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대(大)이동은 없다
게르만족의 대(大)이동은 없다
2016.06.03 17:24 by 시골교사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해도, 그 말의 힘은 여전해 뵌다. 올해 서울 소재 대학 입학자 3명 중 한 명은 재수생이라고 한다. 이는 많은 수험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흔히 말하는 ‘인(in) 서울’의 위엄이다.

설령 대학 진학에서 ‘인서울’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일은 서울에서 하고 싶어 한다. 서울 및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청년 일자리의 반 이상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사진: Vincent St. Thomas/ shutterstock.com)

| 독일의 대학교는 수준 차이가 없다

독일은 학생, 교수, 시설 면에서 대학교 간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한 지역, 한 대학으로 학생이 몰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특성화 대학을 지정하여 정부 지원을 집중시키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학 수준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독일에서 가장 일반적인 루트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걸러진 선발 집단이 인문계 중학교에 진학하고,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시 해당 주에 있는 주립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대학 수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방값을 따로 내면서 다른 지역으로 갈 필요가 없다. 학생수준의 분포 역시 어느 대학이든 비슷하기 때문에, 교수들 입장에선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게 되고, 학자로서의 동기부여도 충분히 일지 않나 싶다.

얘 성적이 쟤 성적이고, 그게 또 내 성적이에요! (사진: Syda Productions/ shutterstock.com)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자기 고장에서 직장을 찾는다. 의대를 졸업하고 해당 주의 주립병원과 대학부속 병원에서 일자리를 찾고, 정치학을 공부한 뒤에 해당 주의회에서 정치인으로 일한다. 교수가 될 사람은 ‘하빌리’(박사학위 위의 또 다른 상위과정인 교수자격과정)를 거친 후 다시 모교에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인재가 지역으로 다시 흡수되는 것은 정치, 교육, 의료, 문화수준이 지역마다 고르게 발달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즉 교육 후의 인적자원이 해당 지역의 사회 각 분야에서 고르게 활동하기 때문에, 균형 있는 지역 발전이 이뤄지고, 지방 자치가 잘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바꾼다! (사진: Rawpixel.com/ shutterstock.com)

 

| 대학, 대학원까지 등록금이 없다

나는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는 7년 동안(어학과정 포함) 수업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배웠다. 사람들이 독일 대학교육에 대해 가장 많이 놀라는 것 역시 그 부분이다. ‘수업료가 없다’는 것 말이다. 독일 대학에선 대학의 전 과정은 물론 박사학위 논문을 끝낼 때까지 수업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것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때는 물론이고 통일 후 90년대까지만 해도 치·의대에서 수업시간에 쓰는 재료비 일체를 국가가 무상으로 보조해 주었다.(이것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이과계열의 한 유학생은 “한국에선 조교나 교수 외에는 만질 수 없었던 비싼 실험용 재료를 이곳에서 마음껏 써볼 수 있어 너무 놀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대의 경제적 불황 앞에 그 원칙은 무너지고, 수업시간에 쓰이는 재료 정도는 이제 학생 개인이 스스로 구매해야 한다.

최근에는 대학의 경쟁력 상실이 결국 국가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는 여론까지 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대학 졸업률이 낮다는 의미이며, 대학 교육의 순환과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투입과 산출이라는 양적인 면에서 보면, 무상교육이 그런 흐름을 둔화시켜 국가 경쟁력 약화를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겪은 짧은 유학 경험으로도 무상교육이 주는 병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독일 교육당국은 대학 경쟁력 상실이 국가 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고 믿는다. (사진: Crystal Eye Studio/ shutterstock.com)

아는 독일친구는 경제학과를 3년 다니다 제적당하고 교육학과로 전과했지만, 여전히 대학 졸업시험을 못 치르고 있다. 법학을 전공하던 또 다른 친구는 졸업시험 성적이 취업을 결정한다는 걱정에 그 시험을 계속 미루고 있다.

열심히 젊음과 세월을 아껴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일단 수업료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이 없으니 대학교 안에서 헤매고 또 헤맨다. 10년 넘게 대학교를 다니는 늙은 학생들의 비율이 만만치 않음은 사실이다. 그렇게 한번 늘어진 학업은 졸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독일은 통독 후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감안해 느슨한 교육현실을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육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수업료 징수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며, 지역마다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학생들과 학부모의 거부 반응은 상당했다. 액수와 상관없이 그동안 한 푼도 안내던 수업료를 왜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소수이긴 하지만 몇 몇 대학에선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액수는 한 학기 70여 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2008년 기준)

교육비? 그게 뭐죠?? (사진: Calvste/ shutterstock.com)

어쨌든 돈 때문에 교육권을 박탈당하는 일은 독일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등록금 외에 생활비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겪을 땐 국가가 지원해준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낮고 학생의 평점이 B학점 이상이면 한 달에 5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나라에서 보조받는다.

또 본인이 직접 생활비를 벌며 공부해야 하는 학생의 경우, 대학졸업 시험을 앞두거나, 대학원 논문 학기일 경우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1년간 매 달 50만원 정도를 무상으로 보조해 준다.(통상 대학과정에서 3개월, 대학원 과정에서 9개월 정도 지원한다) 이것은 외국인 학생도 신청할 수 있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도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80여만 원 정도를 3개월 정도 지원받을 수 있다.

거기다 정당 장학금, 기업 장학금, 재단 장학금 등의 장학금 제도도 많다. 무상교육에다 더해지는 이런 장학금은 학생들에게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에 충분하다.

(사진: zimmytws/ shutterstock.com)

※ 지금까지 시골교사의 독일교육 이야기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시골교사의 독일문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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