뤄진 건 지난달 12일. '의지'외에 필요한 건 자전거와 목적지다. 현지 교민의 도움을 얻어 공공 자전거를 소개 받았다.
덴마크의 고바이크(gobike)
지난 2014년 초, 기존 공공바이크를 개조해 구비한 반자동 자전거. 알루미늄 몸체를 가졌으며 내비게이션을 비롯, 전철 시간표‧도시행사 표‧자전거 정보‧자전거 반납 현황 등의 열람이 가능한 태블릿 PC가 장착되어 있다. 연중무휴 24시간 이용할 수 있으며, 시간당 25크로네(약 3500원)에 대여가 가능하다.(초기 사용자는 200크로네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한다.)
다음은 목적지. 어디로 정해야 할까? 자고로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 했으니, 자전거는 자전거가 가장 많은 곳을 찾는 게 마땅하다.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6배 많다는 다리, 자전거가 도로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Dronning Lousie Bridge’가 오늘의 목적지다.
자전거 빌리기
고바이크는 시내 곳곳에 설치된 주‧정차장에서 대여하고, 반납은 어느 정차장에서나 가능하다. 초심자이니 만큼 가장 규모가 큰 곳을 찾았는데, 바로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코펜하겐 시청광장이다
자전거 대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전거 핸들 중간 부위에 부착된 태블릿을 통해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개략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처음인 경우 자칫 당황할 수 있다.(본인이 그랬다.) 하지만 초기화면에서 언어선택을 하고(물론 한글은 없다) 차근차근 안내를 따르다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로그인을 하고 신용카드 인증을 마치면 자전거의 잠금은 풀리고, 태블릿 화면은 메인메뉴로 넘어간다.
워밍업, 정처 없이 달려보기
일단 가볍게 페달을 밟아본다. 고바이크는 반자동 방식이기 때문에 라이더의 힘은 훨씬 덜 든다.(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듯한 느낌) 광장을 빠져나와 자전거 도로에 올라서니, 자연스레 자전거의 이동 물결을 따른다. 마치 시내 길에서 간선도로나 고속도로로 차를 올렸을 때 그 흐름에 맞춰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전거 도로 위에서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혹은 개인적인 경험보다) 자전거 흐름이 빠르다는 것. 자전거와 다른 교통수단(자동차, 버스, 도보 등) 상호간의 약속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 왔기에, 그 약속이 깨질 염려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 과감하게 질주한다.(바로 이 부분 때문에 코펜하겐의 라이더가 다소 터프하다는 우려 섞인 의견도 있다.)
Signals for Bicycle
자전거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관성 있게 정돈된 신호체계 덕분이다. 자전거를 중심으로 도로를 정비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피아 보스가드(Per Boesgaard) 코펜하겐 시청 컨설턴트는 “코펜하겐에서 ‘주차장 문제’라고 말하면, 그건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 주차장과 관련된 문제”라며 “자동차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공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목적지를 향하여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목적지인 ‘Dronning Lousie Bridge’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 잠깐! 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곤 하나 직접 체험해본 결과, 초행자가 이용하는 건 비추다. 도로나 신호에도 적응해야 하는데, 거리 이름까지 낯설어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보던 습관이 강하게 있던 터라 길을 잘못들기 일쑤다.(자전거 도로와 자동차 도로는 엄연히 다른데, 계속 내비의 길을 차도로 인식하게 된다.)
길을 잘못들면 돌아가면 되지 않냐고? 앞서 언급했듯 코펜하겐의 자전거는 자동차와 똑같은 신호‧이동 체계다.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서도 자전거를 되돌릴 수 없다. 유턴이나 역주행을 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몇 바퀴씩 돌게 된다. 페달을 한참 동안 밟았는데, 아까 왔던 곳이 되는 마법을 수차례 경험했다.
덕분에 또 다른 '정처 없이 달려보기'가 시전됐다. 하긴 목적지가 중요한가. 덴마크에서 자전거를 직접 타고 있는데!
