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맛의 돈가스
'상대적인' 맛의 돈가스
'상대적인' 맛의 돈가스
2016.06.07 13:51 by 송나현

친구와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식당에 들어가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주문한 적이 있다.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돈가스는 그 막강한 비주얼을 조롱하듯 형편없는 맛을 보여줬다. '돈가스 맛 없기도 참 힘든데…' 반절 정도 먹다가 더는 못 먹겠어서 포크를 내려놨다. 그런데 친구가 내가 썰어 놓은 걸 한 입 집어 먹곤 '맛있는데?'라며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백번 양보해도 '맛있다'는 감탄사가 나올 만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난 속으로 친구의 미각을 의심했고, 친구는 오므라이스와 돈가스를 모두 맛있게 비워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다음번에  저 집은 다시 가지 말아야겠다' 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식당을 다시 가게 됐다. 5명 중 4명이 그 식당을 가자고 하는데 굳이 돈가스 하나 맛없다고 나만 다른 식당을 고집하는 것이 민망했다.(사실 학교 주변 식당 맛은 거기서 거기다) 5명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음식이 차례대로 나왔고 각자의 것을 먹던 친구들은 돈가스가 특히 맛있다고 칭찬했다. 순두부 찌개를 먹던 나는 경악했다.

"뭐야… 정말 내가 이상했던거야? 그 퍽퍽한 돈가스가 왜 맛있다는 거지?"

표정에 의아함을 담은 채 친구의 돈가스를 한 입 먹어봤다. 그런데, 확연히 다른 맛! 그 전의 내 입맛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돈가스 맛이 바뀐걸까?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돈까스 맛이 바뀌었을 리가 없다. 아마 내 입맛이 바뀐 거겠지. 장난식으로 '절대 미각'이라고 칭했던 내 입맛은 사실 '상대 미각'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절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고 관측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모든 기준은 상대적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따르는 법도 항상 바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아름다움'이나 '선(善)',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들도 상대적이다. 이렇게 절대적이라 믿는 것들도 상대적인데, 인간은 그 편협한 시선 속에서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돈가스집에서 절대적이라는 건 없다고 깨달은 바와 달리, 걸리버는 항해 도중 절대적이라는 게 얼마나 볼품없는 말인지 깨달았다.

걸리버가 조난 중 소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소인보다 12대 1의 비율로 큰 관계로 1,728인분의 식사를 매일 받았고, 그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 300명이 동원됐다. 소인의 고기 한 접시는 걸리버에게 한 숟갈이고 술 한 통은 대충 한 모금이다. 그는 쇠고기를 뼈까지 한입에 먹고, 거위나 칠면조는 통째로 먹었다.

하지만 거인국에선 다르다.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거인국)여왕과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식사량의 기준이 뒤바뀌며 우리는 무엇이 절대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왕비의 한 입은 성인  열두 사람이 한 끼에 먹는 식사량과 맞먹었고, 커다란 칠면조 아홉 배에 달하는 종달새의 날개를 뼈째로 씹어 먹기도 하고, 영국에서 가장 큰 빵 두 개를 합친 빵 덩어리를 한입에 털어 넣고, 영국에서 가장 큰 술통보다 더 큰 황금 잔으로 음료를 마셨다.(심지어 왕비의 식사량은 적은 편이라고 한다.)

걸리버는 맨 처음 이 광경을 보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거인국의 왕비가 먹는 식사는 소인국에서 걸리버가 먹던 식사와 같다. 그가 소인들을 내려다보며 먹었던 칠면조는 소인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을지 모른다.

비단 식사량뿐만 아니라 소인과 거인을 관찰하는 태도에서도 상대적 관점이 드러난다. 걸리버는 거인국에서 12배로 확대된 사회를 바라보며 구역질을 느끼기도 한다.

여자의 유방은 반점과 주근깨로 뒤덮인 거대하고 흉측한 것이고, 피부는 거칠고 울퉁불퉁하고 노끈보다도 굵은 털이 달려있다. 거인국 사람들을 통해 걸리버는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의 결점을 깨닫는다. 반면, 소인국에서 바라보는 소인들의 피부는 영국 어느 귀부인의 피부보다 고왔다. 하지만 소인이 고백하듯, 걸리버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의 피부는 큰 구멍이 뒤덮고 있고, 수염을 깎고 남은 털은 멧돼지의 거친 털보다 열 배는 더 두꺼웠으며 얼굴색은 보기 흉할 정도의 색이었다.

소인국과 거인국 모두를 가본 걸리버를 보며, 인간의 외적인 모습을 판단하는 건 항상 상대적이고, 우리가 그 결점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보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들이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항상 바라본다면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못한다.

 "비교라는 개념 없이는 어떤 것도 크거나 작다고 할 수 없다"

걸리버의 말처럼 가치는 상대적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부재한다는 스위프트의 신념이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거인국와 소인국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걸리버지만 그의 깨달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번째 항해에서 마주한 천공의 섬 라퓨타. 한 눈은 안쪽으로, 한 눈은 하늘을 향한 라퓨타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과 정치, 사회, 경제, 철학 등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수학과 음악에만 관심을 가진다.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귀를 쳐서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시종 없이는 외출조차 하지 못한다.

또한 이들의 실험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배설물을 음식으로 바꾸거나, 언어 없이 이루어지는 대화를 만들거나, 대리석을 부드럽게 만들어 베개로 만드는 비현실적인 실험에만 몰두한다 스위프트는 과학 발전의 문턱에 들어선 유럽 사회에 '과학 만능주의'를 경고하고자 했겠지만, 그 경고는 21세기 우리에게도 향해있다. 과학에 파묻혀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말자는 경고.

이후 걸리버는 말들의 나라에서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는다. 이 나라에서 만난 '야후'(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의 탐욕과 교활 같은 동물적 본능에 걸리버는 이들을 경멸하게 되고, 비슷한 모습을 한 인간에게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후이늄(인간의 이성을 갖춘 말)의 이성과 지성에는 감탄하며 이들처럼 살아가길 소망한다. 이들처럼 행동하고 따른다. 나중에 인간사회로 추방명령이 내려졌을 때 후이늄과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인간 사회로 돌아가느니 무인도에서 살겠다!"고 울부짖기도 한다.

걸리버의 후이늄 흠모와 찬양으로 가득 찬, 한편 인간에 대한 풍자가 가장 극심한 이 4부 때문에 한때 <걸리버 여행기>는 출판 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4부에서 인간의 동물적인 속성이 불편할 정도로 잔인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본능을 억누르는 게 바로 '이성과 지성'의 힘이다. 걸리버는 역으로 동물의 모습을 한 후이늄에게서 (인간)이성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과연 '이성'만을 가진 존재는 행복한 걸까? 가족애와 개인적 감정마저 없는데? 후이늄이 아닌 인간이, 이성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4개의 나라는 모두 인간의 모습과 다른 생명체가 지배하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다. 조금씩 비틀린 4개의 사회는 각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고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책을 덮고 나서까지 생각한다.

인간의 모습은 특정 나라나 사회나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널리 읽히는 이 고전은 책 어디서나 비틀어진 인간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진리이고 유일인 마냥 살아가지만, 이 사회는 절대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만도 않으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장소다.

사실 돈가스가 맛있을 때도 있고, 맛 없을 때도 있다. 입맛이라는 건 날씨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날 몸 컨디션에 좌우된다. 하지만 학교 근처 식당에서 먹은 경양식 돈가스가 내게 준 울림은 크다. 절대적인 건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진리인 마냥 행동하지 말 것.

북앤쿡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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