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한 줌과 나무를 만나는 길, VIALE DEL MUSEO BORGHESE
볕 한 줌과 나무를 만나는 길, VIALE DEL MUSEO BORGHESE
볕 한 줌과 나무를 만나는 길, VIALE DEL MUSEO BORGHESE
2016.06.02 18:26 by 김보연

신은 우리 앞에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로마 골목의 구석구석에 있는 성당들, 그 건축물을 보면 아무리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어쩌면 신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될지 모른다. 이렇듯 ‘교황이 있는 도시’, 로마에서 신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신을 위한 인간의 건축물은 일단 차치하려 한다. 어떤 이들은 성당을 보며 신을 떠올리지만, 나는 나무를 보며 신을 떠올린다. 나무를 가만히 보면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두껍고 딱딱한 피부, 나무의 피부는 강하고 까슬거린다. 그곳에서 나무의 가장 약한 부분인 잎이 피어 오른다. 자연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하지만, 그 중에서 나무는 가장 아이러니하고  완벽히 조화로운 선물이다. 이 조화로움은 반드시 신의 솜씨일 수밖에.

나무는 대범하게 서서 내게 쉴 만한 여유를 허락한다. 그래서 마냥 기대고 싶어진다. 그늘을 주는 나무가 신성하다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이런 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거리가 있다. 딱 이 맘 때 일렁이는 연두를 만끽할 수 있는 ‘VIALE DEL MUSEO BORGHESE’(보르게제 미술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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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광장이 위치한 SPAGNA 역 혹은 포폴로 광장이 위치한 FLAMINIO 역 근처에는 로마에서 가장 커다란 공원이 있다. ‘VILLA BORGHESE’, 보르게제 공원은 로마의 ‘센트럴 파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원에 입장하는 순간 초록이 펼쳐진다.

보르게제 공원 전체 지도
공원 전경

규모도 규모지만, 이 공원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보르게제 미술관의 존재 덕분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여행객에겐 바티칸 박물관과 더불어 꼭 한번은 들러야 할 곳이다. 미술관을 등지고 걷는 길의 이름이 ‘VIALE DEL MUSEO BORGHESE’, 이름 한번 참 담백하지 않나. ‘보르게제 미술관 길’이라니.

보르게제 미술관 전경
보르게제 길
미술관 앞의 분수

이 길은 지금까지 소개했던 로마의 거리들과는 조금 다르다. 수백 년 된 건물이 쌓여 올려진 로마 시내의 골목이 아니라, 울창한 나무로 꾸며진 길이다. 여행객들은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시거나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근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맞추어 잠시 산책 시간을 갖는다. 정장에 구두, 스마트폰을 귀에 딱 붙이고 바삐 걸어가는 아저씨의 모습이 공원과 겹치니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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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밭에서는 아이들이 망아지처럼 뛰어 논다. 이탈리아어는 억양이 꽤나 강한데, 높은 목소리의 어린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것을 듣다 보면 이탈리아어가 원래 이렇게 발랄한 언어였나 싶다. 공 하나 만으로도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참 바쁘게 논다. 햇볕은 오늘따라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지! 놀이터도 길 곁에 있다. 여행 온 가족 중 부모님은 피곤에 지쳐 벤치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똑같은 선글라스를 쓴 남매는 그네에 한 자리씩 차지하곤 재잘재잘 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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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하게 생긴 큰 개가 주인을 따라 나왔다. 주인이 물을 사는 동안 생김새와 달리 얌전하게 기다리던 녀석. 냉큼 풀 밭으로 사라졌다. 거대한 공원에는 방문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안내판이 길 한복판에 있다. 여행객들은 지도와 안내판을 번갈아 보지만, 산책 나온 직장인들은 능숙한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쳐간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공원이라 엄두가 나지 않거나 좀 더 시원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다인용 자전거를 빌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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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나의 여유를 담당하는 장소라 할 수 있는 보르게제 공원. 나무와 나란히 걷고 나무에게 기대는 이 공간에서 길 하나 선택해 걸어보자. 6월의 로마를 즐기자. 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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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보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죠'걷고 또 걷는다.' 걸작이라 불리는 도시 ‘로마’를 백 배 만끽하는 비법이다. 한때 전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드나들었던 로마의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물. 작은 골목길이든, 큰 광장길이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연이 즐비하다. 로마살이 1년 차 에디터가 전하는 ‘로마의 길’ 이야기를 통해, 콜로세움과 바티칸 너머의 진짜 로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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