현재 코펜하겐은 전혀 새로운 고민을 안고 있다. 바로 자전거 체증이다. 통학‧통근 시간엔 너무 많은 자전거가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험악한 기후 탓에 겨울엔 눈도 많이 오지만, 동계 라이딩 의류를 개발할지언정 자전거를 놓지는 않는다. 덴마크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자전거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빠르고 편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도시니, 그린시티 같은 것은 시나 정부의 의지일 뿐, 결국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더 이로운 것을 찾는다. 심지어 안전하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자료: 코펜하겐 시청, 2014)
정부는 이런 시민들의 니즈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백배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피아 보스가드 컨설턴트는 “현재 시에선 자동차 도로를 더 줄이고, 그만큼 자전거 도로를 넓힐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그린 웨이브 프로젝트(Green Wave‧자전거의 평균 속도를 계산해 신호에 걸리지 않고, 논스톱으로 주행할 수 있는 교통관제 시스템)도 진행 중에 있다”면서 “시민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보다 다각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 말하는 덴마크의 자전거
1
1분: 자전거로 5km를 달릴 때, 3년 전에 비해 절약되는 시간
26
26%: 2~3명의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카고바이크(혹은 자전거 트레일러)를 보유한 비율
30
30%: 자전거로 통근하는 성인들의 사고 감소율
31
31배: 전 세계 평균과 비교해 매일 자전거를 이용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수
2,000
2000t: 자전거를 통해 2025년까지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1년 당)의 양
1,000,000,000
10억 크로네(약 1400억): 2005년 이후 자전거 친화도시 개발을 위해 들어간 비용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라이딩을 시작한 지 약 2시간 만이다. '다리'라고 하길래 앞서 본 ‘Cykelslangen’같은 장관을 기대했지만, 당도한 곳은 그저 자전거 유동이 많은, 평범한 다리였다.
잠시, 목적지인 ‘Dronning Lousie Bridge’의 풍경과 라이딩 맛보기 영상을 만나보자.
이제 남은 건 자전거 반납. 태블릿 메인 메뉴에서 ‘Return bicycle’를 누르면 가장 가까운 정차장으로 안내 한다.
미니 인터뷰
─ 피아 보스가드(Per Boesgaard‧사진) 코펜하겐 시청 도시개발부 대외협력처 수석 컨설턴트
언제부터 자전거를 위한 도시가 되었나?
덴마크의 땅은 대체로 평평하다. 자전거 타기 좋은 환경을 타고난 셈이다. 하지만 60~70년대까진 (여타 도시들처럼) 차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에 안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70년대 유럽에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차를 두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자 거리에 공간이 생겼다. 80년대 초반 ‘자전거가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국가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 그때부터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가 구축됐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코펜하겐은 인구나 규모가 작은 도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안정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 좋은 조건이다. 개발 초기 정치인들의 역할이 컸다.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일종의 ‘운동’으로 발전시키자, 이를 인프라로 잇는 움직임이 신속하게 일어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덴마크의 정치인들이나 왕세자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모습이 많이 비쳐지지 않나. 홍보가 아니라 진짜 그들의 일상이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인구가 너무 많이 유입되고 있다. 대략 한 달에 1000명 정도 된다. 자전거 체증이 심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5년까지 탄소중립 도시를 만들려는 계획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 사이의 균형을 맞춰서, 시민들에게 살기 좋은 도시 환경을 제공하려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말해 달라.
2025년까지 코펜하겐 내에 풍력발전소 100대를 설치하는 것, 바이오메스만으로 움직이는 발전소 4개를 건립하는 것, 모든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를 20% 절감하는 것(공기업은 40%), 자동차들의 청정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자전거‧대중교통 이용 비율을 현재보다 20% 올리는 것 등이다.
/사진:(=코펜하겐) 최태욱 · 영상편집: 조철희
* 취재에 협조해주신 덴마크 현지의 청년사업가 김희욱씨와 자전거 라이딩에 동행해주신 안지훈 성동구 구정기획단장에게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